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니엘에 거주하는 A 씨의 말이다. 최근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 씨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전 씨는 남 씨에게 부를 과시해 신뢰를 형성했다고 알려졌다. 전 씨는 벤틀리 보유와 함께 시그니엘 거주 사실을 강조했다.
![최고급 레지던스로 유명한 시그니엘이 돈을 원하는 각종 인사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진=시그니엘 공식 사이트 캡처](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1102/1698854697136686.jpg)
시그니엘에 살며 사기로 문제가 된 건 비단 전청조 하나만이 아니다. 2020년 6월 시그니엘에서 체온을 재고 마스크 착용을 확인하려고 한 경비원에게 입주민이 갑질을 해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갑질을 해 논란이 된 여성 김 아무개 씨에게도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바 있다.
이처럼 알려진 사기 사건 외에도 '시그니엘'을 강조했던 크고 작은 사기 사건이 터지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를 보면 시그니엘을 태그 걸고, 그곳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국내 최고급 레지던스에 산다는 것으로 믿음을 준 뒤 대개 강의를 하거나 투자를 권유한다.
이처럼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성공 이미지’를 주는 건 일반 직장인은 한 달 살기도 버거운 월세와 관리비 때문이다. 시그니엘 월세는 전용면적 약 206㎡ 기준 약 2500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관리비도 250만~500만 원 정도 나오기 때문에 한 달에 3000만 원가량을 내야 거주할 수 있다.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같은 건물에 위치한 시그니엘 호텔과 동일한 호텔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서비스 비용이 엄청난 것으로 유명하다. 입주민은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음식도 주문해 먹을 수 있는데 갈비탕이 5만 5000원, 삶은 계란 2개가 1만 8000원인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 씨가 시그니엘을 내세운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인다. 10월 28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전 씨는 지난 7월 15일 자신이 살던 롯데 시그니엘에서 자기 계발을 주제로 특별 유료 강연을 열었다고 한다. 전 씨가 강의했다고 알려진 곳은 시그니엘 42층이다.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B 씨는 “전 씨가 강의했다고 알려진 42층에는 시그니엘 입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파티룸이나 미팅룸 등이 있다. 이곳에서 강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B 씨는 “전 씨가 굳이 시그니엘에서 강의를 개최한 건 결국 시그니엘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우러러보기 때문 아니겠나”라면서 “본질 없는 사람들이 신뢰를 얻는 방법이다”라고 지적했다.
이곳에 사기꾼이나 강의 구매자, 투자자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결국 그만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A 씨는 “유튜버는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것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시그니엘을 앞에 내세우며 ‘당신도 이곳에 살 수 있다’고 홍보한다”면서 “강의료를 보니 상상을 초월한다. 한 명당 1000만 원, 1500만 원짜리 강의도 있다. 이거 두 개만 팔면 월세가 나오는데 충분히 남는 장사 아니겠나”고 설명했다.
![전청조 씨가 시그니엘에서 유료 강의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사진=JTBC 캡처](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1102/1698854745532439.jpg)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고급 거주 시설에 미국 거주지처럼 배경 확인(백그라운드 체크)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에 거주했던 D 씨는 “미국은 거주지 입주하기 전 백그라운드 점검을 받아야 한다. 리스 회사 등에서 관리하는 건물이라면 이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회사가 껴 있는 경우가 있다”면서 “최소한 전청조 씨처럼 사기 전력이나 신용불량 상태 등을 걸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배경 확인이 의무화되면 월세를 내는 게 지금보다 어려워질 수 있어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시그니엘 거주민들은 ‘이런 제도도 없는 마당에 고급 주거지에 산다는 것만으로 믿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B 씨는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이나 고층 뷰를 찍어서 SNS에 올릴 때도 있지만, 굳이 널리 알리지 않는다. 돈이 있다는 걸 자랑해서 얻을 게 없기 때문”이라면서 “분양받은 사람보다 월세로 사는 사람이 더욱 드러내길 좋아하는 것 같다. 시그니엘 사는 사람 대부분은 지금 눈에 띄는 사람과 달리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실제 입주민 생활은 어떨까. B 씨는 모든 생활이 하나의 건물에서 해결된다는 점을 꼽았다. B 씨는 “집에서 내려가면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극장부터 롯데마트, 각종 편의 시설을 즐길 수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시그니엘 입주민만 갈 수 있는 스시집, 바 등도 있다. 여기에 주변 지인을 초대하면 반응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반면 불편한 점이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A 씨는 “보안이 거의 완벽하다는 것, 주차 공간이 넉넉하다는 것 등이 장점”이라며 “그보다 큰 단점이 많다. 엘리베이터를 3번 타야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매우 귀찮다. 더군다나 입구 담당 직원이 퇴근한 밤 10시 이후엔 배달 음식을 시켜도 내가 3번 갈아타고 내려가서 다시 그렇게 집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초고층이기 때문에 창문을 열 수가 없어 환기가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자동 환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창문을 열 수 없어 그 자체로 답답함을 유발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바닥 난방이 되지 않고, 히터 방식이라는 점도 불만 대상이다. B 씨는 “개인적으로는 만족하지만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시그니엘이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런 점 때문에 초기 분양에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