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팅’ 사과하며 “다음엔 주제 파악할게요” 너스레…자녀 대기 공간 마련 등 배려도 남달라
서울 공연 둘째 날인 28일, KSPO돔 앞은 하늘색 물결이 일렁였다. 공연 시작 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공연장 앞에는 이른 시간부터 인파가 운집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팬들은 하늘색 의상과 액세서리로 한껏 멋을 냈고, KSPO돔 정면을 장식한 임영웅의 대형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이날 공연을 보는 관람객은 아니었다. 그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27일 첫날 공연을 봤다는 한 중년 영웅시대(공식 팬덤) 회원은 “27일 티켓 예매만 성공했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임영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즐거움이 있다”면서 “공연이 시작되면 임영웅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젊은 팬들도 눈에 띄었다. 영웅시대로 활동하는 부모님을 공연장에 모셔다 드리고 온 자녀들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한 20대 여성 팬은 “처음에는 엄마가 ‘임영웅 표를 예매해달라’고 해서 임영웅을 접하게 됐다. 그런데 ‘왜 이렇게 푹 빠지셨지’하는 생각에 임영웅의 노래를 듣고 콘텐츠를 찾아보다가 나도 팬이 됐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와 함께 영웅시대로 활동하고 있다”며 빙긋 웃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KSPO돔의 열기는 뜨거웠다. 1만 5000석에는 하늘색 방석이 놓여 있었다. 중장년팬들의 편의를 위해 임영웅이 공연마다 주는 선물이다. 사전 MC는 “공연 끝난 뒤 잊지 말고 꼭 챙겨 가시라”고 당부했다. 통상적으로 이 같은 굿즈(Goods)는 출입구에서 나눠준다. 하지만 임영웅 측은 팬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각 좌석 위에 하나씩 방석을 올려두었다.
사전 MC의 외침에 따라 30초 카운트다운이 끝난 뒤, 공연은 오후 6시 정각 시작됐다. 그의 신작인 ‘두 오어 다이’(Do or Die)의 세계관을 연결한 영상으로 포문을 열었다. 지구 밖에서 우주복을 입고 지구를 바라보던 임영웅이 작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향한다. 이렇게 공연장에 도착한 임영웅이 강렬한 퍼포먼스와 함께 ‘두 오어 다이’로 화려한 공연의 서막을 알렸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아비앙또’와 ‘무지개’가 이어졌고, 임영웅은 “즐거우신가요? 그럼 일어나세요”라고 외쳤다. 하늘색 응원봉이 점등했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관객들과 함께 ‘히어로’와 ‘인생찬가’가 울려 퍼졌다.
‘2023 아임 히어로’는 지난해 공연과 확연히 달랐다. 일단 세트리스트에 변화를 줬다. 과감히 신곡을 전면에 배치해 기존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이 보지 못했던 무대로 오감을 만족시켰다. 이어지는 무대는 ‘모래 알갱이’였다. 그가 상반기 KBS 2TV 다큐멘터리 ‘마이 리틀 히어로’ 방송에 맞춰 공개한 신곡이다. 왜 임영웅은 ‘모래 알갱이’에 이어 ‘두 오어 다이’를 올해 신곡의 콘셉트로 잡았을까. 이는 이날 공연의 영어 내레이션을 통해 확인됐다.
“40AU(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 밖에서 보니 지구는 하나의 점이다. 지구는 우주의 작은 무대다. 우리가 우주의 특별한 존재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우주에 떠 있는 하나의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일 뿐이다.”
신곡 ‘모래 알갱이’와 ‘두 오어 다이’가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지구, 인간이라는 존재의 미미함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마저 소중히 하며, 그들을 위해 노래 부르는 임영웅이 되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 있다.
‘모래 알갱이’에 이어 부른 ‘이제 나만 믿어요’는 그런 세계관의 흐름에 부합한다. 광활한 우주 안에서 우리가 작은 모래 알갱일지언정 이제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스토리텔링이다. 임영웅은 ‘궂은 비가 오면 세상 가장 큰 그대 우산이 될게 그댄 편히 걸어가요’라는 가사를 부르는 대목에서 마이크를 객석으로 넘겼고 떼창이 이어졌다. 임영웅과 영웅시대가 서로를 향한 우산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긴 오프닝을 마친 임영웅은 사과로 인사를 전했다. 이번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관객들에 대한 감사함이자 미안함이었다. 서울 공연 티켓 예매 과정은 지난했다. 티켓 오픈 1분 만에 370만 트래픽을 기록했다. 하지만 서울 공연으로 모을 수 있는 관객은 9만 명 정도다.
