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무늬만 쇄신 뭇매, 김한길 조만간 링 위로?…유승민·이준석 ‘반윤’ 신당 파괴력 놓고는 관측 엇갈려
#정답 아닌 오답으로 뭇매
강서구청장 선거가 여당의 참패로 끝나자 현 집권세력에 대해 우호적 메시지를 전해온 보수언론들마저 전면 쇄신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총선이 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끝난 2020년 21대 총선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였다. 사실상 김기현 대표가 책임을 지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선출직 지도부 유임·임명직 지도부 퇴진’이라는 부분 쇄신 카드를 내놨다. 보선 참패 사흘 만인 10월 14일 임명직 당직자 전원이 총사퇴하면서 김기현 체제 유지에 일단 길을 틔워준 뒤 새 당직자들이 이내 임명되면서 김기현 2기 체제 출범으로 ‘쇄신 인선’이 일단 마무리됐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쇄도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당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서병수 의원은 10월 15일 페이스북에 “김기현 대표에게 묻는다. 대통령실만 쳐다볼 게 아니라 국민의 소리를 앞서 전달할 결기가 있는가. 정부가 민심과 엇나갈 때는 야당보다 더 단호하게 바로잡겠다는 그런 결기가 있는가”라고 썼다. 그리고는 “그럴 각오가 없다면 물러나라. 집권당 대표라는 자리는 당신이 감당하기에 버겁다”면서 김 대표를 직격했다.
이에 앞서 홍준표 대구시장도 10월 14일 “부하에게 책임을 묻고 꼬리 자르기 하는 짓은 장수가 해선 안 될 일”이라며 “그 지도부로서는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고 국민이 탄핵했는데, 쇄신 대상이 쇄신의 주체가 될 자격이 있나”라고 언급, 김기현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기현 2기 체제’ 인선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컸다. 신임 사무총장에 대구·경북(TK) 출신 재선 이만희 의원, 전략기획부총장 수도권 초선 배준영 의원, 정책위의장에 수도권 3선 유의동 의원이 임명됐고 지명직 최고위원으로는 여성 비례대표 김예지 의원이 들어왔다. 조직부총장에는 함경우 경기 광주시 당협위원장이, 여의도연구원 원장에는 수도권 재선 김성원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강원 원주가 지역구인 박정하 의원이 발탁됐다.
친윤 일색이라는 비판을 상쇄시키고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포장지가 씌어졌지만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만희 사무총장은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도 있지만 “수도권 선거를 진 마당에 또 TK냐”는 공격에 직면했다. 또한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수행단장을 지낸 이력도 ‘친윤 2탄’이라는 뒷말을 낳았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대위 체제 등 대대적인 쇄신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또 2기 지도부 인선이 ‘친윤 일색’ ‘도로 영남당’이란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이 부족해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월 17일 기자들과 만나 이 의원의 사무총장직 임명에 대해 “지역 안배를 하려고 애썼지만, 현실적으로 적합한 인물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수도권 중심으로 많이 배치하려고 김기현 대표가 애쓴 걸로 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구체적인 숫자도 거론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의원은 17명에 불과하고 이 중 초선을 제외하면 수도권 지역 의원 수는 한자리 수로 줄어든다. 4선 권영세(서울 용산구) 4선 김학용(경기 안성시) 3선 안철수(경기 성남시분당구갑) 4선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구을) 의원 등인데 인선 풀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친윤 핵심 유상범 의원은 10월 1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현재 중진 의원 다수가 영남 출신이라는 점을 한계로 들면서 “당에서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그룹, 중진그룹이 다 영남에 집중돼 있다”며 “인물을 선정하는 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육지책”이라고 했다.
#비대위 가야 한다면 김한길로?
국민의힘이 내놓은 부분 쇄신 카드는 고육지책이 아니라 근본적 치유책인 비대위 체제로 가지 않기 위한 회피 전술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3·8 전당대회 때부터 끊임없이 리더십 논란이 제기된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이 이번 보선 참패로 완전히 흔들려버린 상황이다.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 없이 약 처방으론 어려운데도 약국만 드나들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의 의도와 연결 짓는 기류도 확산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비대위 전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총선을 몇 달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용산과 호흡이 잘 맞았던 김기현 체제가 물러나고 비대위가 출범할 경우 자칫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총선의 핵심은 공천이고, 용산 역시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안정적인 집권 중후반기를 위해선 우선 집권당 내에 든든한 친정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공천을 주도해야 한다. 대통령실과 검찰 출신들의 대규모 공천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여당에 공천권을 거머쥘 수 있는 비대위가 등장하면 국면을 달라질 수 있다. 비대위원장 인선에 따라 권력 전이 현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박근혜 비대위’ ‘김종인 비대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비대위원장으로서의 권한을 최대한 휘두르면서 실력자로 자리매김했다.
