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3선 이상 20여명 행보 주목, 용산맨들 대거 낙하산 가능성…승리 방정식 될지 놓고는 ‘갑론을박’
내년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 선거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용산 대통령실의 추천 인물들이 대거 공천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도 여기에 추동력을 줄 전망이다. 그러나 무조건 서울행 상행선 기차를 태우거나 물갈이 폭을 늘리는 게 과연 승리 방정식이 맞느냐를 두고 갈등의 불씨도 만들어지고 있다. 적잖은 분란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하태경 다음 주자는 누구?
하태경 의원의 깜짝 선언은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7일 나왔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년 총선에서 제 고향 해운대를 떠나 서울에서 도전하겠다”며 “서울에서 승리한다면 우리 당은 두 석을 따내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 의원은 서울행 배경을 두고 “서울 출마는 정치 소신”이라며 “재선의원 시절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 법안을 공동 발의한 바 있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신인 정치인들이 많이 들어와야 정치도 발전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내에서는 “하 의원이 대단한 결단을 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대세를 읽은 발 빠른 결정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중진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거부할 명분이 갈수록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하 의원이 이 현실을 재빨리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하 의원은 8월 1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나가 수도권으로 자신을 차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말에 대해 “전략 공천은 추호도 생각 없다”며 지역구 고수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수도권 중진 차출론에 대해 “이는 그냥 공천 주기 싫다는 이야기로 만년 비주류의 숙명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런 이야기는 초선 때부터 나왔다. 해운대 빨리 떠나라, 공천 안 준다는 이야기는 못 하니까 이런 식”이라고 지적했다.
방송 진행자가 “구체적으로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해운대갑 출마 얘기가 있다. 경선까지 생각하고 있냐”고 묻자 하 의원은 “저는 총선 때마다 경선 안 한 적이 없다”며 “이번에도 경선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해운대에서 할 아주 큰 일이 좀 남아 있다”고도 했다. 이런 발언을 봤을 때 이번 결정엔 뭔가 복잡하면서도 말하기 힘든 사연이 얽혀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어찌됐든 하 의원이 내놓은 서울행 기차표는 여권 전체에 작지 않은 충격파를 던졌다. 큰 폭의 물갈이 공천으로 이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김기현 대표는 10월 8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유세 도중 기자들과 만나 하 의원의 서울 출마 선언에 대해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한다”며 “하 의원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서울 쪽에서 당이 지정하는 곳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언급, 당 주도로 중진 험지 출마를 실현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기반인 TK(대구·경북)와 PK(부산·울산·경남)를 비롯해 강원권과 서울 강남권, 충청권까지 범위를 넓히면 3선 이상 의원은 20명을 훌쩍 넘는다. 하 의원이 가장 먼저 끊은 서울행 기차표가 이들에게도 강제 발권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당내 개혁파로 꼽히는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10월 11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가 내년 총선에서 서울에 출마하면 좋을 것 같은 의원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제일 좋은 분은 장제원 의원”이라고 답했다. 장 의원은 하태경 의원처럼 부산을 지역구로 둔 3선 의원이다.
천 위원장은 “하태경 의원의 서울 출마 선언을 계기로 윤핵관, 고위 당직을 맡은 의원들이 서울 험지에 출마하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총선에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윤핵관으로 불렸던 장 의원이나 강원도가 지역구인 권성동 의원, 울산이 지역구인 김기현 대표, 대구가 지역구인 윤재옥 원내대표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태경 의원도 천 위원장과 같은 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 ‘친윤(친윤석열)계 핵심’으로 꼽히는 장제원 권성동 의원의 수도권 출마 가능성에 대해 “당 승리를 위해 가장 앞장서서 노력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본인들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것으로 본다”고 발언, 중진들에 대한 상행선 기차 승차 압력이 상당함을 드러냈다.
#용산맨들 대거 출마하나
인지도가 있는 중진들이 영남권 등 국민의힘 텃밭을 비우고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기면 텃밭에는 정치 신인들을 보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최우선적 공천 대상으로 거론되는 후보들이 이른바 ‘용산맨’들이다. 대통령실 근무 경력자들이 여당 공천자 명단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여권의 관측이다.
