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프로포폴 유행 지나 한동안 잠잠…‘마약 오염국’ 시대 “정말 귀한 건데” 접대로 접하기도
마약 중독 상담을 진행하는 한 민간단체 관계자의 충격적인 얘기다. 물론 그렇게 많은 연예인이 마약 중독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상대의 권유나 호기심으로, 혹은 모르고 마약을 불법 투약했던 경험이 있는 연예인이 그만큼 많을 수 있다는 얘기로 다행히 상당수의 연예인은 한두 번 위험한 유혹에 노출된 뒤 바로 마약을 끊는다고 한다. 마약 오염국이 된 대한민국 사회 구석구석에 마약의 손길이 계속 뻗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연예계에선 더욱 깊은 곳까지 마약이 침투해 있다. 어쩌다 연예인과 마약이 너무 잘 어울리는 단어 조합이 되고 만 것일까.
#‘뽕필’ 받아야 명곡 나온다?
일반 대중들에게 연예계와 마약이라는 단어가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원로급 연예관계자들은 그 시작점을 1970년대 연이은 대마초 사건들부터라고 설명한다. ‘가왕’ 조용필, ‘록의 대부’ 신중현, ‘통기타 가수’ 이장희, 윤형주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연이어 대마초 사건에 휘말렸다. 이런 흐름은 1980년대까지 이어진다. 전인권, 부활의 김태원, 이승철, 신해철 등 역시나 음악적 역량이 뛰어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들이 대마초 사건에 휘말렸다.
인기 가수들이 연이어 대마초 사건에 휘말리고 이런 소식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연예계와 마약은 밀접한 단어가 되고 만다. 이런 흐름은 1990년대까지 계속 이어진다.
1980년대 가요계 분위기를 기억하는 한 원로 가요관계자는 “당시에 가수들 사이에서 대마초를 피우고 녹음하면 평소보다 노래가 잘 나온다는 풍문이 있었다. 그땐 그걸 뽕필이라고 했다”며 “실제로 녹음을 하다 잘 안 풀리면 ‘떨(대마초의 은어) 때리고 오겠다’며 녹음실을 나가 차량에서 몰래 대마초를 피우고 오기도 했다. 몇몇 녹음실에선 대마초 고유의 향이 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1980년대 들어 또 다른 기류도 포착되기 시작한다. 연예인이 필로폰 관련 사건에 휘말리거나 관련 루머가 급속도로 퍼지는 일이 잦아진 것. 이는 재벌 2세와 고위층 자제들과 어울리는 여자 연예인이 많아졌는데 그들의 권유로 필로폰 등 마약의 덫에 빠져드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1980~1990년대에는 유난히 재벌가와 여자 연예인을 둘러싼 루머가 많았는데 여기에 ‘마약’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도 자주 함께 했다.
#산업화의 심각한 부작용
1990년대 가요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앨범이 100만 장 이상 팔리는 밀리언셀러가 넘쳐났는데 아직 MP3가 보급되기 이전이라 앨범 판매량이 엄청났고 이를 통해 가요계로 엄청난 현금이 몰려들었다. 1990년대 후반 드라마와 영화 산업도 급성장을 시작했고 2000년대 초에는 한류 열풍까지 시작된다.
연예관계자들은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연예계가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한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연예기획사가 기업화하기 시작한 시점도 이 즈음이고 한류열풍 등으로 출연료가 급등하는 등 연예인의 수익도 대폭 증가하기 시작한다.
연예인과 재벌 관련 루머도 이즈음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톱스타급 연예인이 재벌 못지않게 큰돈을 버는 구조가 완성된 탓이다. 더 이상 연예인이 돈 많은 재벌가와 굳이 만날 이유가 없어졌다. 연예인을 ‘딴따라’라 부르던 시절과 달리 스타급 연예인은 부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영향력까지 갖춘 저명인사로 분류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즈음 연예인 마약 사건도 폭증한다. 더 이상 돈 많은 재벌 2세가 마약을 구해주지 않아도 연예인이 직접 마약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자본력과 영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연예계가 산업화에 접어들면서 오랜 인연이 있던 조폭과의 관계도 급격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연예인과 조폭의 친분관계까지 아주 끊긴 상황은 아니었고 연예인들은 친한 조폭을 통해 마약류를 공급받았다. 그러다 보니 연예계에서 마약 사건이 가장 자주 터진 시점이 바로 2000년대 초중반이다. 한 연예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급속도로 이뤄진 연예계 산업화의 심각한 부작용”이라고 설명할 정도다.
