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최근 몇 년간 중국 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고션하이테크를 시작으로 중국계 기업의 적극적인 미국 진출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다. 에코프로그룹은 계열사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을 통해 북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계 기업이 북미 시장에 진출하면 에코프로그룹으로서는 강력한 경쟁자를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고션하이테크 최대주주는 '폭스바겐'
고션하이테크는 지난 9월 자회사 고션을 통해 미국 일리노이주에 20억 달러(약 2조 7080억 원)를 투자한 배터리 제조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공장이 예정대로 건설되면 40기가와트시(GWh)의 리튬 이온 배터리 셀과 10GWh 리튬 이온 배터리 팩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9월 9일(현지시간) “고션하이테크는 향후 30년 동안 총 2억 1300만 달러(약 2884억 원)의 세제 혜택을 받을 것”이라며 “미국의 인센티브 패키지로 1억 2500만 달러(약 1693억 원)의 자금도 지원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했다. IRA 세부지침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 40% 이상이 미국이나 미국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국에서 채굴·가공된 전기차에 보조금 절반을 지급한다. 또 배터리에 들어가는 부품 50% 이상을 북미에서 제조·조립해야 나머지 보조금 절반을 받는다.
중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산 배터리는 미국 보조금 지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중국 업체가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면 보조금 수령이 가능하다. 고션하이테크는 그간 중국 기업으로 알려져 미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 고션하이테크의 주요 경영진은 리젠 고션하이테크 회장 등 대부분이 중국인이고, 고션하이테크 본사도 중국 허페이에 있다.
다만 고션하이테크 최대주주는 지분율 24.77%의 폭스바겐이기 때문에 다국적기업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또 고션하이테크는 중국이 아닌 스위스 증시에 상장돼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현재도 고션하이테크의 북미 시장 진출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미 고션하이테크의 공장 건설을 승인했다. 고션하이테크가 결과적으로 북미 진출에 성공한 셈이다. 재계에서는 고션하이테크가 북미 시장 투자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션하이테크는 앞서 지난해 10월 미국 미시간주에 23억 6000만 달러(약 3조 2000억 원)를 투자해 양극재 15만 톤(t)과 음극재 5만t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고션하이테크의 미국 시장 진출은 에코프로그룹에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8월 SK온, 미국 포드와 함께 캐나다 퀘벡주에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코프로비엠은 당시 “에코프로비엠의 현지법인 ‘에코프로 캠 캐나다’가 공장을 운영하고, SK온과 포드는 지분을 투자하는 형태이며 2차전지용 양극재를 연간 4만 5000t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미 지역에 소재(양극재), 부품(배터리), 완제품(전기차)으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이 구축돼 안정적인 공급망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션하이테크가 예정대로 공장을 건설하면 에코프로비엠을 양극재 생산 규모에서 크게 앞서게 된다. 여기에 고션하이테크는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미국에 빠르게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고션하이테크의 자산총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834억 위안(약 15조 3000억 원)에 달하지만 에코프로비엠의 자산총액은 4조 2682억 원이다.
증권가에서는 고션하이테크를 시작으로 중국 기업의 미국 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에코프로비엠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는 모양새다. 에코프로비엠의 외국인 주주 비율은 지난 7월 말 10%가 넘었지만 현재는 7% 초반대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이종원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국 당국이 고션하이테크의 미국 공장 설립에 대한 보조금을 승인해 미국 내 공급망에 대해 불확실성이 생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최근 중국 2차전지 셀, 소재 업체들의 북미 시장 진출이 제한적이나마 구체화되고 있으며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무게중심이 점차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 투자 시점·규모 재설정 필요 의견도
에코프로그룹은 빠르게 변화하는 북미 시장 환경에 긴밀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에코프로그룹은 에코프로비엠 외에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북미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가의 예상대로 중국 기업이 북미 시장에 추가로 진출하면 에코프로그룹 입장에서는 한층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또 최근 전기차 수요가 둔화세에 있다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높은 상황이므로 에코프로로서는 수익성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에코프로그룹이 북미 투자 시점이나 규모 등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현재 에코프로그룹의 투자 등은 전문경영인(CEO)이 결정한다. 에코프로그룹 총수인 이동채 전 에코프로그룹 회장은 지난해 3월 (주)에코프로 대표에서 사임했고, 올해 5월에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 혐의로 법정구속됐다. 이 전 회장의 직접적인 경영 참여는 불가능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전문경영인이 총수를 배제하고 중요한 투자나 의사 결정을 단행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며 “옥중 경영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정보가 제한적이며 의사 전달도 늦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채 전 회장의 후계자로는 장남 이승환 (주)에코프로 미래전략본부장(상무)이 거론된다. 이승환 상무는 최근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상무는 지난 7월 포항시 고향사랑기부금 기탁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 10월 6일에는 에코프로, 기아, 현대글로비스 등이 맺은 ‘배터리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얼라이언스 구축 업무협약’ 체결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승환 상무가 만 34세에 불과해 회장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와 관련, 에코프로그룹 관계자는 “양극소재 사업을 전개하며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해온 만큼 경쟁사들이 어떤 지역에 어떤 공장을 짓는지 참고는 해야겠지만 방향성을 수정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며 “배터리 시장이 장기적으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에코프로는 에코프로의 로드맵을 갖고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 광물 가격 하락 등으로 배터리 셀 및 소재 회사들의 대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동채 전 회장 부재 상황에서 지주회사 대표를 중심으로 가족사 CEO등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 첫 삽 못 떠…이동채 전 회장 포항 골프장 추진 앞과 뒤
에코프로그룹 계열사 해파랑우리는 경상북도 포항시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해파랑우리가 추진하는 골프장은 254만 1158㎡(약 76만 8700평)에 36홀 규모로, 2023년 내 착공할 예정이었다.
해파랑우리는 에코프로그룹 계열사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오너 일가 개인 회사에 가깝다. 해파랑우리의 주주는 △데이지파트너스 18% △이동채 전 회장 14% △이승환 본부장 14% △이연수 에코프로파트너스 투자심사역(이동채 전 회장 장녀) 14% △김애희 해파랑우리 이사(이동채 전 회장 아내) 4% 등으로 구성돼 있다. 데이지파트너스는 이동채 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가진 회사다.
지역 환경단체에서는 해파랑우리의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해파랑우리가 올해 3월 포항시 고위공무원 출신 방 아무개 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왔다.
포항환경운동연합과 포항시농민회는 지난 3월 성명을 통해 “골프장 건설은 대규모 산림파괴에다 농약에 의한 주변 농지 및 지하수와 하천의 오염, 집중호우 시 산사태 등 반환경적인 난개발 사업”이라며 “골프장 예정지 일대는 보호해야 할 노거수와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삵 등이 서식하는 보전 산지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해파랑우리는 아직 골프장 착공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포항시의 행정 절차 진행 상황 등을 감안했을 때 당초 계획이었던 2023년 골프장 착공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불경기를 감안했을 때 골프장 건설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포항시청 관계자는 “현재 관련 부서와 환경영향평가 협의 중에 있고, 그 외에 절차도 아직 좀 남아있다”고 말했다.
에코프로그룹 관계자는 “해파랑우리의 사업과 관련해 에코프로가 관여된 바가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