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사법기관 수장 공백 역풍 가능성…2014년 대법관 임명동의안 땐 초당적 찬성
하지만 민주당이 또다시 반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양대 사법기관 수장 공백 사태에 대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은 조 후보자를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데 동의하기도 했다.
#'전관예우' 논란에서 자유로운 조 후보자
11월 8일 윤석열 대통령은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조희대 전 대법관을 지명했다. 이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법관으로서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데 평생을 헌신했고 대법관으로서도 원칙론자로 정평이 날 정도로 법과 원칙이 바로 선,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력을 보여왔다”며 “(조 후보자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 보호에도 앞장서 왔고, 대법관 퇴임 뒤에는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서 연구 및 후학 양성에만 신경 써왔다. 이런 점에서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 사법부를 이끌어가 사법부 신뢰를 회복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후임자를 고르는 데 있어서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오래되면 안 되니까 거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이분이 국회에서도 야당에서도 큰 문제 없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임기를) 한 4년 정도 하시는 걸로 되어있는데, 과거에도 보면 다 안 채우고 하신 분들이 세 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1957년생인 조 후보자는 대법원장 정년(70세) 규정상 임기 6년을 다 채울 수 없다.
11월 9일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는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예방하기 위해 찾은 대법원 현관에서 지명 첫 소감을 밝혔다. 그는 “(대법원장을) 단 하루만 하더라도 헌법을 받들겠다”며 “어깨가 무겁고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명 제안을 고사했다 수락하게 된 계기를 묻자 “중책을 맡기에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차례가 아니라 수천, 수만 번 고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법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국민들에게 혹시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렵고 떨리는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조희대 후보자는 사법부 보수화 우려에 대해선 “‘무유정법’이라는 말이 있다. 정해진 법이 없는 게 참다운 법이라는 말이다. (2014년) 대법관 취임사에서도 우리 두 눈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보는 법이라고 했다”며 “한평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도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라고 답했다.
조희대 후보자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사법연수원 13기)한 뒤 1986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지법 부장판사, 대구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대법관에 임명돼 2020년 퇴임했다. 이후 대형 로펌으로 가지 않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쓴 만큼 ‘전관예우’ 논란에서 자유롭다.
#또 부결? 역풍은 어쩌고
야당은 조희대 후보자에 대한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11월 9일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조 후보자에 대해 “민주당의 원칙과 기준은 여전히 똑같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냐. 국민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을 갖춘 인물이냐. 사법부의 수장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냐, 세 가지”라며 “이 기준과 원칙에 부합해야만 임명동의안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조희대 후보자가 주요 판결 때마다 보수 정권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주장하며 “소외 받는 힘없는 국민을 돕는 ‘미스터 소수의견’이 아닌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미스터 보수의견’으로 살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 후보자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해야 한다”고 소수의견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비판적 다큐멘터리에 “제재가 정당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이균용 전 후보자에 이어 조희대 후보자까지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11월 10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하면서, 대법원과 헌재 두 최고 사법기관 수장 자리가 동시에 공백인 사태가 빚어졌다. 그 역풍이 민주당을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월 6일 민주당은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를 35년 만에 인준을 부결하며 낙마시켰다(관련기사 ‘2연속 반대하자니…’ 이종석 헌재 소장 후보자 인준 민주당 딜레마). 민주당이 조희대 후보자를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데 동의한 것도 반대하기 쉽지 않은 요인으로 꼽힌다.
