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지 않는 일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일본인의 알코올 소비량은 1995년 1인당 연간 평균 100리터에서 2020년 75리터로 약 26% 떨어졌다. 특히 이 같은 추세는 젊은층에서 두드러진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51.0%가, 여성은 61.2%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분위기가 대세다.
지지통신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의식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이른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배경을 분석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청년층이 알코올을 기피하는 현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닛세이기초연구소의 구가 나오코 선임 연구원은 “현재 20대는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제품과 인터넷에 노출된 세대로 이전 세대에 비해 많은 콘텐츠를 향유해 왔다”며 “즐길거리가 많고 양질의 문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음주를 나쁜 오락거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청년층이 술을 기피하는 풍조가 강해지는 가운데, 20대가 오히려 주요 고객인 서비스가 있어 주목을 모은다. 온라인 주류판매점 쿠란도가 제공하는 ‘술 뽑기’ 서비스다. 쿠란도 측에 따르면 “Z세대들이 열광하는 ‘뽑기 게임’에서 착안한 것으로, 실제 구매층도 Z세대가 가장 많다”고 한다.
해당 서비스는 ‘다양한 술과의 만남’을 콘셉트로 사케, 매실주, 과실주, 소주, 와인, 크래프트 맥주(수제 맥주) 등 450종이 넘는 술 중에서 랜덤으로 몇 병을 전달한다. 금액은 5500엔(약 5만 원). 싫어하는 술이 도착하지 않도록 종류와 맛은 어느 정도 지정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진짜 뽑기 게임과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어떤 술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기대감은 물론, 도착한 술의 ‘희귀성’도 사이트상에서 즉시 확인이 가능하다. 개중에는 매매가격을 알면 깜짝 놀랄 만한 레어템도 포함돼 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한 짜릿함을 선사해 젊은층을 공략한다.
또 하나의 매력은 기존 상식을 깨부수는 다양한 술을 취급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술은 쿠란도가 일본 유명 양조장과 손잡고 독자적으로 제조하고 있다. 각 양조장에 만들고 싶은 술을 제안하고, 제조된 술을 모두 사들인 후 ‘뽑기’를 통해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독특한 술이 탄생하기 쉽다. 가령 걸쭉한 과육 식감이 특징으로 아이스크림에 뿌려 먹는 술, 디저트 몽블랑이나 피스타치오 맛이 나는 술 등 시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술들을 제공한다.
젊은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자 콜라보 기획도 다수 실시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와 캐릭터 ‘친구는 곰’ 등등 Z세대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와 협업한 술들이 대표적이다.
쿠란도의 상품개발 책임자 아오토 히데키 씨는 “Z세대의 경우 ‘술이란 이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다른 세대에 비해 적다”고 지적한다. “극소수가 좋아할 술이라고 예측한 틈새 상품도 Z세대에게는 훨씬 잘 팔릴 때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닛케이트렌드는 “색다른 술이 많다는 점과 ‘뽑기’에 대한 기대감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Z세대에게 통하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젊은 고객을 잡으려는 전략은 비단 술 뽑기 서비스만이 아니다. 해마다 음주량이 감소하면서, 일본 주류업계는 매출 부진을 타개하려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주류 회사들이 최근 미알코올·무알코올 시장에 힘을 쏟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특히 산토리는 “지금까지의 맥주에 대한 상식을 전부 깨고 제로부터 생각하겠다”며 2021년 ‘이노베이션부’를 신설하기도 했다.
일본 오이타현에 위치한 후지이 양조장은 93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그런 전통 있는 양조장이 새로운 상품 제조를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크래프트 맥주다. 후지이 준이치로 사장은 “젊은이들이 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짙어지면서 사케나 소주를 거의 찾지 않고 있다”며 “타개책으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크래프트 맥주를 선보이게 됐다”고 밝혔다. 우선은 저알코올 크래프트 맥주를 맛보게 한 뒤 소주나 사케로도 이어지게끔 한다는 전략이다.
주류 판매점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오이타현의 판매점에는 기존 전통 술과 소주뿐만 아니라 신감각을 더한 상품이 즐비하다. 과일로 단맛을 내고 알코올 도수를 7% 이하로 내려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술들이다. 오이타현 양조장조합도 기간 한정 바를 열었다. 양조장에서 만든 사케를 베이스로 하되, 예쁘게 사진이 나올 수 있도록 인스타 감성의 칵테일을 제공한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색이 바뀌는 등 알코올음료에 프리미엄 가치를 부여하는 효과를 노렸다. 여성 고객들에게 ‘인생 칵테일’로 불리며 인기가 높다는 후문이다.
닛케이트렌드는 “시대가 바뀌어 Z세대들은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이 멋있다’는 가치관이 대세다”며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제품 만들기가 중요해질 것 같다”고 보도했다. 즐길거리와 향유할 문화가 다양해지는 가운데 음주문화가 새롭게 정착할 수 있을지, 일본 주류업계의 도전은 계속된다.
일본 젊은층 술을 기피하는 속마음 "굳이? 돈+시간 낭비"
일본 젊은층은 왜 술을 멀리할까. 아사히신문이 최근 설문조사를 통해 그 이유를 물었다. 일단 알뜰파다. 한 남자 대학생은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따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겁다면 몇만 원을 내고 마실 필요성이 없다”고 말했다.
건강 지향성도 강하다. 20대 직장인은 “술을 마시면 퇴근 후 피트니스센터에 못 간다”며 “건강에도 마이너스라 꺼리게 된다”고 밝혔다. 30대 남성은 “마시고 토하면서 술이 세지는 거라고 선배들은 말하지만, 토할 바에야 굳이 마시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술을 마시고 통제력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의견도 눈에 띈다. 20대 여성은 “과음해서 기분이 나빠지거나 의식을 잃어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전했고, 또 다른 20대 남성은 “취해서 실수하면 후회가 될 뿐더러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