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삼키고 복통 호소, 병원에서 도주해 변장 거듭…기존 특수강도죄에 도주죄 적용 시 1년 이하 징역 추가
#‘협박·강간·사기’ 화려한 전과 이력
1987년생 탈주범 김길수의 범죄사는 15세 소년 시절부터 시작한다. 김길수는 2002년 10월 충청남도 아산시의 한 미용실에서 사람들을 흉기로 협박해 금품 강취를 시도했다. 결국 미수에 그쳤지만 2009년 12월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면서 김길수에 대해 특수강도 미수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김길수는 2008년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과 무면허운전, 사문서위조와 사기 등의 혐의로 의정부지법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2007년 7월 무면허 상태에서 타인 명의의 신분증을 제출해 빌린 렌터카를 끌고 접촉사고를 낸 뒤 그대로 달아났으며, 같은 해 8월 온라인상에 자신을 채권추심 전문가로 광고해 의뢰인으로부터 착수금과 경비 등 명목으로 약 2000만 원을 받아낸 사실이 적발돼 기소됐다.
2011년에는 서울시 송파구에서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만난 2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여 30만 원을 강취하고 2회에 걸쳐 성폭행했다. 그는 2011년 7월에 진행된 1심에서 특수강도강간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잇따라 불복이 모두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면서 복역하다가 2020년 출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길수는 복역 후 약 3년 동안 배달업 등에 종사했지만, 도박을 자주 하는 바람에 채무가 상당한 상태가 됐다. 돈이 필요했던 김길수는 9월 11일 ‘은행보다 싸게 환전해주겠다’는 SNS 광고 글을 보고 찾아온 30대 남성에게 최루액을 발사한 뒤 7억 4000만여 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나려 한 혐의로 10월 30일 경찰에 체포됐다. 유치장에 구속됐던 김길수는 11월 2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범행 당시 김길수는 7억 원이 넘는 돈을 모두 들고 갈 여력이 되지 않자 7000만 원 정도만 챙겨 도주했는데, 이 돈은 현재까지 경찰에 회수되지 않았다.
#변장과 노숙까지…숨 막히는 63시간 추적
유치장에 있던 김길수는 11월 1일 식사 도구로 제공된 플라스틱 숟가락을 삼킨다. 다소 황당한 이 행동은 ‘63시간 도주’의 서막이었다. 뱃속 숟가락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던 김길수는 11월 2일 ‘진료가 필요하다’는 교정당국의 판단에 따라, 경기도 안양시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으로 이송돼 진료를 받게 됐다.
7층 병실에 입원했던 김길수는 11월 4일 오전 6시 20분경 “세수를 하겠다”고 요구하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일시적으로 수갑 등 보호장비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곧바로 도주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계단을 통해 린넨실(세탁실)이 있는 지하 2층으로 향한 김길수는 짙은 남색 병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떠났다. 김길수의 도주 사실을 파악한 교정당국 관계자 2명은 자체적으로 추적에 나섰다가 결국 실패하고 도주 1시간 뒤인 오전 7시 20분경 경찰에 신고했다.
그 뒤 김길수의 행적은 수도권 내 곳곳에 위치한 CC(폐쇄회로)TV에 담겼다. 병원에서 탈출한 김길수는 도보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범계역에서 택시를 타고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으로 갔다.
이때 30대 지인 여성 A 씨가 김길수의 택시비를 대신 내주고 현금 10만 원을 김길수에게 건넨 것으로 파악된다. 일각에서는 A 씨가 김길수의 연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돈을 받은 김길수는 다시 택시를 타고 양주시에 있는 친동생을 만나러 갔다. 친동생 B는 김길수에게 현금 70만 원과 베이지색 옷을 건네줬다.
