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부상, 질병, 굶주림의 3재가 들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서민경제가 3재의 악운에 걸렸다. 스태그플레이션, 스크루플레이션, 애그플레이션이 바로 그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세계경제불안이 확산되면서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가 불황으로 치닫고 고용이 악화일로다. 이 와중에 식품, 석유, 공공요금, 전월세 등 생활물가는 빠른 상승세다. 서민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의 고통이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스크루플레이션은 경제적 고통이 서민생활을 쥐어짜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계층 간 양극화가 심하다. 따라서 부유층은 경기침체나 물가상승의 고통을 크게 받지 않는다. 대신 그 고통을 서민들이 집중적으로 받는다. 이런 상태에서 서민생활을 극도로 쥐어짜는 것이 가계부채다. 경기침체로 삶이 불안한 서민들이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며 살인적인 금리를 감당해야 한다. 빚더미에 눌려 살길이 막막한 서민들이 500만 명을 넘는다.
끝으로 애그플레이션은 농산물가격이 올라서 경제전반에 물가상승을 촉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따라서 농산물 가격이 예년에 비해 턱없이 높다. 더욱이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 농산물 생산국가에서도 가뭄이 심했다. 이 때문에 옥수수, 밀, 콩 등 곡물의 국제가격이 급등세다. 곡물 수입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나라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연말이면 애그플레이션이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저소득층은 생활비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애그플레이션의 고통은 대부분 서민들의 몫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볼라벤, 덴빈 등 초강력 태풍이 연이어 한반도를 강타했다. 어촌과 농촌이 아수라장이다. 어민과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신선식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정부는 농어민의 피해보상을 신속히 해야 한다. 동시에 복구 작업을 철저히 하여 피해를 입은 농어민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음 전반적으로 붕괴위기를 맞고 있는 서민경제를 위해 가계부채, 일자리, 물가 불안 등의 민생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특히 서민경제의 회생을 위해 줄도산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
문제는 여야 정치권이 연말 대선에 사활을 걸고 무상복지 확대 등 포퓰리즘 정책을 양산하는 것이다. 서민경제를 살리는 대신 서민들을 현혹시키는 셈이다. 진정 여야가 연말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농어민들의 생계불안부터 해소하고 서민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리는 데 혼신을 다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경제의 최대 동력이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