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빚투 쉬워진 데다 리딩방 풍문 듣고 매수도…금융투자 환경·교육 개선해야
올해는 기술 테마주 열풍이 유난히 강하게 불었다. 이차전지 관련 테마주가 포문을 열더니 그 열풍을 초전도체 관련 테마주가 이어받았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 ‘0’인 물질을 일컫는다. 전기저항이 없다면 전력 효율이 높아지고 발열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활용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기존에 없던 물질은 아니다. 영하 240도 이하의 극저온이나 초고압 등의 극한 상황에서 만들 수 있지만, 제한적인 범위에서 사용됐다. 초전도체를 사용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려면 큰 비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국내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지난 7월 상온 초전도체의 실존을 주장한 논문을 냈다. 해당 물질은 LK-99다. 저항이 0인 물질을 상온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활용 분야가 광범위해 꿈의 신기술이란 말까지 나왔다.
증권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상온 초전도체 관련주 찾기가 시작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서원과 덕성, 대창 등이 상온 초전도체 관련주로 묶였다. 코스닥에서는 서남과 신성델타테크, 파워로직스, 국일신동, 모비스 등이 포함됐다. 이들 종목은 초전도체 테마주 열풍을 타고 저점 대비 최대 3배 이상 상승하기도 했다.
문제는 검증을 위해 상온 초전도체 물질을 구현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유의미한 성공은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 종목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체가 불확실한 이유로 주가가 급등한 탓에 피로감이 누적된 데다 실제로 이미 전 고점 대비 반토막 난 종목들도 나오고 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일반 투자자는 테마주에 접근하지 말 것을 당부드린다.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기관 투자자들도 테마주는 변동성이 커 접근을 하지 않는다”며 “특히 신기술 테마주에는 세력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아 투자처로 추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온 초전도체와 같은 신기술 테마주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데는 구조적인 배경도 있다. 최근 유동성 공급 확대로 ‘빚투’(빚내서 투자)가 쉬워졌다. 또 ‘단타’ 위주의 매매가 이뤄지는 등의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은 테마주 관련 ‘빚투’가 과열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일평균 위탁매매 미수금 가운데 반대매매 금액은 531억 3600만 원으로 집계됐다. 반대매매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6년 2분기 이후 최대치다. 전년 동기 150억 8500만 원과 견줘 250% 이상 급증했다.
일부 세력이 개입해 개인 투자자의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신기술 테마주를 띄우는 경우도 있다. 이때 동원되는 것이 인터넷을 통해 실체 불분명한 정보를 유통하는 ‘리딩방’이다. 리딩방에서 유료 회원을 모집하는 경우도 많다.
금감원 측은 리딩방에서 테마주와 관련된 거짓 풍문이 유포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정 회사가 테마와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는 것처럼 꾸며 주가를 띄우거나 리딩방 운영자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테마주라고 속여 매수를 유도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금융당국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유사투자자문업자가 리딩방을 개설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금감원은 연말까지 특별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신기술 테마주에 투자금이 쏠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규식 회장은 “한국은 기업 지배구조가 후진적이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들이 기업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기 적합하지 않다”며 “이 같은 환경 때문에 수급이 확실한 신기술 테마주에 자금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는 것”이라면서 “신기술 테마주와 같은 열풍을 잠재우려면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돼 상식적인 투자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투자자들은 신기술 테마주가 상식 밖으로 급등하는 것을 목격했다. 1999년 8월 코스닥에 상장한 새롬기술(현 솔본)은 이듬해 2월까지 6개월 만에 공모가 대비 150배가량 뛰었다. 당시 상한가 기준은 12%였는데, 이 기간 상한가를 기록한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다. 이는 우리 증시 역사상 최단 기간, 최대 상승률이다.
새롬기술이 무료 인터넷 전화를 출시한다는 소식이 주가에 날개를 달았다. 당시 전화요금이 고가였던 때라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는 새롬기술의 독자적인 기술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기대감이 실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때 28만 원대까지 상승했던 주가는 현재 3000원에서 거래되고 있다.
새롬기술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투자자들은 다른 신기술 테마주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상온 초전도체 테마주 이후 다른 신기술 테마주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맥신 테마주, 양자 얽힘 테마주 등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불법이라면 모를까 신기술 테마주를 금융당국이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기술이 실제로 도입되면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테마주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금융당국은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체가 불분명한 테마주에 손실을 입지 않도록 금융투자 관련 교육을 강화 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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