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알엑스 잔여지분 7500억에 인수, 북미 비중 키워…아모레 “잠재력 큰 지역 중심 글로벌 사업 지형 재편”
#고통의 시간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을 통해 사세를 크게 키웠다. 2010년대 중반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서 황금기를 누렸다. 해외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했다. 그러나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슈 이후 한국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중국 현지 화장품 기업들이 약진하며 아모레퍼시픽의 실적은 꾸준히 내리막을 걸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여파까지 더해져 올해 7월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잠정 실적 공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9633억 원과 288억 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7%와 12.7% 감소했다. 별도 기준으로 국내와 해외에서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이 각각 7.5%와 3.6% 감소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영업이익이 34.5% 감소했고 해외에서는 적자를 냈다.
특히 면세업계 업황이 악화하면서 국내 매출 비중의 23%가량을 차지하는 면세 채널에서 매출이 두 자릿수 하락세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매출 감소 역시 간접적으로 중국 수요 감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팬데믹이 끝나고 국내 면세점들이 매출의 90%가량을 책임지던 중국의 기업형 따이공(보따리상)들에 대한 송객 수수료가 정상화되면서 따이공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덩달아 면세점에 입점한 화장품 브랜드들도 타격을 입은 셈”이라고 말했다.
해외 시장의 경우 아시아 지역 매출이 13%가량 감소했다. 매출 하락에 영향을 주고 있는 부문은 중국에 입점해 있는 이니스프리 오프라인 매장 축소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국에서 오프라인 고객수가 급격하게 줄고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섞어 파는 멀티브랜드숍의 유행으로 아모레퍼시픽의 제품만 판매하는 이니스프리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중국의 전 이니스프리 매장은 직영점으로 운영되고 있어 고정비 지출 역시 상당하다. 결국 비용 효율화를 위해 한때 600여 개에 달하던 이니스프리 오프라인 매장을 10여 개 점포만 남기고 철수시키면서 수입원이 크게 감소했다.
중국에서 아모레퍼시픽이 출시하는 제품군의 위치가 애매해진 것도 수익성 악화의 한 배경이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융합대학원 원장은 “중국의 로컬 브랜드들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중저가 제품의 품질이 굉장히 좋아졌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리가 상대가 안 된다”며 “프리미엄군에서는 프랑스의 로레알이나 일본의 시세이도에 밀렸다. 3분기에 원전 오염수 방류 이슈로 시세이도가 고전 겪을 때 밀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결국 애매한 포지션으로 남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풀어야 할 숙제
아모레퍼시픽 입장에서는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에서 실적이 안 나는 만큼 다른 곳에서 이를 채워야 한다.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글로벌 리밸런싱 전략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 3분기 미국에서 35%가량 매출 성장을 기록했고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매출을 41%가량 늘렸다. 상반기 영국법인을 설립하며 유럽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고 있고 하반기에는 브랜드 ‘에스트라’와 ‘헤라’를 일본 현지에 공식 론칭하며 판촉 활동을 확대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M&A를 단행한 점이 눈에 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 10월 31일 스킨케어 브랜드 회사인 코스알엑스의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28만 8000주를 7551억 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21년 9월에 약 40%에 달하는 코스알엑스 지분 19만 2000주를 취득하며 2년 이내에 코스알엑스 측이 보유하고 있는 잔여지분에 대해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권리를 얻었는데 2년이 지나기 직전에 이를 행사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을 경우 코스알엑스 측에서 아모레퍼시픽이 보유한 주식 전부를 되살 권리 역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모레도 결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번 콜옵션 행사로 코스알엑스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
코스알엑스는 아모레퍼시픽의 탈중국 행보에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코스알엑스는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6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해 지난해에만 2044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902억 원의 매출과 71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코스알엑스의 매출 90%는 북미, 동남아, 유럽, 일본 등 140여 해외 국가에서 나오는 중이다. 코스알엑스의 주요 제품이 아마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등 북미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2023년 상반기 기준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매출 중 북미 비중은 19%인데 코스알엑스의 상반기 실적을 단순 합산하면 북미 매출 비중은 25%가량으로 상승한다.
지역별 매출뿐만 아니라 제품 라인업 측면에서 아모레퍼시픽의 고가 제품군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화장품은 원가율이 낮은 제품으로 꼽힌다. 고가 상품을 많이 팔수록 마진을 크게 남길 수 있는 구조다. 화장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저가 제품을 아무리 팔아봐야 예전만 한 매출과 이익은 회복 못한다. 프리미엄군 제품으로 어디든 뚫어야 하는데 못 뚫고 있다”며 “지역을 다변화한다 쳐도 해당 국가에서는 아모레의 인지도가 너무 낮아 굳이 설화수 등 고가 제품을 살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또한 “한류가 불고 있는 곳들은 개발도상국이 많아 코스메틱에 돈을 크게 쓰지 않는다. 전세계 모든 브랜드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글로벌 마켓을 잡아야 하는데 미국에서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의 대체시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주가 모멘텀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아모레퍼시픽이 색조 화장품 쪽보다는 R&D(연구개발)를 통한 전문성 강화 쪽에 더 투자를 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선진국들이 고령화되고 있으니 구매력이 있는 실버들에게 소구하는 ‘기능성’ 제품들을 강화하고 뷰티 디바이스도 출시해 수출 확대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주덕 원장은 “중국만 바라볼 수도 없지만 중국을 버릴 수도 없다. 중저가 제품들은 중소도시를 위주로 타기팅하고 대도시에는 기술력을 앞세운 고가 화장품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며 “다만 반드시 R&D 투자를 활성화해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먼저다”라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은 브랜드 가치 제고와 글로벌 리밸런싱, 고객 중심 경영전략을 추진 중”이라며 “브랜드 코어를 강화하고 성장 잠재력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지형을 재편하고 유통 파트너십을 강화해 지속적인 글로벌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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