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망에 성희롱 피해 여경 비하글 올린 경사 ‘해임’…‘박 경위의 을질 주장’ 경위 “수사기관에 입장 소명, 무혐의 받을 것”
#박 경위 사건 파출소장 감찰 결과 "부당 지시 인정"
박 경위 사건은 2023년 7월 7일로 돌아간다. 당시 서울 성동서 금호파출소에서 근무하던 박 경위는 경찰 내부망 '현장활력소'에서 "파출소장 강요로 회장님으로 불리는 80대 노인을 근무 시간에 접대해야 했다"며 "회장 사무실에서 억지로 사진을 찍고 과일을 깎았다"는 등의 피해를 폭로했다.
서울경찰청은 논란이 된 파출소장 감찰에 돌입해 직권경고로 사안을 마무리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도 않는 가벼운 처분이다. 분리 조치도 한참 뒤에야 이뤄졌는데 그마저 파출소장의 '치안지도관' 발령이었다. 박 경위가 일하는 파출소 등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이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오히려 박 경위를 비판한 일부 경찰관도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 내부망에서 박 경위 실명을 언급하며 '을질' 등을 주장한 서울 소재의 한 경찰서 직장협의회(직협) A 회장(경위)이 대표적이다(관련기사 [단독] “을질이라니…” ‘접대강요 피해’ 박인아 경위 ‘2차 가해’ 논란 전말).
박 경위는 10월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본청 앞에서 시민단체 '한국여성민우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상황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 노동조합 격인 전국 직협도 현장에서 함께하며 "성차별하는 경찰은 국민을 지킬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단체에 따르면 경찰청은 10월 18일 파출소장 등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지시 사항이 인정된다는 최종 감찰 결과를 내놓았다. 다만 당시 서울경찰청 감찰계장이 건강 악화를 토로한 박 경위에게 '나도 정신과 약 먹는다'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부분 등은 비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 경위와 단체는 "성동서 등의 사건 관계자들을 다시 엄정하게 감찰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된 경찰 내 여경에 대한 2차 가해와 성차별 등 실태까지 적극적으로 기획 감찰한 뒤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조직 내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경찰 내부망에는 최근까지도 박 경위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여럿 올라왔다. 특히 앞서 서울 소재 경찰서 직협 회장 A 경위는 기자회견 하루 전에도 "젊은 경찰관들의 고참을 상대로 한 을질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며 "여성단체를 활용한 기자회견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7월 16일부터 이 같은 글을 20개가량 꾸준히 올렸다. 박 경위가 글을 내려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박 경위의 이름은 언론보도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가 됐다'는 식의 주장을 펴며 거부했다. 오히려 박 경위에 "허락받고 글 썼냐는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는 입장을 보였다.
#A 경위 "현재로서는 밝힐 입장이 없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경찰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례로 해임된 경찰관이 있었다. 경기북부경찰청 소속의 한 경찰서의 직협 회장 B 경사에 대해 경찰징계위원회는 그가 성희롱 등의 피해를 입은 여경을 비하하는 글들을 내부망에 작성하며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B 경사는 2022년 4월 한 인터넷 매체의 기사를 내부망에 공유했다. 경찰 간부가 여경 직원에게 갑질과 성희롱 등을 벌여 감찰을 받는다는 뉴스였는데, 당시 이 소식을 다룬 여러 보도 가운데 유일하게 피해자의 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기사였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보도라 뒤늦게 삭제됐다.
B 경사는 이 기사를 공유하며 "이미 경찰 내부에는 일부 직원들이 여경과 근무를 꺼려하는 문화, 부하 여경을 상사 모시듯 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면서 "성 비위가 사실인지, 혹시 여경의 을을 가장한 갑질은 아닌지도 진상조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가 속한 경찰서는 진정 등을 접수하고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징계위는 "성희롱 등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인데 B 경사는 '을을 가장한 갑질' 등 추상적 의견을 개진하고, 글을 내려 달라는 피해자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구설에 오르는 등 2차 피해가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해임'을 의결했다.
이런 사례에 비춰 박 경위 관련 '을질' 등을 거론하며 여러 번 글을 쓴 A 경위의 거취에도 시선이 쏠린다. 그 역시 박 경위에 대한 2차 가해 의혹을 받아 감찰 및 수사를 받고 있다. A 경위은 8월 15일 올라온 B 경사 관련 글에 "저도 살아 돌아오겠다"며 "뒤에서 상황을 조종하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댓글도 남겼다.
A 경위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수사기관에서 입장을 소명할 계획으로 현재로서는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 돌아오겠다는 댓글 내용은 무혐의를 받겠다는 의미고, 뒤에서 상황을 조종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특정한 게 아니라 추상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박 경위는 현재 파출소장의 직권남용 혐의, 80대 노인의 강제추행 혐의 등에 대한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 80대 노인의 경우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또 2차 가해 의혹을 받는 A 경위는 서울 노원경찰서에서 박 경위에 대한 명예훼손 및 스토킹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박 경위 기자회견에 참여한 자리에서 "우리 사회에서 많은 성차별을 목도하지만, 경찰은 평등 실현의 주체로서 스스로 훨씬 나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며 "참담한 피해를 입은 박 경위와 동료 여경들이 경찰로서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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