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에서도 우연성이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주택 가격의 큰 폭의 하락은 네 번 겪은 것 같다. 노태우 정부의 200만 공급 쇼크,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2년 미국발 고금리 쇼크가 그것이다. 네 건의 대폭락 가운데 세 건은 외생변수, 한 건만 내생변수다. 외생변수는 주택시장 밖에서 생긴 변수, 내생변수는 그 안에서 생긴 변수다. 내생변수는 그나마 대략이라도 예상할 수 있지만 외생변수는 우연적으로, 돌발적으로 찾아온다. 주택시장만 분석해서는 예측 불가라는 얘기다.
노태우 정부의 200만 공급 쇼크로 집값이 하루아침에 급락하지 않았다. KB국민은행 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표본조사 통계 기준으로 분당신도시 시범단지가 첫 입주를 시작한 1991년부터 1993년 말까지 3년간 약 11% 떨어졌다. 신도시로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서울도 그 홍역을 앓은 셈이다. 체감지수 격인 아파트 실거래가는 KB 표본조사 통계와 대략 3~4배 차이가 난다. 실거래가는 표본조사 통계보다 오를 때는 많이 오르고 떨어질 때는 더 많이 떨어진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피부로 느끼는 아파트값 하락 폭이 깊었고 장기간 지속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미국발 고금리 쇼크의 경우 집값은 짧은 기간에 곤두박질쳤다. 병으로 따지면 오래 끌고 잘 낫지 않는 만성질환이 아니라 갑자기 닥친 급성질환 같은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미국발 고금리 쇼크에 따른 급락세는 닮아있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08월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연말까지 4개월간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17%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2022년에도 고금리 태풍이 본격화된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16% 급락했다. 수도권 역시 4개월간 비슷하게 하락(2008년 9~12월 –14%, 2022년 9~12월 –15%)했다.
한국 주택시장은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외풍에 뿌리째 흔들린다. 주택 공급이나 정책을 압도하는 외생변수에 의해 주택시장이 큰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세상일이 그렇듯 부동산시장도 기대하지 않은 일의 연속이다. 타이밍을 재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때로는 무의미해진다. 많은 사람이 집값은 공급이나 정책이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변수가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주택시장을 전망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예상 밖의 돌발변수가 닥치면 예측한 집값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때문이다.
사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단배 신세다. 세계 각국과 무역을 통해 먹고 사는 대외개방형 한국 경제는 외풍이 불 때마다 살얼음판 걷듯 조마조마해진다. 바다는 평상시에는 사슴처럼 온화하지만 언제든지 포악한 늑대로 돌변한다. 미리 방비하지 않는다면 흉포한 늑대 앞에서는 당신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큰 위기를 잘 넘겨야 생존게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인생은 앞으로도 길다. 긴 여정인 만큼 극단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하다. 그러하니 예측에 너무 함몰되지 말고 미래에 언젠가는 닥칠 우연성을 대비하라. 요컨대 섣부른 예측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는 오픈 마인드, 그리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힘이 중요한 것이다. 장기적인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예측력보다는 대응력이다. 즉 돋보기보다 망원경으로 멀리 내다보고, 그리고 함부로 예단하지 않고 탄력적인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