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부동산·투자은행 부문 동반 추락…성과급 잔치 눈총 속 CEO 책임론 부각
상반기 횡보하던 채권금리는 하반기 들어 가파른 오름세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에 따른 미국의 금리상승이 국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채권금리 상승은 채권가격 하락이다. 금리가 오르면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이 가장 많이 투자된 채권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지난해 증권사들의 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난 이유도 채권금리 상승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채권 관련 손실 외에 또 다른 부실까지 겹쳤다.
지난 6월 말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노출액(대출·보증)은 28조 4000억 원으로 자기자본의 40%에 육박한다. 이 중 고정이하(부실이 발생한 채권)가 1조 2000억 원이다. 하지만 부실(고정이하)에 대비해 쌓아둔 충당금은 50%대에 불과하다. 당장 5000억 원 이상, 더 늘어난다면 조 단위의 추가 충당금이 필요한 셈이다. 충당금이 늘면 이익은 줄어든다.
더 심각한 것은 해외 부동산이다. 증권사들이 보유한 해외 부동산은 10조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부동산은 가격 변화가 분기 단위로 반영되는 유가증권과 달리 연간 단위로 평가된다. 글로벌 금리가 급등하면서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은 후순위 투자를 많이 해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대부분 다 떠안아야 한다.
예를 들어 선순위 60%, 후순위 40%로 조성된 1000억 원을 산 부동산이 있다고 치자. 부동산 가격이 800억 원으로 하락했을 때 선순위 투자자는 600억 원을 그대로 회수할 수 있지만, 후순위 투자자는 200억 원만 건질 수 있다. 가격은 20% 하락했지만 후순위 투자자의 손실률은 50%가 된다. 해외 부동산 부실에 따른 증권사들의 손실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실 증가에 따른 손익 악화는 증권사들의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로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한 키움증권에 대해 신용평가 업계는 부정적 견해를 내놓았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조달 금리가 상승해 수익성이 악화된다.
증권업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뛰어넘는 위기에 봉착한 배경에 무분별한 성과급 문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진국에서는 성과급을 수년에 걸쳐 나눠서(이연) 지급한다. 당장은 성과가 발생한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실이 드러나 성과가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성과급 이연 지급이 원칙이지만 기간이 짧아 사실상 단기 성과만 반영된다. 길게 보면 위험이 크지만 당장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쉬운 투자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다. 채권, 부동산, 해외 부동산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10대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삼성·KB·하나·메리츠·키움·신한투자·대신)의 고유자산운용부서(주식·채권·파생상품) 임직원이 받은 상여금 규모는 2018~2022년 5년간 3018억 300만 원이다. 2018년 469억 원, 2019년 447억 원, 2020년 552억 원, 2021년 728억 원, 2022년 819억 원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이와 별도로 메리츠·한국투자·미래에셋·KB·키움·NH투자·신한투자·삼성·하나증권 등 9개 증권사가 2019∼2022년 지급한 부동산 PF 관련 성과급은 8516억 원으로 고유자산운용 부서를 압도한다. 증권사에서 채권 담당은 수억을 벌 때 부동산은 수십억을 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에는 증권사들의 순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나고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불거졌는데도 막대한 성과급이 지급됐다.
결과적으로 부실이 발생한 투자에서 지급된 성과급을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경영을 한 CEO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은 제기된다. 단기 성과라도 일단 실적만 좋아지면 그 덕에 CEO들도 성과급을 챙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억 원 이상 성과급을 받은 주요 증권사 CEO는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47억 원),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34억 원),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29억 원),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20억 원),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11억 원) 등이다. 이들 대부분이 4년 이상 현직을 지켰던 이들이다. 단기 성과주의가 낳은 올해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미래에셋은 최근 박현주 회장과 함께 그룹을 창업한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을 퇴진시켰다.
정일문 사장은 한투증권의 부동산 관련 부실로 한국금융지주 주가가 2016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점이 부담이다. 최희문 부회장은 이화전기 사태 등 금융당국이 문제삼고 있는 투자 건들이 부담이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도 주가가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데다 사모펀드 사태에 따른 금융당국의 제재 위험이 존재한다. 중징계를 받으면 더 이상의 연임은 불가능하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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