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활약으로 건재 증명…외국선수 재도입 않는 WKBL 무대서 절대적 존재감 보여
#무서울 것 없던 박지수
프로 데뷔 이전, 17세의 나이에 국가대표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박지수는 국내 여자농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196cm의 축복받은 신체 조건으로 국내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국가대표팀에서도 남다른 존재감을 자랑했다.
고교 졸업하자마자 프로에 입성한 박지수는 데뷔 직후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관심이 집중된 신인 드래프트에서 박지수를 뽑게 된 KB 스타즈 감독은 큰절 세레머니까지 펼칠 정도였다. 데뷔 1년 차에는 신인왕을 차지하고 2년 차에는 팀을 정규리그 2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18년부터는 미국 무대에서의 활약을 병행했다. W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5순위로 지명됐고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 소속으로 '본토 농구'를 경험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시즌 정규리그 우승, 역대 최연소이자 만장일치 MVP, 챔피언결정전 우승, 챔프전 MVP까지 WKBL 무대에서 달성할 수 있는 모든 성과를 얻어냈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사라진 2020-2021시즌부터는 WKBL을 자신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두 자릿수 득점과 리바운드를 동시에 달성하는 '더블더블'을 전경기에서 기록했다. 2년 만에 다시 한 번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국내 무대에서 박지수를 막을 상대는 없어 보였다. 유일한 걸림돌은 팀 내 비중이 큰 탓에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받지 못해 생기는 체력 문제뿐이었다.
#한국 농구 보물이 돌아온다
거칠 것이 없던 박지수는 2022-2023시즌을 앞두고 멈춰 섰다.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공황장애를 호소, 경기는 물론 훈련에도 임하지 못했다. 겨울에는 WKBL, 여름에는 WNBA에서 활약해왔고 틈틈이 대표팀까지 이끌어야 했던 상황이 20대 초반으로 어린 박지수에게는 부담이 된 듯했다.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 그의 비중이 컸기에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쏟아지는 질책도 박지수의 몫이었다.
소속팀 KB를 넘어 한국 농구 전체에 박지수의 공백은 큰 손실이었다. 박지수 없는 KB는 하위권 싸움을 이어갔다. 2022년 말 복귀를 선언하며 코트로 돌아왔으나 몸 상태는 좋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가락 부상을 당해 조기에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KB는 최종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박지수 입단 이후 최저 성적이었다.
부상을 털고 일어난 박지수는 국가대표팀에도 복귀해 언제 그랬냐는 듯 중심 역할을 이어갔다. 일각에선 '완전한 상태가 아닌 박지수에게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올 정도였다. 대표팀은 아시아컵에서 부진했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내, 박지수는 대표팀 일정을 웃으며 마무리지었다.
오랜만에 시즌 개막부터 팀과 함께하는 박지수는 지난 10월 30일 열린 WKBL 개막 미디어데이 현장에 나섰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박지수는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공백이 떠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경쟁자들도 돌아온 박지수를 한목소리로 환영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지난 시즌 통합 MVP를 수상한 김단비는 "박지수를 처음 만났을 때 '농구계 보물'이라고 말해줬다. 이후 MVP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최근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지수가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내가 계속 괴롭힐 것이다. 지수가 한국의 보물이 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오랜 국가대표 동료이자 리그 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의 이 같은 말에 박지수는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혔다.
#새 시즌 판도
지난 시즌 KB는 5위에 머물렀지만 박지수가 건강하게 돌아오며 단숨에 우승후보 1순위로 떠올랐다. 선수, 지도자 등 리그 내 구성원 다수가 KB를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다. 5위에 그친 지난 시즌 성적 또한 이들에겐 강한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여전히 외국인 선수를 재도입하지 않고 있는 WKBL 무대에서 박지수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한국 농구 보물의 복귀에 국가대표 슈터 강이슬 또한 위력을 배가할 가능성이 크다. 박지수가 없는 지난 시즌, 강이슬은 5년 연속 독식하던 3점슛 1위 자리를 내준 바 있다.
KB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팀으로는 우리은행이 첫손에 꼽힌다. 비시즌 컵대회인 박신자컵에서 해외 초청 구단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팀도 우리은행이었다.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을 달성했으나 에어컨 리그에서 FA 자격을 얻은 김정은을 떠나보냈다. MVP 김단비, 핵심으로 올라선 영건 박지현이 건재하지만 지난여름 공백기를 가진 박혜진이 언제 제 궤도에 오를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또 다른 상위권 전력으로는 삼성생명이 거론된다. 이들은 리그 내 가장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한다. 성장 기회를 주기 위해 무상 트레이드로 선수를 내줄 정도다. 지난 시즌 차례로 부상을 입었던 주요 자원들이 2라운드가 시작되는 시점에는 모두 코트로 돌아올 예정이다. WNBA 출신 키아나 스미스가 국내 무대 2년 차를 맞아 더욱 적응한 모습을 보인다면 지난 시즌 3위보다 높은 순위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 시즌 준우승 돌풍을 일으킨 BNK 또한 기세를 이어간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안혜지-이소희-진안은 이미 국가대표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자원으로 성장했다. 팀의 과제는 이들을 보좌할 백업 자원 찾기다. BNK는 이번 시즌 신인 김정은에게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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