대통령제 하에서 여권의 구심점은 대통령인데 이런 모습이 나타날 경우 국정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은 물론, 여권에 대한 시선이 분산돼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민주당에게만 좋은 선물을 안겨준다는 게 비대위 체제 불가론자들의 주장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벼랑 끝에 몰린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그해 말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전환, 혁신의 모습을 보이면서 이듬해 총선 승리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인해 완전히 세력 전이를 당해 순식간에 과거 권력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 과거 사례를 모두가 알고 있는데 임기 초반 용산이 여당의 비대위를 어찌 받겠나.”
‘비대위 체제’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여권 일각에선 ‘김한길 비대위’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일단 혁신위를 띄워 급한 불을 끄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혁신위가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어 회의론이 높다. 가깝게는 민주당이 내세운 ‘김은경 혁신위’기 대표적이다.
여권에서는 혁신위 카드가 통하지 않으면 ‘김한길 비대위’로 가는 통로가 열릴 것이란 관측이 여기저기서 거론된다. 어떤 식으로든 김한길 위원장이 총선 전에 등판할 가능성이 높은데, 비대위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전개되면 차라리 이를 김 위원장이 맡는 식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다.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독대하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이 10월 17일 국민통합위와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청해 주재한 만찬에서 “국민통합위의 다양한 정책 제언을 우리 당과 내각에서 좀 관심 있게 꼼꼼하게 한번 읽어 달라”며 국민통합위 정책 제안 보고서 100부를 당에 배포하라고 지시한 장면만 봐도 그에 대한 대통령의 무한 신임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총선 역할론에 대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나의 거취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어디 안 간다”며 국민통합위 간부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큰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계개편 전문가’ ‘신당 설계자’ 등으로 잘 알려진 김 위원장이 조만간 링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경우에 ‘비대위를 가장한 친윤 체제’라는 질타가 나올 수 있어 여권의 혼돈 상황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친윤 신당은 글쎄, 이준석 신당은 가시화
여권 비주류에선 ‘김기현 체제’에 대한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다. ‘용산 출장소’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한 총선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힘센 대표’로의 교체 목소리도 그 연장선상이다.
압도적인 대통령 지지율을 보였던 문재인 정부 때 여당 대표는 이해찬 추미애 이낙연 송영길 등이었다.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이끌면서 적어도 겉으로는 당정이 균형 잡힌 모습을 노출, 여권 전체에 대한 일정 부분 신뢰를 만들어줬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독자적 힘을 가지는 여당의 위상을 다시 회복시키는 결기를 김기현 대표가 보여주느냐에 따라 당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출마 선언을 하거나, 아니면 퇴진이라는 충격 요법을 통해 여당을 ‘할 말 하는’ 위치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비주류에서 나온다.
이참에 간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민주당 이탈그룹, 3지대 세력 등을 모두 합쳐 새로운 집권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 골자다. 여기에도 김한길 위원장 이름이 거론된다. 김 위원장이 12월경 신당 출범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도 뒤를 잇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 친윤 의원은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하면서 “신당을 만들 명분도, 동력도, 시간도 없다. 당을 흔들려는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다. 신당을 만들고 싶으면 당을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주류발 신당론은 이보다 더 현실적이다. 이른바 ‘유승민 이준석 신당’이다. 정가에선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가 ‘헤어질 결심’을 굳혔다는 게 중론이다. 또 신당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정황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이 전 대표가 대구에, 유 전 의원이 수도권에 출마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유 전 의원은 10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12월쯤 저는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신당을 한다는 거는 늘 열려 있는 선택지고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도 같은 날 MBC 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에 출연 “유 의원은 12월로 잡은 것 같고 , 저도 나름대로 마지노선이 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 때) 배운 것이 정당을 혁신하는 데 100일 정도가 마지노선이겠구나였다. (총선) 100일 전이면 12월 말 크리스마스 이후”라고 했다.
유승민 이준석 신당은 ‘반윤’을 기치로 내걸 것으로 보인다. 신당에 대한 여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윤상현 의원은 “수도권에 엄청난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 전 대표에게 노원병 공천을 줘 당에 잔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윤계에선 신당 영향력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민주당으로 갈 표를 잠식, 여당에 유리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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