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방문객은 늘었지만 객단가는 줄어…보따리상 발길 뜸하고 한국산 화장품 인기 시들
호텔신라의 매출은 지난해 3분기 1조 3618억 원에서 올해 3분기 1조 118억 원으로 25.7%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66억 원에서 77억 원으로 71.0% 줄었다. 증권가에서는 호텔신라가 올해 3분기 689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가 예상에 크게 못 미친 셈이다. 호텔신라의 실적 악화 원인으로는 면세점(TR부문)의 부진이 꼽힌다. 호텔신라 TR부문은 지난해 3분기 매출 1조 1977억 원, 영업이익 6억 원을 거뒀지만 올해 3분기에는 매출 8451억 원, 영업손실 163억 원을 기록했다.
호텔신라는 TR부문 적자에 대해 “8월에 허용된 중국 단체관광이 아직까지 본격화되지 않았다”며 “환율에 따른 원가 상승, (인천공항점) 신규 오픈에 따른 공사비 증가, 재고 효율화를 통한 현금 유동성 확보 등으로 적자전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체관광객과 보따리상의 주 무대인 시내면세점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67% 줄었다.
호텔신라는 정규 항공편 증가와 비자 신청 확대 등 중국인 단체관광 활성화를 통해 실적 개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호텔신라의 올해 4분기 전망도 그리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서현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호텔신라에 대해 “면세점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4분기 면세 매출은 3분기 대비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지만 수익성 우려는 지속될 예정”이라고 분석했다.
호텔신라는 국내 면세점 시장 실적의 바로미터로 꼽힌다. 국내 면세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호텔롯데)은 비상장사로 실적 공개가 늦다. 신세계면세점(신세계디에프)과 현대백화점면세점도 마찬가지로 비상장사다. 신세계면세점과 현대백화점면세점 실적은 모회사인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실적에 포함돼 있지만 그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이 때문에 면세업계에서는 국내 대부분 면세점이 호텔신라처럼 악화된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 국내 면세업계의 실적 하락은 예상됐던 바다. 지난 8월 국내 면세점 총 매출은 1조 1366억 원이었고, 이 중 외국인 매출은 8990억 원이었다. 총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줄었고, 외국인 매출은 37% 감소한 수치다.
특이한 부분은 면세점 방문자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8월 면세점 방문자는 206만 398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두 배 늘었다. 면세점 월 방문자가 2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그럼에도 실적이 하락한 이유는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입액)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인 방문자와 매출을 객단가로 환산하면 인당 매출액은 지난해 8월 980만 원에서 올해 8월 151만 원으로 감소했다.
객단가 감소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평가다. 우선 매출을 지탱하던 중국 보따리상의 구매력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국내 면세점은 매출의 약 90%를 보따리상에 의존해왔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끊기자 보따리상에게 주는 ‘송객수수료’를 높이면서까지 매출을 유지할 정도였다. 송객수수료는 보따리상이나 여행사·가이드 등에게 주는 알선료를 뜻한다. 면세업계의 지난해 송객수수료는 상품 가격의 40~45%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을 저가에 팔아 매출이라도 보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면세점들은 외국인 방문이 늘어나자 송객수수료 정상화에 나섰다. 현재 송객수수료는 30% 수준으로 전해진다. 보따리상 입장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과 비교해 마진율이 떨어진 셈이다. 수익이 줄어든 보따리상들은 국내 면세점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국내 면세점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인상하면 수익이 악화되고, 인하하면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 면세점이 성장하면서 중국인들이 굳이 한국을 찾을 필요도 사라지고 있다. 중국 국영면세점그룹(CDFG)은 2019년부터 글로벌 면세점 매출 1위를 기록 중이다.
국내 면세점의 주요 상품이었던 한국산 화장품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중국산 화장품의 품질이 좋아졌고, 미·중 무역전쟁이 촉발한 중국의 이른바 ‘애국소비’도 한국산 화장품 수요를 감소시키고 있다. 코트라 베이징무역관에 따르면 기초화장품의 올해 1분기 대중국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0.5% 줄었다. 중국 수입시장 내 한국산 기초화장품 점유율은 2019년 24.9%에서 올해 1분기 11.8%로 떨어졌다. 기초화장품은 화장품류 중 시장 규모가 가장 크다.
중국 관광객들의 관광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이들이 과거에는 쇼핑에 중점을 뒀다면 최근에는 한국 문화 체험에 집중한다는 평가다. 또 여행사들의 단체관광 쇼핑 강요에 대한 염증도 커지고 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중국인 단체관광 불편 신고 중 80%가 쇼핑 강요와 관련한 것이었다. 김승수 의원실은 “가이드가 일정 금액 이상 구매를 강요하며 시간이 될 때까지 문을 잠그거나 관광객에게 면박을 주는 강매 문제가 신고의 대부분”이라며 “‘정부가 쇼핑을 요구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내 면세업계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영원히 되찾기 힘들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제시된다. 면세점 사업은 세금을 면제해주는 ‘특혜산업’이다. 이러한 특성상 사업 유지를 위한 입찰전이 끊임없이 이뤄진다는 점도 위험 요소로 꼽힌다. 실제 호텔신라는 지난 3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에 성공했지만 신규 오픈에 따른 비용에 신음하고 있다. 당시 입찰전에서 고배를 마신 호텔롯데도 큰 폭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화장품의 인기와 폭발적인 보따리상 구매력 덕에 외형은 커졌지만 화장품·보따리상 외에 대안을 찾지 못했다”며 “지정학적인 요인과 타 산업 경쟁력이 함께 얽혀 있어 면세업계만의 노력으로는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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