국민의힘은 신속한 임명을 위한 인사청문회를 촉구했다. 11월 8일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조희대 후보자는 지난 2014년 찬성 230표, 무려 98.3%의 압도적 표결로 국회를 통과했다”며 “민주당 반대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45일째 이어지고 있다. 헌재 역시 10일 유남석 헌재 소장 퇴임으로 수장 공백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사법부 양대 수장의 공백은 결국 재판받는 국민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국회는 내실 있는 인사청문회를 신속히 실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송곳 검증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할 것이다. 이번에도 대법원장 낙마시키겠다는 예단을 가지고 하지 않을 것이다. 조 후보자는 임기 6년을 다 채우지 못한다는 점과 이종석 헌재소장 후보자와 고등학교 선후배인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며 “2014년 대법관 임명 때는 개인 신상 관련해서 크게 흠을 잡을 데가 없었지만, 대법관과 대법원장은 다른 차원에서 검증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헌재소장과 더불어 너무 한 색깔 아닌가 싶다. 사법부의 보수 편향성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하실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2014년 2월 20일 국회는 조희대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234명 가운데 찬성 230표, 반대 4표였다. 여야가 이견 없이 조 후보자에게 초당적 지지를 보냈다. 당시 조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인 김동철 민주당 의원(현 한전 사장)은 본회의에서 “조 후보자가 다양한 재판 실무 경험을 쌓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재판을 해왔다”며 “도덕성 측면에서도 특별한 흠결은 찾아보기 어렵다. 병역 기피, 탈세,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 불미스러운 사안들이 전혀 제기되지 않았다. 이에 여야 간에도 아무런 논란 없이 청문회가 무난하게 진행됐다”고 보고했다.
당시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번째 대법관 청문회인 만큼 이춘석 의원을 청문회 간사로 전면 배치하며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이 의원은 이명박 정부 당시 2009년 검찰총장 후보자와 2012년 대법관 후보자를 낙마시키며 저격수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당시 이 의원은 “대표적인 TK 출신 조희대 후보자가 과연 ‘끼리끼리 인사’라는 의혹을 떨치고 국정원 재판의 공정한 진행을 통해 사법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인물인지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조희대 후보자의 어떤 흠집도 발견하지 못했다. 2014년 2월 18일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님은 흠이 없는 게 흠인 것 같다. 솔직한 얘기로 특별히 칭송받아야 될 판결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판이나 또는 악담을 받아야 될 그런 판결도 없는 것 같다”며 “경력을 보면 굉장히 화려하고, 재산이나 여러 가지 경력관계, 가족관계, 병역, 세금 하나도 흠잡을 바가 없다. 오래전부터, 한 20여 년 전부터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 꿈을 꾸신 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최원식 민주당 의원도 “28년간 공직생활 성실히 수행하신 것 진짜 수고했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대법관) 후보자에 오르신 것 축하드립니다”며 “저희 청문위원들이 대체적으로 본 것에 의하면 공직생활을 진짜 성실하게 잘 해 오신 것 같아서 특별한 책잡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조희대 후보자 삶의 궤적을 봤을 때, 민주당이 대법원장 장기간 공석 사태에 대해 협조하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지 않을까 싶다”며 “민주당이 선별적으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맞는 것은 맞다고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선명 야당으로서 주목도나 국민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청문회 이슈는?
2014년 대법관 국회 인사청문회 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 주요 질의 중 하나였다. 조희대 당시 대법관 후보자는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국기를 흔드는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증거가) 조작된 게 맞다면 인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여러 가지 강력한 처벌 수단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장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관련 질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9월 21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해당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에 대한 ‘보복 기소’ 책임을 물어 안동완 차장검사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2014년 5월 1일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을 포함한 검사 3명이 간첩 증거 조작 사건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다. 그로부터 8일 뒤 안동완 검사가 피해자 유 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이는 검찰이 이미 2010년 기소유예한 바 있어 보복 논란이 일었다. 2021년 대법원은 이를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 씨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0월 12일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유우성 씨와 유 씨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2억 3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앞서 2020년 11월 1심 재판부는 국가가 유우성 씨에게 1억 2000만 원, 여동생에게 8000만 원, 부친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조희대 후보자는 검찰 수사를 바로잡은 바 있다. 200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수원역 노숙 소녀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청소년 피고인 4명에 대한 항소심을 맡았다. 조 후보자는 이들의 검찰 자백에 합리성과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미 유죄판결이 확정된 다른 2명의 피고인까지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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