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인수 성사 위해 각종 사업권 포기 가능성…합병 이후 주가 부진, 경영권 갈등 빌미 될 수도
지난 11월 2일 오전 열린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지난 10월 30일처럼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부 사외이사의 자격 논란에도 정오 전에 가결로 마무리됐다. 화물부문은 아시아나항공의 핵심 이권이다. 합병을 위해 화물부문까지 내놓을 정도면 이제 더 포기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합병과 관련해 슬롯 포기 등 이권을 내놓는 데 제동을 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지난 6월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의 조원태 회장은 외신 인터뷰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무엇을 포기하든 성사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번 이사회로 그의 공언이 사실임을 입증한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영국 런던 노선의 슬롯 상당 부분을 포기했다. EU 승인을 위해서는 화물부문 매각 외에 유럽 4대 노선인 파리, 로마, 프랑크푸르트, 바르셀로나 슬롯도 적지 않게 내어줘야 할 전망이다. 슬롯 경쟁이 치열한 유럽 항공사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다.
다음은 미국이다. 미주 노선에서도 가장 여객이 많은 5곳(LA,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호놀룰루)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점유율이 아주 높아 다수 슬롯을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 노선의 점유율은 절대적이다.
미국 델타항공은 대한항공과 같은 스카이팀이다. 한진칼 지분 10% 이상 가진 우호주주이기도 하다. 합병이 되면 함께 수혜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인 유나이티드항공은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동맹을 잃게 된다. 미국은 상위 4개 항공사 경쟁이 치열하다. 델타항공에 유리한 합병이라면 유나이티드항공 입장에서는 저지하든지 그 효과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미국 법무부에 이번 합병의 부당함을 호소해 합병승인 금지 소송을 검토하게 한 곳도 유나이티드항공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남았다. 동북아시아 허브 공항 지위를 두고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에 있던 곳이다. 우리나라 항공사가 잘 되기를 바라기 어렵다. 일본 최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는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이다. 이번 합병이 달가울 리 없다. 일본의 항공사 가운데는 대한항공이 속한 스카이팀 소속도 없다. 일본 항공업계도 자국 독점규제 당국을 통해 합병 조건을 까다롭게 할 이유들이 많다.
시간도 변수다. EU 승인을 얻기 위한 시정조치안을 제출하기로 하면서 아시아나항공(KDB산업은행 포함)과 대한항공의 인수계약 조건도 지난 11월 2일 바뀌었다. 기존에는 필요한 승인을 얻지 못하면 거래가 종결되는 기한을 대한항공과 산업은행(아시아나항공)이 협의해 3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새로 바뀐 조건에서는 EU 승인을 받은 후 2024년 12월 20일까지 거래 종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약이 해제된다. 산은도 내년 12월 20일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셈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 같은 상황을 십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간에도 쫓기게 된 조원태 회장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더 많은 것을 내주도록 해야 할 수도 있다. 합병 실패는 곧 경영권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조 회장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합병 성공 이후에도 숙제는 남는다. 핵심은 산은이 가진 한진칼 지분 처리다. 산은의 한진칼 주식 매입 단가는 7만 800원이다. 지금보다 58% 높은 값이다. 경영권 분쟁 때를 제외하면 한진칼 주가는 창사 이래 7만 원을 넘은 적이 없다.
한진칼 기업가치가 높아지려면 대한항공이 돈을 잘 벌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고금리∙고유가∙고환율은 항공업계에 치명적이다. 핵심 수익원 다수를 잃은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 부담도 상당하다. 결국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항공 관련 요금을 올려 이익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합병 이후에는 주가 부진으로 산은의 투자 회수가 지연되면 한진칼의 경영권에 대한 도전이 재연될 수도 있다. 사실 산은 입장에서는 충분한 웃돈만 받을 수 있다면 팔지 않을 이유가 적다. 경영권 경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주가에도 호재다. 현재 조원태 회장과 우호 세력인 델타항공의 지분율은 약 34%다. 2대 주주인 호반건설(11.6%)은 4대 주주인 팬오션 지분(5.85%)을 인수할 예정이다. 산은 지분(10.58%)이 조 회장을 떠나면 또 다시 경영권 경쟁이 재연될 수도 있는 구조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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