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이었는데…’ 포장사업부 줄이는 까닭
지난 10월 23일 율촌화학은 판지사업부문을 태림포장주식회사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거래 규모는 430억 원이다. 판지사업부문은 골판지 및 골판지상자 제조, 골판지 원지 제조를 영위해왔다. 판지사업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51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율촌화학 전체 매출(5089억 원, 연결 재무제표 기준)의 약 10%를 차지하는 사업부다. 판지사업부문 매각 이유에 대해 율촌화학은 “비주력사업 정리 및 신규사업 집중”이라고 공시했다.
율촌화학 판지사업부문이 포함된 포장사업부문은 회사의 주력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율촌화학 매출 81%가 포장사업부문에서 나왔다. 율촌화학 포장사업부는 농심그룹의 포장재를 공급한다. 주요 거래처인 농심 매출이 증가할수록 율촌화학 포장사업부 매출도 증가하는 구조다. 농심은 해외 실적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매출도 상승 추세다. 금융업계에서 포장사업부문이 안정적이라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포장사업부문의 경우 농심 내부거래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율촌화학이 특수관계자와 계열사로부터 올린 매출(1128억 원)은 전체 매출(2363억 원)의 48%다. 율촌화학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다. 사익편취 규제대상은 총수일가 보유지분이 20% 이상인 회사 및 총수일가 보유지분이 20% 이상인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 보유한 회사다. 공정위는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를 대상으로 부당한 내부거래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들여다본다. 내부거래 자체가 모두 문제는 아니다. 다만 부당한 내부거래라고 판단이 되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농심이 대기업 집단에 지정되며 계열사에서 발생하는 매출 비중에 대한 고려를 완전히 배제하고 영업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심은 지난해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 집단)에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지정됐다. 올해 농심그룹의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는 20개로 적은 편이 아니다.
#내년 성과 기대되는 2차전지 소재 사업
율촌화학은 2차전지 셀 포장용 알루미늄 파우치를 신성장 동력으로 점찍었다. 알루미늄 파우치는 전기차 2차전지에서 양극재와 음극재 등을 보호하는 핵심 소재다. 주로 파우치형 배터리에 사용돼 ‘파우치 필름’으로도 불린다.
지난해 율촌화학은 얼티엄셀즈와 리튬이온배터리(LIB) 제조용 알루미늄 파우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총 10억 4202만 달러(약 1조 4900억 원) 규모이며 계약 기간은 올해 1월부터 2028년 12월까지다. 또 율촌화학은 현재 836억 원을 투자해 경기도 평택시 포승에 알루미늄 파우치 공장을 증설 중이다. 이 공장은 올해 12월 완공이 목표다.
알루미늄 파우치 매출은 회사의 또 다른 사업부인 전자소재사업부문 실적으로 잡힌다. 율촌화학이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시작한 전자소재사업부문 최근 실적은 신통치 못하다. 율촌화학 전자소재사업부문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적용되는 광학필름, IT기기 터치패널에 들어가는 PET 필름 등을 만든다. 하지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업황이 둔화했다. 전자소재사업부문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440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609억 원) 대비 28% 줄었다.
율촌화학의 내년 신용평가 등급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예컨대 한국신용평가는 연결 기준 매출액 대비 상각 전 이익(EBITDA) 비율 8% 미만을 율촌화학의 신용등급 하향 요인으로 삼고 있다. 율촌화학은 지난해 매출액 대비 EBITDA 비율이 2021년 8.9%, 2022년 6.3%, 올해 3월 6.1%로 이미 이 지표를 밑돈다.
앞서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얼티엄셀즈와 관련해서는 아직 유의미한 매출이 일어나지는 않는 상태다. 내년부터 얼티엄셀즈로의 물량 공급이 본격화돼 실적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제품 생산이 얼마나 안정화됐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공장 가동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커버할 정도로 양산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GM의 전기차 투자 계획이 상당히 후퇴하고 있다. 얼티엄셀즈가 가동률을 낮출 경우 율촌화학 입장에서도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율촌화학이 얼티엄셀즈 외의 다른 고객사와 공급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율촌화학은 알루미늄 파우치 공장 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자소재부품을 제작하던 공장 라인을 변경해 알루미늄 파우치 생산이 가능하다고 전해진다. 국내 배터리 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도 파우치형 배터리 셀을 생산한다.
앞서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다른 거래처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얼티엄셀즈를 토대로 LG에너지솔루션에 납품도 노릴 것”이라고 말했다. 율촌화학은 알루미늄 파우치 시장을 독점해온 DNP, 쇼와덴코 등 일본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2차전지 업계 다른 관계자는 “일본 알루미늄 파우치를 쓴다고 해서 엄청난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때문에 스펙이나 가격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율촌화학 관계자는 “대외비라 말씀드리기 어렵다. 전기차 시장이 둔화되는 분위기는 맞지만, 내부적인 예측과 관련해서는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신동윤 회장 개인회사 캐처스 주목받는 까닭
신동윤 율촌화학 회장의 개인회사로는 (주)캐처스가 있다. 캐처스는 신동윤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신동윤 회장은 2013년부터 캐처스 사내이사직도 맡고 있다. 세탁업, 의약품·의료용 기구·화장품 및 방향제 소매업, 건물과 산업설비 청소업, 소독·구충·방제 서비스업을 영위한다.
지난해 캐처스가 농심 계열사로부터 거둬들인 매출은 40억 원이다. 캐처스 전체 매출(115억 원)의 35%가량으로 적지 않은 액수다. 특히 (주)농심으로부터만 2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율촌화학은 (주)농심의 열풍 청소, 살충, 살균방제 업무를 수행했다.
캐처스는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다. 내부거래가 공정위 감시망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캐처스는 영업손실 상태다. 내부거래를 대폭 줄이기에도 쉽지 않은 셈이다. 지난 8월 캐처스는 연속세탁기 등 세탁장비 자산을 취득했다. 세탁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투자로 풀이된다. 향후 고객사를 얼마나 다변화하느냐에 따라 내부거래 규모도 줄 수 있다.
이와 관련, 농심그룹 관계자는 “농심의 사업현황 및 외부사업의 환경 변화 등으로 일부 내부거래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변동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각 계열사별로 사업다각화, 고객 다변화 등을 통해 내부거래를 줄이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