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지 못하셨다. 하루 종일 일하시고 집에 돌아오셔서는 그래도 자식들에게 맛난 거를 먹이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하셨지만 어머니의 요리는 맛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1960년대 1970년대 유년기를 보낸 우리 형제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맛있다 맛없다로 평가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맛보다는 양이 더 중요했던 시대였다.
아버지는 요리를 잘하셨다. 직접 집에서 밀가루를 밀면서 만들어주신 칼국수는 별미였고 된장찌개 하나를 끓이셔도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가끔 남은 나물반찬 등을 넣어 쓱쓱 비벼주시는 비빔밥의 감칠맛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저 소금간으로 만들어주신 콩나물국은 뜨겁게 먹어도 맛있었고 차갑게 먹어도 별미 중의 별미였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해주시는 음식을 더 기다리곤 했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전쟁 같은 생활전선에서 고생하시고 돌아오시는 아버지가 직접 음식을 하시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다만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타박하셨다. 어머니가 나름 열심히 만들어주신 음식의 맛을 보시곤 “이건 조선간장을 넣었어야지” “아니 이건 들기름에다 볶았어야지”하시면서 품평을 하시고 불만을 말씀하시고 항상 지적을 하셨다.
난 밥상에서 매일같이 계속되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싫었다. “아니 같이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그래도 정성껏 해주신 음식인데 그냥 드시지 왜 매번 지적을 하시고 뭐라 하시는 거지?”하며 아버지와 같이 밥 먹는 게 싫어서 언제나 빛의 속도로 배고픔을 면하곤 밥상을 떠나버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은퇴를 하고, 자식들도 다 결혼시켜 출가시키시곤 두 분이 단출하게 살고 계신다.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되신 어머니는 요리에 취미를 붙이셨는지 한 달에 한두 번 가는 아들에게 정성껏 차리신 음식을 매번 맛보게 해주셨다. 그러나 역시 어머니의 음식은 맛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와 형제는 언제나 어머니의 음식을 칭찬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해드렸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진짜 맛있냐? 정말 너 입에 맞냐?”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저는 어머니 음식이 딱 맞습니다”라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곤혹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음식을 싸주실 때다. “너가 맛나게 먹는 걸 보니 내가 기분이 좋아서 배추김치를 싸두었다, 집에 가서 먹어라”하고 주실 때마다 “어머니 집에 김치 많아요”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사먹는 것이 어떻게 엄마김치만 하겠냐며 억지로 싸주셨다. 그러면 나는 입맛에도 안 맞는 그 김치를 묵혀두었다가 김치찌개를 해먹곤 했었다.
몇 해 전 명절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밥상을 마주했는데 무심코 먹은 김치의 맛이 정말 환상이었다. 그저 맨밥에 김치만 먹어도 밥 두 공기는 거뜬히 비울 만큼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김치를 접하곤 어머니에게 “어머니 정말 김치가 끝내줍니다, 김치 좀 싸주세요”라고 하자 아버지가 옆에서 “정말 김치 맛있지 않냐? 엄마김치 먹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 김치 내가 담갔다”라고 하셨다. 여전히 아버지는 어머니의 음식을 품평하고 지적하고 타박하고 계셨다.
올 추석 차례를 지내고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한 밥상에서 난 눈물이 쏟아지는 걸 겨우 겨우 참았다. 이제 80대 후반이 되신 아버지가 턱받이를 하고 어머니가 먹여주시는 음식을 꼬박꼬박 받아 드시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밥 위에 골라주시는 반찬을 맛나게 드셨다. 아무런 타박도, 아무런 지적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어머니가 수저를 들고 반찬을 김치를 놓아주시면 입을 크게 벌리시고 어린아이처럼 식사를 하셨다.
“아버지 어머니가 해주시는 반찬이 어때요? 맛나시죠?”하니 아버지는 “그럼 최고지, 최고야”하시면서 어머니를 보고 웃으셨다. 매일같이 음식타박을 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음식에 처음으로 감사의 말씀을 하시고 칭찬을 하시고 고마워하셨다. 어머니의 요리가 맛나진 것이다, 어머니의 음식이 마법을 부려서 아버지의 타박을 불평을 다 없애준 것이라 믿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마침내 요술을 부리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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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