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로컬에 다른 관점을 투영하고 있다. ‘평등의 관점’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지역의 정체성’을 로컬로 쓰자는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지역의 상징성을 더하자는 측면도 있다.
#로컬의 등장과 정책적 부응
‘네 개의 세상’의 작가 황인선은 로컬을 ‘엑시트(Exit) 전략의 땅’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상에는 중심부와 주변부, 제3지대가 있다”며 종전에는 대도시를 중심부, 지방을 주변부, 전원·문화·슬로우 도시 등을 제3지대라고 했지만 이제는 “지방이 중심부가 될 수 있다”면서 “도시와 로컬이 서로에게 출구(엑시트)가 되어야 지역의 균형이 잡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대도시 중심인 한국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방식으로 로컬의 확산이 이행되어야 하며, 물리적‧문화적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매우 시급한 과제로 삼고 있다.
실제로 엔데믹 이후 도시의 삶보다는 로컬에서의 다른 삶을 동경하는 양상이 두드러지면서 각 지역의 다양한 정책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중소기업벤처부의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 행안부의 로컬브랜딩 활성화 지원사업, 로컬크레이에터 유통사업화 지원사업, 청년 로컬크리에이터 육성 지원사업 등이다. 초기 초점은 청년의 일자리 사업에 목적을 뒀으나, 점차 지역 활성화로 확대되면서 로컬상권이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이른바 로컬의 시대가 온 것이다. 문화 분야에서도 로컬 시대에 정책적인 조응을 하고 있다. 특히 K문화도시의 기조에는 로컬크리에이터와 경제, 문화관광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
#과잉으로 치닫는 로컬
로컬의 개념은 점차 과잉 양상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당초 로컬에 기대했던 정신들은 점차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늘고 있다. 일례로 ‘글로컬대학 사업’이라며 지방대학을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하겠다는 교육부의 사업은 급조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체부 역시 문화도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도시(로컬)브랜딩과 로컬크리에이터의 활동을 부각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대개 청년창업과 연계되어있을 뿐이란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청년창업을 통해 나온 상품을 지역이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생태계적 관점은 어느덧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마치 로컬크리에이터 양산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방송통신대 이성민 교수는 ‘디지털미디어 인사이트 2024’에서 경험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 고민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특히 ‘어설픈 시도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경험의 질을 낮추게 되며, 단순한 체험이 아닌 경험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시대를 넘어서 참여자와 함께 만들고 경험하는 스토리리빙(Storyliving)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유의미한 경험이 지역사회의 고유성과 함께 작동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 경험은 단순 흥미로 끝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지역에 대한 관심의 이유를 잃어버리면 사람들의 시선은 지역에서 점점 멀어지게 될 뿐이다. 그만큼 지역과 문화적 경험은 지역사회라는 생태계에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창업, 경제적 지원 정책이 로컬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로컬이란 살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로컬의 지향점
부산의 한 부부는 문화도시라는 공통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독특한 삶을 살고 있다. 먼저 고윤정 씨는 부산 영도구 영도문화도시센터장으로 법정 문화도시를 이끌고 있다. 판잣집이 항구를 중심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던 1950년대 도시의 정서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데 주목하면서 영도라는 로컬의 오리지널리티를 흥미롭게 설정했다. “영도는 영도 사람이라면 다 아는 만남의 장소인 ‘영도다리’가 있고, 피란수도 시절 일거리 배후단지라는 역사가 있죠. 또 지금까지 마을회가 있을 정도로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곳이죠. 무엇보다 4개의 다리로 연결된 도시의 섬입니다”(로컬 소식 전달 매체 ‘비로컬’ 인터뷰 중)라며 도시와 연결된 섬 문화를 특징으로 삼고,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 로컬사업을 설계했다. 그리고 9월 전국문화도시 박람회 개최를 통해 영도라는 도시 섬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지역문화’라는 굳건한 생각에서 출발한 박람회는 주최자‧방문객‧참여자 모두에게 도시라는 곳은 소통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것이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박진명 씨는 부산 수영구에서 문화도시센터장으로 예비문화도시를 이끌고 있다. ‘골목에서 바다로 누구에게나 문화도시 수영’을 슬로건으로 하여 만나고 배우고 일하며 어우러지는 일련의 로컬사업을 설계했다. 12개의 핵심 프로그램은 주민을 찾고, 주민을 잇고, 주민을 (계속) 곁에 있게 하는 로컬의 오리지널리티를 구현했다. 골목과 골목에 있는 공간은 사람을 잇는 공간이며, 바다는 주민을 모두의 곁에 있게 하는 터전이다. 이러한 도시 정서는 수영구의 특징을 잘 설명한 케이스다. 최근 그는 문화의 도시적 관점에서 봤을 때 브랜드와 경제적 관점이 단순히 강화돼 가는 현재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두 사례에서 보듯 로컬 문화의 힘은 이야기를 건네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문화도시라는 정책사업은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유의미한 사업이다. 살아가는 방식은 단순한 경험 몇몇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로컬크리에이터가 양산된다고 해서 진정한 로컬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속에서 그들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경험을 나누는 방식이고 균형을 찾는 방법이며, 지역의 오리지널리티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즉, 로컬이 텔링에서 리빙으로 자리할 수 있을 때 제 이름값을 찾을 수 있다. 현재의 다양한 로컬정책은 과연 삶을 사는 리빙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볼 때다.
진형우. 예술단체, 세종문화회관, 문화도시센터장을 역임한 문화예술 기획자다. 문화에는 ‘동기, 방법, 움직임, 강렬함, 행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믿으며 하루를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진형우 문화예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