정가에서는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 안팎의 윤석열 정부 전·현직 대통령실 참모들이 공천 경쟁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 수석급만 해도 이진복 정무수석,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등의 유력 후보군이 있고 비서관급에서도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 전희경 정무1비서관 등이 거명된다. 행정관급에서도 다수가 이미 총선 행보를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
용산맨들 이름부터 자꾸 나오는 것은 내년 총선이 윤 대통령 간판으로 치러지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잘 체득해왔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대표 주자가 대통령실 근무 경력자들이어서 역대 정부는 총선 때마다 적잖은 대통령의 사람들을 총선에 내왔다.
대통령 단임제 최대 약점은 레임덕이 빨리 찾아온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중·후반 무렵 총선이 지나가면 다음 공천에서 영향력 행사가 불가능해진 대통령에 대해 여당 국회의원들은 전과 달리 살가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임기 종료까지 이어줄 국회 내 메신저들을 대통령이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자신을 보좌했던 참모들을 통해 여당과 국회에 대한 장악력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2020년 총선 때 문재인 정부 청와대 근무자는 무려 30명이나 출마했고 이 가운데 19명이 국회의원이 됐다.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 고민정 전 대변인 등 고위직들은 모두 당선됐고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도 배지를 달았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총선차출용 인사가 너무 잦다”는 비판이 쏟아졌는데도 불구, 참모 밀어붙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이 국회로 대거 진출하면서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사실상 레임덕을 겪지 않았고 퇴임 후에도 강력한 방어막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여권 핵심부도 이 모델을 벤치마킹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은 ‘찍어 누르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용산맨들을 여러 지역구 경선 경쟁에 투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당 쇄신 차원에서 정치 신인들을 대거 투입해 현역 의원 교체율도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예측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으로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옛 국민의힘)은 47%라는 높은 현역의원 교체비율을 기록한 가운데 152석 과반 이상을 가져갔던 기억을 여권은 갖고 있기도 하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인해 “확 바꾼다”는 기조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텃밭 중진의 서울행이 여의치 않거나 서울에서의 승산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중진들을 대거 퇴진시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보궐선거 참패로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라 불출마 선언을 유도하거나 공천 심사에서 무더기 탈락시키는 극약 처방까지 불사한다는 것이다.
#부작용 만만치 않을 수도
당내에서는 일률적이고 원칙 없는 중진 차출, 물갈이는 오히려 화근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쏟아진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패한 2020년 총선을 근거로 들면서다. 당시 중진들을 향한 험지 출마론이 나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경우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는 서울 양천갑 또는 용산 출마를 타진하다가 당내 비판에 종로로 선회했다.
서울 강북 지역에 출마했던 이혜훈(서울 서초갑→동대문을) 김재원(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서울 중랑을) 전 의원도 패배했다. 험지 출마 요구에 반발했던 홍준표 대구시장과 권성동 김태호 의원 등은 각각 공천 배제 후 고향으로 돌아가 무소속 출마, 당선됐다.
당시 험지 출마의 희생자가 됐던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0월 11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그냥 끌고 그쪽에 갖다놔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이는 그냥 가서 죽으라는 것이지 무슨 수도권 차출이겠는가”라고 했다. 또 “당에서 도와주는 등 여러 가지 조치가 있어야지 그냥 고향에서 쫓아내듯이 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고 당의 세력만 약화시켜서 총선 폭망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여당 중진인 권영세 의원도 10월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비관론을 폈다. 그는 “중진 혹은 다선 의원들을 이리로 저리로 옮기고 하는 건 역대로 보면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면서 “중진이 수도권에 가서 선전을 해야 되는데 거기서 선전한 중진들이 별로 없었다. 거꾸로 수도권 지역구의 새롭고 참신하고 또 앞으로 정치적으로 클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내는 게 오히려 더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태경 의원조차 10월 11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자신의 서울 출마 선언으로 당내에서 중진 험지 출마 요구가 거세지는 데 대해 “중도 확장성이나 서울 내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지, 일률적으로 ‘3선 이상은 다 서울 가라’ 이랬다가는 오히려 부작용만 더 커진다”고 진단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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