대마초, 엑스터시, 필로폰 등 다양한 종류의 마약에 연루된 연예인들이 거듭 적발됐고 관련 루머도 끊이지 않았다. 연예인 한 명이 마약에 연루되면 평소 친분 있는 연예인들까지 루머의 희생양이 됐다. 2001년에는 아예 김민종 엄정화 이소라 등 유명 스타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검찰에 마약검사를 자진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싸이, 정찬 등이 연이어 마약 사건에 휘말리는 등 ‘마약 괴담’이 나돌면서 이뤄진 자진 마약검사 요청 기자회견이었다. 결국 검찰에서 검사가 이뤄졌고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프로포폴·대마는 몰라도 필로폰은 안된다
어느 정도 마약 돌풍이 연예계를 강타한 뒤로는 연예인 마약 사건이 크게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 급격한 산업화의 부작용이 잦아든 셈이다. 2000년을 즈음해 초고속통신망 보급이 이뤄지면서 비로소 온라인 세상이 활짝 열렸다. 인터넷을 통해 오가는 정보량이 급증하면서 연예인의 각종 물의에 대한 여론의 흐름도 인터넷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의 연예인을 향한 비난 여론이 온라인에서 쇄도하면서 여론을 감안해 일정 수준의 자숙 기간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마약 연루 연예인의 경우 대마초는 컴백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필로폰은 치명타가 됐다. 황수정의 경우 어렵게 컴백을 강행했지만 대중이 그를 외면했다. 이처럼 대마 정도를 제외한 필로폰 등의 마약에 연루되면 컴백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연예인들이 스스로 마약을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2013년 불거진 박시연, 이승연, 장미인애, 현영 등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은 또 다른 트렌드의 시작점이 됐다. 이후 프로포폴 연루 연예인 사건이 급증했는데 미다졸람, 디아제팜, 케타민, 졸피뎀 등 향정신성의약품 관련 사건들이다. 마약류지만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을 받으면 투약이 가능한 터라 일부 연예인이 쇼핑하듯 병원을 돌아다니며 과잉 처방을 받은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제는 최고의 대접이 마약?
5~6년 전 정도부터 흐름이 크게 달라졌다. 필로폰과 코카인 등의 마약에 연루된 연예인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에서 마약 오염국으로 변화하는 시점과 일치한다. 한국 사회 곳곳으로 마약이 침투하는 상황을 연예계도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 중심에는 유흥업계가 있다는 게 연예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룸살롱 등의 유흥업소들은 물론이고 각종 클럽을 통해 마약이 유통되며 이런 곳을 자주 찾는 연예인에게도 유혹의 손길이 덮쳤다. 클럽을 자주 가는 수준을 뛰어 넘어 연예인이 직접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거기서 바로 버닝썬 게이트가 터졌다.
한 중견 배우는 “연예인이 돼 스타급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 가는 곳마다 좋은 대접을 받게 된다. ‘TV에서 본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 호감을 사기 때문”이라며 “술자리에 초대 받으면 늘 좋은 술을 대접받는 일이 많은데 언젠가부터 최고의 대접이 마약이 됐다. 이거 정말 귀한 건데 귀한 분이니까 드리는 거라며 권하는데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대접해주는 상황에 취해 마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마약 중독 상담을 진행하는 한 민간단체 관계자 역시 “연예인 마약 불법 투약자는 유명 스타급보다 어느 정도의 유명세는 있지만 인기 스타까지는 아닌 이들이 더 많다”면서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 경험으로 보면 연예인 열 명 가운데 서너 명은 마약을 접해봤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렇게 접한 이후다. 실수로 한 번 손을 댔지만 이후에는 더 조심하는 연예인도 있지만 그렇게 마약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는 것. 앞서의 배우는 “요즘에는 인터넷으로도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다 보니 거듭 마약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라며 “그러면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지고 마약을 구입비용이 부족해 나중에는 직접 유통까지 한다. 마약을 구해 지인들에게 팔고, 그렇게 번 돈으로 또 마약을 하는 악순환에 빠진 연예인들도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마약 중독 상담 관계자는 “상담의 원칙상 누군지 말할 순 없지만 연예인도 많이 상담했다. 대부분 우연히 마약을 권유받아 하게 됐지만 중독의 무서움을 알고 마약에서 벗어나려고 도움을 받으려 하는 사례들”이라며 “어떤 계기로 인기가 급상승하면 마약으로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빨리 마약을 끊으려고 결심하는데 이런 경우 의지도 강하다”고 설명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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