임영웅은 “호남평야에서 공연을 해야 한다는 말에 ‘아직 그 정도 급은 아니다’라고 했었는데 티켓 구하기 정말 힘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다음에는 더 ‘주제 파악’해서 많은 관객들을 모시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공연은 독특하고 기발한 무대 구성이 눈길을 끌었다. 통상 공연 무대는 객석 전면에 설치한다. 이 경우 공연 뒤쪽에는 관객이 앉을 수 없다. 그래서 1만 5000석인 KSPO돔에는 1만 명 정도만 수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임영웅은 공연장 중앙에 무대를 만들었다. 그가 우주에서 타고 온 우주선을 형상화한 무대였다. 가운데 원형 무대와 객석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보조 원형 무대 3개가 더 설치됐다.
이로 인해 임영웅과 관객석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임영웅은 각 노래를 부를 때마다 바라보는 방향을 달리했다. 그 덕분에 임영웅의 뒤태(?)를 감상하는 이색적인 풍경도 빚어졌다. 그리고 공중에는 12개의 대형 스크린을 내걸어 시청 사각지대를 없앴다. 그 결과 1만 5000석을 온전히 채울 수 있었고, 관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임영웅 역시 “어디서나 잘 보이도록 360도 무대를 구성했다. 영웅시대와 더 바짝 붙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임영웅의 특별한 이벤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공연 중반부 관객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공연장 1층과 2층 사이 통로를 360도 돌며 관객들과 일일이 손바닥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를 진행했다. 불과 1m 앞에서 임영웅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때 임영웅은 ‘손이 참 곱던 그대’를 불렀다. 그와 손바닥을 맞대는 영웅시대 회원들을 향한 세레나데였다.
임영웅의 이날 익숙함과 새로움을 오가는 무대로 관객들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재미를 선사했다. ‘사랑아 왜 도망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해 진짜’ 등 그의 히트곡을 비롯해 앞서 예능 ‘사랑의 콜센타’에서 부른 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상사화’ ‘끝사랑’ ‘나와 같다면’ 등을 라이브로 선사했다. 지난해 공연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다.
공연이 열린 이날 임영웅은 ‘두 오어 다이’로 MBC 음악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서 또 다시 1위를 차지했다. 이에 임영웅은 “여러분 덕분에 어디가도 어깨 쫙 펴고 다닐 수 있다”면서 “전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 저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을 뿐인데, 밥을 맛있게 많이 차려 주셔서 즐겁고 행복할 뿐”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관객들을 위한 특별 영상도 준비됐다. 매 콘서트마다 건행국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으로 재미를 줬던 임영웅은 이번에는 세계로 무대를 넓혔다. ‘LB’라는 이름을 가진 에이전트로 분한 임영웅이 특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또한 임영웅의 친한 동생인 ‘임영광’도 다시 만날 수 있다. 군 입대 후 어느덧 병장이 된 임영광의 사연은 이번 콘서트를 즐기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이날 공연의 마지막 곡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였다. 지금의 임영웅을 있게 한 대표곡 가운데 하나다. 이미 이 노래를 수백 번 들었을 법한 관객들이었지만, 임영웅이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라이브를 선사하자 또 다시 곳곳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그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안주하지 않겠다”면서 “익숙해지지 않는 가수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후에는 앙코르 무대가 이어졌다. 그는 관객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다시 무대에 오른 그는 ‘달빛 창가에서’와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등 8090 인기곡으로 한바탕 댄스파티를 벌인 뒤 약 3시간에 걸친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번 공연에서 임영웅의 팬서비스는 남달랐다. 공연장 앞에는 부모님들을 모시러 가기 위해 기다리는 자녀들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임영웅’이라는 이름 아래 또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타 공연과 비교해 월등히 많은 안전요원을 배치했다. 이들은 공연장 주변부터 지하철까지 이어지는 길 곳곳에서 영웅시대의 귀가를 도왔다. 또한 공연장 내에서는 영웅시대 팬들이 이동할 때마다 그들의 발 아래를 플래시로 길을 밝혔다. 영웅시대가 ‘피케팅’(피튀기는 티켓팅)을 감수하며 임영웅의 공연에 가는 이유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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