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보금자리론 공급 중단 때문?
한국부동산원 조사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 5월부터 상승 전환해 9월까지 5개월 연속 올랐다. 10월에도 셋째 주까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격 반등은 거래 회복과 함께 나타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집계한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840건으로 올해 가장 높았던 지난 6월의 3848건에 버금갔다. 극심한 거래 절벽으로 가격이 하락했던 지난해 월 평균 거래량이 1000여 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증가세였다.
증가세는 3040세대가 이끌었다. 1~7월 서울 아파트 매매는 2만 1313건으로 1년 전(1만 959건) 같은 기간보다 94% 늘었다. 40대가 5997건으로 128%, 30대가 7055건으로 114% 급증했다. 3040 비중만 61%다. 주택자금 마련의 가장 큰 걸림돌이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로 2021년의 ‘영끌’ 열풍이 재현됐다.
그런데 10월 들어 18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는 321건으로 지난해 9월과 8월의 같은 기간 기록인 748건, 589건의 절반이 안된다. 10월 초에 몰린 연휴 탓은 아니라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매수세를 이끌었던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공급이 9월에 중단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집값은 올랐는데 돈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매수세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수도권 아파트도 1순위 청약 미달
올해 초만 해도 정부는 집값 급락을 막기 위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용인하는 입장을 취했다.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떼돈을 번다는 질타까지 했다. 정부는 DSR 우회로를 열었고 이에 호응한 은행들은 가산금리까지 낮춰 대출금리를 끌어내리며 주택 시장에 자금을 공급했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정부의 태도가 돌변했다.
가산금리까지 낮추며 대출을 늘렸던 은행들도 이제는 가산금리를 상향하며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10월 17일 기준 주담대 변동금리(코픽스 신규)는 4.53~7.116%다. 고정금리(금융채 5년)는 4.14~6.584%다. 신용대출 금리(금융채 6개월)는 4.59~6.59%이다. 집값 하락보다 가계부채 걱정이 더 커진 정부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월 17일 열린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해 “늘지 않으면 좋지만 이미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이) 100%, 105%까지 늘어난 상황”이라며 “101% 이하로 내리는 노력을 하고 있고, 내년과 후년이 지나면 100% 이하로 내리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경제성장률이 올해 1%대인 점을 감안하면 분모인 국내총생산이 아닌 분자인 가계대출 총액을 줄여야 비율을 낮출 수 있다.
대출 환경이 악화되자 집을 사려는 이들도 급감하고 있다. KB부동산이 조사하는 매수우위지수를 보면 서울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9개월 연속 상승하다 정부가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은 9월에는 내림세로 돌아섰다. 지방에서도 세종, 충남·북, 대구, 광주·전남, 제주 등에서 이 지수가 하락 반전했다. 경기도는 6개월째 매수우위지수 상승을 이어갔지만 상승폭은 급감했다. 매수우위가 약화되면 거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계약이 체결되려면 매도자가 호가를 낮춰야 한다. 매매 대신 전세를 택하면서 전셋값 상승폭이 매매가 상승폭을 추월하는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전세사기 우려가 적은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는 모습이다.
투자심리가 빠르게 식으면서 수도권 아파트에도 1순위 청약 미달이 나오고, 높은 경쟁을 뚫고 당첨된 아파트에서도 미계약이 속출하고 있다. 1·3 부동산대책으로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를 제외한 전국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게 되면서 분양가는 크게 높아졌는데 돈 구하기는 어려워지고 집값 상승 전망이 희미해지자 구매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난 결과다.
지난 9월 1순위 경쟁률 14 대 1을 기록한 서울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는 일반분양 771가구 중 40% 수준인 300여 가구가 미계약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25 대 1의 1순위 경쟁률을 기록한 구로구 ‘호반써밋 개봉’도 190가구 중 72가구가 미계약됐다. 10월 17일 경기도 광명시 ‘트리우스 광명’ 1순위 청약은 517가구 모집에 2444명이 몰려 경쟁률은 평균 4.7 대 1에 그쳤다. 8개 타입 중 5개가 미달했다. 전용 84㎡ 분양가가 최고 11억 8600만 원으로 지난 5월 분양한 옆 단지 ‘광명자이더샵포레나’ 같은 면적 분양가(10억 4550만 원)보다 1억 원 이상 비싼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서 터진 폭탄, 부동산 PF에 불똥
금융시장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긴축 가능성이 더 커지면서 달러 강세에 따른 원화 약세, 그에 따른 금리 상승 확률이 더 높아졌다.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자금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들은 1년 만에 다시 심각한 자금난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10월 18일(현지시각) 미국 10년 국채 금리가 4.9%를 돌파하면서 한국 국채 금리도 다시 급등하며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최근 국채와 회사채의 금리차이(Spread)는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회사채 금리가 높아져 자금시장이 경색되면 우량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낮은 은행대출로 이동하게 된다.
은행들은 지난해 가을 모집했던 고금리 예금을 상환할 준비도 해야 한다. 더 높은 금리의 예금으로 잡아두는 방법도 있지만 자칫 금융권의 수신 경쟁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 고금리 예금과 함께 은행채 발행을 늘려 현금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 결국 은행들은 기업 대출재원 마련을 위해, 예금 만기에 대비해 은행채 발행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다.
마침 정부가 은행채 발행 한도도 풀었다. 민간 기업 가운데 가장 우량한 은행들이 시장 자금을 빨아들이면 상대적으로 ‘덜 우량해’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기업들이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덜 우량한’ 기업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곳이 부동산 PF들이다.
지난해 가을 한국전력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과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됐던 자금대란이 1년 만에 재현되는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10월 18일 기준 CP(기업어음) 91일물 금리는 8거래일 연속 상승해 4.16%까지 치솟았다. 지난 연말 이후 최장 상승세다. 금리수준도 지난 2월 15일(4.16%) 이후 8개월래 최고다. 대형 증권사나 카드사도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이자를 5% 이상 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이들이 주로 자금을 공급하는 부동산 PF 조달금리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주요 부동산 PF의 선순위 대출금리는 대형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약속한 곳조차도 연 10%를 넘어서고 있다. 대형 건설사가 준공을 확약한 PF 사업장의 선순위 대출 금리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연 6~8% 수준이었다. 중소형 건설사가 시공사인 곳은 돈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도 오르고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연말을 앞두고 위험관리에 들어가며 돈줄이 마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추석 전 내놓은 부동산 PF 대책의 핵심은 보증한도 확대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주택금융공사(HF)의 보증한도는 대책 전에도 남아돌았다. 보증한도가 늘어도 보증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자금난을 피하기 어렵다. 금리가 계속 상승해 주택 매수세가 더 위축된다면 부동산 PF의 사업성이 회복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수 있다. 미국의 긴축 기조는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 확대는 한은에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정부의 미봉책으로 내년 총선 후 부동산 PF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권은 물론 건설업계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