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2월 런던 남동부에서 벌어진 마약파티 현장. 10대들이 모여 코카인 등을 흡입하고 있다. |
마약 옹호론자들은 이렇게 항변하곤 한다.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다. 병원에서 마약 헤로인의 성분인 모르핀은 진통제나 진정제 등으로 쓰인다. 마약에 중독돼 인생이 파탄 나는 상황은 분명 실제 상황이다. 마약이 사람을 살리는 현실도 그러하다.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마약 성분이 든 약물을 복용한다. 여기에 마약 LSD를 복용하면 술을 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알코올 중독자 갱생회(AA)’의 설립자 빌 윌슨의 주장을 따 “LSD를 복용하면 종교 의식 같은 영적 체험을 해 금단 증상을 이겨내고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마약 중에서도 대표적 환각제로 통하는 LSD가 치료 효과가 있다니 잘 믿기지 않는다.
LSD는 영국에서 코카인·엑스터시·헤로인 등과 함께 ‘A급 마약’으로 분류되는 초강력 마약이다. B급 마약은 그보다 순한 대마초 등이고, C급 마약은 벤조디아제핀과 케타민 등이다. LSD를 복용한 사람들의 얘기들을 종합하면 기분에 따라 사물이 왜곡된다. 멀쩡한 건물이 찌그러지게 보인다거나 경쾌한 음악이 몽환적으로 들리는 식이다. 정신과 실험을 위해 LSD를 개발한 스위스 화학자 알버트 호프만은 직접 LSD를 복용한 뒤 “오만가지 체험을 다 했다”고 토로할 정도다.
하지만 LSD의 단주 효과를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건 그것이 임상실험을 통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 갱생회에 소속된 회원들은 물론 설립자 윌슨까지 직접 LSD를 복용한 뒤 내린 결론이다. 알코올 금단 증상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LSD를 복용하며 점차 안정을 찾는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금단 증상에 몸을 뒤틀고 괴성을 지르는 등 고통받는다. LSD를 복용하면 환각에 이르러 금단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알코올 금단이 있을 때마다 LSD를 복용하다 보면 어느새 알코올로부터 해방되어 있다”는 게 윌슨의 주장이다. 술 대신 LSD를 선택하라는 건 최악보다는 ‘차선’을 택하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LSD가 단주 효과가 있다면, 대마초는 마음을 가다듬기 좋다는 게 복용자들의 얘기다. 한마디로 우울증에도 좋고 불면증에도 좋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유학하는 정민석 씨(가명·29)는 “학교 공부를 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대마초를 피우곤 한다. 오히려 집중이 잘되는 등 학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런던 지하철 역 안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악사 마이클 도허티(52)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음악을 하다보면 신경이 곤두설 때가 많은데 대마초를 흡입하면 피로가 풀린다고 했다. “지하철 공연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피로가 몰려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대마초를 피우면 스르르 잠이 잘 든다. 나는 왜 대마초를 마약이라고 단속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대마초만큼 말이 많은 마약이 없다. 명상에 좋다는 얘기도 있는데 실제로 인도에서는 승려들이 종교적 체험을 위해 흡입한다. 예술가들은 좀더 나은 창작을 위해, 영감을 위해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돼 심심치 않게 신문 지면에 오른다. ‘대마초합법화연대’(LCA) 피터 레이놀즈 대변인(54)은 “대마초를 많이 흡입하면 우울증 등 부작용이 있지만, 적당한 흡연은 우유를 마신 것처럼 몸에 좋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8세 이전에 대마초를 흡입하면 아이큐가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듀크대학 매들린 메이에라 교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대마초를 흡입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아이큐가 8 정도 낮다. 반면 18세 이후에 대마초를 흡입한 경우 아이큐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엑스터시가 우울증 해결에 적당하다는 주장도 등장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미국 민영방송 CNN은 “엑스터시는 기분을 최고조에 이르게 해 불안과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적절하다”고 보도했다. 정신착란 증세를 연구하는 뉴욕대학 연구소도 그해 우울증 환자들이 엑스터시를 복용할수록 불안 증세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명 ‘최음제’로 불리는 엑스터시는 보다 극적인 오르가슴을 위해 찾는 마약이다. 1990년대 후반 한국 드라마 계를 풍미했던 황수정 씨도 사귀던 애인과 엑스터시를 복용한 혐의가 밝혀져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엑스터시의 특징은 무조건 ‘기분을 유쾌하게 한다’는 것. 사람에 따라 성관계 없이도 오르가슴에 이른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 마약은 병원에서 치료제 등으로 쓰인다. 공교롭게도 마약 복용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병원이다. 말기암 환자의 경우 헤로인의 성분인 모르핀에 의존해 살기도 한다. 헤로인은 일명 ‘악마의 마약’이라 불릴 정도로 마약 복용자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다. 뇌 자체가 변형되는 데다 치사율도 마약 중에서 가장 높다.
강력한 만큼, 특수한 상황에서 효과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인의 절반 이상이 헤로인을 복용했다. 전쟁에 따른 공포와 불안 등을 이겨낼 만한 환각이 필요했던 셈이다. 헤로인이 아무리 나빠봤자, 전쟁으로 죽어가는 참사보다 나쁠 리 없다. 다시 말해 강력한 만큼, 정신적 치료에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약물이다. 재밌는 건 중독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 약 23%다.
그렇다면 마약 중에 해악이 가장 심한 건 무엇일까? 바로 ‘합법 마약’인 술과 담배다. 무엇보다 치사율이 가장 높다.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대마초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22명인 반면 음주로 인한 사망자는 8664명이다. 담배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한 해 10만 6000명으로 추정된다. 2009년 데이비드 너트 영국 런던 임페리얼대학 교수(의학)는 이런 조사를 근거로 “술이나 담배보다 대마초 또는 엑스터시가 더 안전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약 중독자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적어도 타인을 때리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주의자다”며 술에 취한 채 폭력 등을 행사하는 알코올 중독자를 비난하곤 한다. 요즘 한국에서도 ‘주폭’이 화두인데, ‘술은 쓰디 쓴 약이다’는 애주가들의 비유가 점차 힘을 잃는다. 반면 치료제로서 마약이 슬슬 재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글ㆍ사진=이승환 영국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