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가 6.9% 인상에 모회사 버드와이저에이팩 손해 만회 목적 시각…오비맥주 “원부자재·물류비 상승 때문”
오비맥주는 지난 11일부터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6.9% 인상했다. 오비맥주의 국산 맥주 제품 가격 인상은 지난해 3월 이후 19개월 만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환율 불안 속 수입에 의존하는 각종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인한 물류비 상승 등으로 제품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주류업계에선 오비맥주의 가격 인상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통상 도매업계에 가격 인상 소식을 미리 전하는데, 지난 4일 오비맥주가 기습 가격 인상을 발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주류는 원칙적으로 제조사→도매업체→소매업체→소비자의 유통단계를 거친다. 대체적으로 제조사에서 출고가를 올릴 경우, 한두 달 전 도매업체에 가격 인상 소식을 전한다는 게 주류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도매상에게 보통 1~2개월 전쯤 가격 인상을 알리는 게 관행”이라고 언급했다.
당황한 건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가 국산 맥주 출고가를 6.9% 인상하면서 도매업계는 관련 제품을 100원 더 인상된 가격으로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도매업계를 거쳐 음식점, 주점 등 소매업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격 인상을 이유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맥주 가격이 현재 가격에서 약 1000원 이상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나온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는 “서울 중심지에선 임대료·인건비 상승으로 맥주 가격이 현 가격에서 1000원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 종로구 종각 젊음의 거리에서 만난 김수현 씨(여·23)는 “이젠 소맥(소주+맥주) 마시면 기본 1만 원이 넘을 것 같다”며 “밖에서 술을 어떻게 마실지…”라고 우려했다. 광화문에서 만난 30대 남성 임 아무개 씨는 “(음식점에서) 맥주 주문할 때 손 떨릴 것 같다”며 “오비맥주가 오르면 다른 주류회사들도 가격 올리는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오비맥주 측은 원부자재 가격·물류비 상승으로 맥주 출고가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류업계에선 의문을 던진다. 모회사인 버드와이저브루잉컴퍼니에이팩 EAST부문(이하 버드와이저에이팩)의 손해를 만회하는 차원에서 수익성 개선을 위한 가격 인상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오비맥주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버드와이저에이팩은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업체인 안호이저부시인베브(이하 AB인베브)의 아시아 법인이다.
AB인베브는 올해 상반기 자사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산하 브랜드 ‘버드라이트’에 대한 불매운동을 겪었다. 버드라이트는 AB인베브의 주력 맥주다. 불매운동 원인은 성소수자 협찬으로 인해 불거졌다. AB인베브가 인플루언서인 트랜스젠더 딜런 멀베이니의 성전환 1년을 기념해 그의 얼굴이 그려진 버드라이트 에디션을 선보이면서 성전환자에 대해 거부감이 강한 보수층을 중심으로 버드라이트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AB인베브 올해 2분기 매출은 약 10% 감소했으며, AB인베브에 대한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은 5.2%포인트 줄었다. 버드라이트의 판매량은 25% 정도 급락했고, 시가총액은 약 60억 달러(한화 기준 약 8조 412억 원) 이상 증발했다. 주가도 하락했다. 2001년부터 미국 맥주 시장에서 1위를 지켰던 버드라이트는 지난 6월 기준으로 1위 자리를 경쟁 업체에 뺏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AB인베브에게 한국 시장은 수익이 목적이다. 미국 시장은 실적이 좋지 않지만 오비맥주의 카스 등 맥주는 국내 소비력이 막강하지 않느냐”라며 “(오비맥주 국산 맥주 출고가 인상은) 모회사 손해를 만회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오비맥주가 그간 “주류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고 발표했던 터라 기습적인 국산 맥주 출고가 인상에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일부에선 오비맥주의 국산 맥주 출고가 인상이 모회사에 지급하는 기술사용료(로열티) 증가에 따른 수익성 감소를 막기 위한 대책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모회사 측에선 높은 로열티로 경영성과 개선을 할 수 있고, 오비맥주 측에선 로열티 지급 금액이 올라갔지만 제품 출고가를 인상해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송강회계법인 조남억 회계사는 “모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당기순이익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2022년 AB인베브 측에 로열티 53억 8497만 원을 지급했다. AB인베브 측에 지급하는 로열티는 △2019년 14억 3993억 원 △2020년 23억 4312억 원 △2021년 51억 2977만 원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오비맥주 당기순이익은 △2020년 1599억 원 △2021년 1614억 원 △2022년 2422억 원 등이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모기업의 로열티 수익은 주로 지적재산권(IP)과 관련돼 모기업 입장에선 (로열티가) 중요한 수익원이 될 수 있다. 모회사 경영성과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오비맥주 측의 가격 인상 요인이 재료값 및 물류비 상승만이 아니라 로열티 부담도 가격 인상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원부자재·물류비 상승과 함께 지난 4월 주류세(주세) 인상도 국산 맥주 출고가 인상 원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정부에서 주세를 낮추면 출고가도 다시 낮아지냐’는 질문엔 “주세 낮추는 것과 출고가 인하는 관계없다”고 답했다.
우유·설탕·소금 등 물가 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산 맥주 출고가 인상으로 음식점·주점에서 판매하는 맥주 가격도 올라 소비자들의 시름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계수 교수는 “(오비맥주 출고가 인상 신호탄으로) 소비자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염려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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