오전 9시 37분경 김길수는 미용실에서 헤어스타일을 바꿨고 이후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창동역으로 가 사우나에 방문했다. 오후 12시 15분경에는 당고개역 인근 분식점에서 장터국수를 먹기도 했다. 김길수는 주위를 의식했는지 음식을 남긴 채 국수 값을 놓고 5분 만에 사라졌다.
강북 노원구를 배회하던 김길수는 노원역에서 서울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뚝섬유원지역에 내렸다. 이후 오후 9시경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착됐는데 지하상가 한 상점에서 검은색 옷을 구매한 뒤 터미널 인근 한 편의점에서 음료수 1캔을 현금으로 결제했다.
도주 2일차인 11월 5일 김길수의 행적은 묘연하다.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4일 밤부터 5일까지 노량진과 친동생이 사는 양주 일대에서 노숙을 이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친동생 집 인근 상가 주차장에 머물던 김길수는 11월 6일 오후 8시경 버스를 타고 의정부로 이동했다.
법무부는 김길수의 현상금을 기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상향한 수배전단을 배포했다. 수배전단에서 ‘키 175cm, 몸무게 83kg, 건장한 체격’이라고 김길수를 소개한 서울지방교정청은 “언제든지 환복 및 변장할 수 있음에 유의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의정부에서 접촉하려던 대상은 앞서의 A 씨일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길수는 의정부시 가능동에 있는 한 공중전화 부스에서 A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A 씨와 함께 있던 한 여경의 위치추적 의뢰로 소재가 파악됐다.
6일 오후 9시 24분경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은밀히 김길수에게 접근한 뒤 짧은 추격전 끝에 검거에 성공했다. 검거 당시 CCTV 영상에서 김길수는 몸부림을 치며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제압당했다. 의정부시 가능동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임 아무개 씨는 “얼굴을 보고 낯이 익어 이쪽(의정부) 사람인가 싶더라. 흉악범이라고 들었는데 안 잡힐까 봐 조마조마했다. (김길수가) 잡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계획·조력자 없었다” 사후처리 어떻게?
의정부경찰서에서 안양 동안경찰서로 이송된 김길수는 “탈주를 언제부터 계획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계획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조력자가 있었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계획 범행과 조력자 존재 여부에 대해 부정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계획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력자의 경우에도 김길수에게 직접 도주 자금을 건넨 지인 여성 A 씨와 친동생 B 씨가 거론된다. 경찰은 A 씨를 범인도피 혐의로 입건해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B 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고 밝혔다. 범인도피죄는 친족간 특례가 적용돼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은 처벌하지 않는다.
사후처리와 관련해서도 경찰은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11월 7일 0시경 안양동안경찰서로 김길수를 압송한 경찰은 최대한 빨리 기초 조사를 하고, 사건 발생 72시간이 되기 전인 오전 4시경 신병을 서울구치소 측에 인계했다. 이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형집행법에 따르면 교도관은 수용자가 달아난 경우 도주 후 72시간 이내 당사자를 체포할 수 있다.
경찰은 기존에 김길수가 구속된 범죄 혐의인 특수강도죄의 구속 효력이 남아있는 점을 고려, 이번 도주 사건으로 다시 구속할 경우 ‘이중 구속’ 등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조사에 오랜 시간을 끌지 않고, 신속히 사건 경위를 파악한 뒤 김길수를 구치소 측에 넘겨 법리적 문제가 생길 소지를 차단한 것이다.
도주한 수용자를 사건 발생 72시간이 되기 직전 검거한 사례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보니 경찰을 비롯한 관계기관이 김길수의 신병 인계 시점을 두고 법리 검토를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체포 혹은 불법 구속 등의 법리적 문제가 생길 경우 향후 재판에서 혐의를 다퉈 보기도 전에 김길수에게 죄를 물을 수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검찰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기초 조사 후 즉시 신병을 교정 당국에 인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형법 제145조에 따라 김길수에게 도주죄가 적용될 것이라며 탈출을 사전에 계획한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가중처벌 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도주죄 적용 시 1년 이하의 징역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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