지브리·디즈니 이어 해외 거장 작품 연이어 개봉…12월 ‘노량: 죽음의 바다’ ‘하얼빈’에 기대감
2023년 10월 한국 영화계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극장가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자랑하던 한국 영화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뒤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3년 연간 흥행 순위에서 톱10 안에 한국 영화는 ‘범죄도시3’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단 3편이 전부다. ‘엘리멘탈’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 해외 애니메이션 3편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아바타: 물의 길’ ‘오펜하이머’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4편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10위 안에 든 영화들도 관객 수는 기대 이하다. 그나마 1위 자리를 지킨 ‘범죄도시3’가 1000만 관객 신화를 쓰며 한국 영화 흥행 계보를 이어가고 있을 뿐 4위에 오른 ‘밀수’는 500만 관객을 겨우 넘겼고 8위에 머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400만 고지에도 오르지 못했다. 게다가 여름과 추석 극장가에 개봉한 대작 한국 영화의 상당수가 흥행에 참패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다시 한국 영화가 믿을 이는 이순신 장군뿐이다. 2014년 ‘명량’으로 1761만 5919명이라는 역대 최대 관객 신화를 쓴 이순신 장군은 2022년에도 ‘한산: 용의 출현’으로 7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2022년 한국 영화 흥행 주역 투톱이던 마석도 형사와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2023년에도 기대되는 상황. 마석도 형사는 ‘범죄도시’ 2편과 3편으로 2년 연속 1000만 관객 신화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제 2023년 12월 개봉을 확정지은 ‘노량: 죽음의 바다’를 믿을 수밖에 없다.
유난히 길었던 추석 연휴 6일 동안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1947 보스톤’ ‘거미집’ 등 대작 한국 영화 3편의 합계 흥행 성적은 고작 267만 7871명이다. 한국 영화 전성기 시절 추석 연휴에 한 편이 동원한 관객 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악의 위기가 흥행 성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12월까지 남은 석 달 동안의 상황은 더욱 안 좋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10월 25일 개봉하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눈에 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또 한 번의 은퇴 번복작이다.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유난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설까지 등판한다. 이보다 앞서 10월 18일에도 일본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가 개봉한다. 2023년 극장가에선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이름표만으로 흥행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위시’도 무시무시하다. 디즈니는 이미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로 723만 여 명의 관객을 동원해 2023년 한국 극장가 흥행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위시’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10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11월 개봉 예정이다.
11월에는 마블의 ‘더 마블스’가 개봉한다. 한국 극장가에서 워낙 흥행 성적이 탁월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작품인 데다 배우 박서준도 출연해 기대감이 더욱 크다. MCU는 상반기에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로 42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DC 확장 유니버스(DC EU)는 12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을 개봉할 예정이다. 마블에 비해 DC 영화는 한국 극장가에서 흥행 성적이 그리 좋지 않지만 ‘아쿠아맨’ 1편은 50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아 2편인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DC EU는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개봉에 앞서 ‘블루비틀’도 개봉할 계획이다.
거장 감독들의 신작들도 연이어 개봉한다. 우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손잡은 ‘플라워 킬링 문’이 10월 19일 개봉한다. 또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도 11월 개봉 예정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역할을 맡아 화제성을 더하고 있다. 11월에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도 개봉한다.
그나마 미국 현지에서 11월 개봉 예정이던 ‘듄 파트2’가 미국에서 진행 중인 작가와 배우들 파업으로 개봉일을 2024년 3월 15일로 연기해 2023년 하반기 개봉을 피한 것이 큰 위안거리다.
이처럼 할리우드 대작 영화들과 디즈니,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10월부터 12월 사이 연이어 개봉하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 기대작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가운데 마지막 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12월 개봉을 확정짓고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대기 중이다. 외화의 거센 압박 속에 또 이순신 장군만 믿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번에는 김윤식이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았고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 김성규, 이규형, 이무생, 최덕문, 안보현, 박명훈, 박훈, 문정희 등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아직 개봉을 확정짓지 못한 영화 ‘하얼빈’의 12월 개봉 가능성도 열려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에선 현빈이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았다.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 등으로 확고한 연출력을 보여준 우민호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영화로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유재명, 박훈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순신 장군과 마찬가지로 안중근 의사도 202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한국 영화 구하기에 나서는 셈이다. 2022년 12월에는 정성화가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은 영화 ‘영웅’이 개봉해 327만여 관객을 동원했다. 위기의 한국 영화계가 2년 연속으로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에게 의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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