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영화 어려움, 중국 검열 탓” 등 발언에 안전 우려…“점심 저녁 흰 쌀밥 두 그릇이면 족해” 명언도
미국의 정부 기관지 미국의 소리(VOA)가 10월 6일 방송을 통해 홍콩 배우 주윤발(저우룬파)의 안전을 우려하는 중국 누리꾼의 반응을 소개했다. 갑자기 주윤발의 안전과 그에게 닥칠지 모를 어려움이 언급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중국의 엄격한 검열’을 정면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주윤발은 중국 당국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 있는 행보를 걷는 대표적인 홍콩 스타다. 중국 누리꾼들로부터 신변의 우려를 사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동참했을 때도 여러 우려를 낳은 바 있다. 이를 의식하지 않는 주윤발은 창작의 자유 등 자신의 신념을 숨김없이 밝혀 뜨겁게 주목받고 있다.
10월 4일 개막해 13일 막을 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연 화제의 인물은 주윤발이었다. 아시아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에 선정돼 부산을 찾은 그는 취재진과 만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관객들과 대화하는 오픈토크 및 핸드프린팅을 넘어 자신의 대표작인 ‘영웅본색’ 등을 상영하는 무대인사에 연이어 참여해 현장의 열기를 달궜다.
가는 곳마다 자유롭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목받았고, 영화와 삶에 대한 철학이 깃든 이야기로 깊은 울림을 안겼다. ‘영원한 따거(大哥·형님)’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여유로운 행보로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주윤발의 ‘검열 비판’ 발언 어떻게 나왔나
주윤발은 10월 5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가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는 상황을 “고무적이다”고 인정하면서 한편으론 홍콩영화의 ‘현재’를 이야기했다. 그가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등으로 한창 활동하던 당시는 홍콩영화가 아시아를 대표하던 전성기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어 홍콩영화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홍콩의 배우와 감독들은 할리우드 등으로 옮겨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주윤발은 홍콩영화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으로 ‘중국 당국의 검열’을 짚었다.
기자회견에서 주윤발은 “지금은 규제가 많아 영화 제작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영화 시나리오는 당국의 여러 부서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하고, 당국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제작비 마련조차 어렵다”고 밝혔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영화 창작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열이 너무 많이 이뤄진다”고 토로했다.
주윤발은 1997년 이후 홍콩영화의 제작 환경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1997년은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시기. 비단 영화뿐 아니라 홍콩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특히 자유로운 상상에 기댄 창작의 영역은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게 주윤발의 생각이자 동시에 대다수 홍콩 영화인들의 견해다.
이와 관련한 질문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받은 주윤발은 “(홍콩 영화인들은) 정부의 지침에 주목해야 하는데 만약 따르지 않으면 영화를 만들 제작비를 확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계속 영화를 만들고 창작을 이뤄나가기 위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홍콩의 영혼이 깃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도 덧붙였다.
주윤발의 창작과 검열에 대한 언급은 즉각 홍콩과 중국에도 소개됐다. 다만 중국에서는 공식적인 매체에서 주윤발의 발언을 소개하는 경우를 찾기 어려웠다. 웨이보 등 SNS를 통해 누리꾼들이 주윤발의 이야기를 공유하거나, 간접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누리꾼들은 주윤발을 두고 ‘홍콩의 독립파’라고 분류하기도 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이와 관련해 “주윤발의 검열 관련 발언이 중국 누리꾼의 공감을 사지만 한쪽에선 그의 발언을 비난하면서 향후 중국에서 안전에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걱정한다”고 짚었다.
사실 주윤발이 홍콩 독립의 편에 서서 자유를 주장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는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로 시작한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2019년 10월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시위에 참여한 모습이 포착됐다. 시위대에 참여한 한 시민이 그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했고 이에 응해 찍은 사진이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화제를 뿌렸다. 주윤발은 2014년 홍콩 우산혁명 당시에도 시위대에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욕심 없고 자만 않는 ‘진정한 슈퍼스타’ 면모
주윤발은 1976년 데뷔해 지금까지 약 100편의 영화에 출연한 홍콩영화 상징이자 세계적인 배우다. 1986년 ‘영웅본색’을 시작으로 ‘가을날의 동화’ ‘첩혈쌍웅’ ‘도신’ ‘상하이’ ‘와호장룡’ ‘황후화’ 등 숱한 대표작을 보유하고 있다. 오는 11월 1일에는 새 영화 ‘원 모어 찬스’로 관객을 찾아온다. 헤어졌던 자폐증 아들과 다시 만나 가족의 사랑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웠다”는 주윤발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휴먼 가족극이다.
주윤발은 여전히 연기에 대한 의욕이 강하다. 그런 바람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그는 “홍콩의 작은 바닷마을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도시로 나갔지만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기에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영화는 한번 촬영하면 그 인물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그 경험은 나에게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세상을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50년 동안 영화를 통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에 따르는 명예와 막대한 부도 축적한 주윤발은 자신의 재산 대부분인 8000억 원을 기부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그는 “나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내가 했다”고 장난스레 입을 연 뒤 “이 세상이 올 때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기에 갈 때도 아무것도 갖고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던 이유다. 그러면서 “나는 점심과 저녁에 먹을 수 있는 흰 쌀밥 두 그릇이면 족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주윤발은 요즘 마라톤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기도 하다. 마라톤에 푹 빠진 그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해운대 바닷가를 달리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인생의 첫 번째 60년은 영화와 함께 지나갔고 두 번째 60년은 마라톤에 집중하고 있다”는 그는 “만약 새 영화 ‘원 모어 찬스’가 흥행하지 않으면 이참에 운동선수로 전향할 수 있다”도 말했다.
60대 후반에 이른 주윤발은 더 이상 ‘영웅본색’ 속 따거의 모습은 아니다. 주름진 얼굴에서는 노년의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는 나이 듦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법”이라며 “주름이 생기는 걸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카메라 밖으로 나가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낮춘 그는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진정한 슈퍼스타’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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