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로 신고해 피해금 일부 환급받아…법률대리인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위 확대 해석 필요”
투자 사기를 당한 김 아무개 씨를 변호하는 천호성 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 대표변호사 말이다. 김 씨는 투자 사기 이후 보이스피싱으로 신고해 계좌를 지급 정지시켰지만, 이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공무집행방해 혐의 피의자로 전환돼 수사 중이다. 사건은 김 씨가 투자 사기 제안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 씨는 주식 공부를 시작하고 증권 계좌를 개설했다. 김 씨는 ‘그때부터 여러 증권사 이름으로 전화가 왔었다’고 말했다. 2023년 4월 아무개 증권사 소속이라며 소개하는 사람이 접근해 왔다. 그는 ‘전설의 분석’이란 단체카톡방에 초대해 줄 테니 들어와 보라고 권유했다. 김 씨는 여기서 해외 선물 전문가 강 아무개 대표라는 사람과 처음 얘기를 나누게 됐다.
해당 채팅방에는 ‘강 대표를 통해 큰 수익을 봤다’며 수익 인증하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김 씨는 해외 선물이 뭔지 몰랐지만, 인증 글에 혹해 강 대표와 메신저를 통해 얘기를 나누게 됐다. 강 대표는 김 씨 자금 운용 계획을 물은 뒤 ‘그것을 다 처분하고 해외 선물 투자를 하면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강 대표 말에 따라 해외 선물 사설 업체에 돈을 넣고 강 대표 리딩을 따라서 포지션 진입을 하기 시작했다. 강 대표가 진입 가격을 주며 진입하라고 하면 김 씨가 진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처음 1계약 포지션을 진입했지만 로스컷(손절매) 처리돼 담보금이 날아갔다. 이에 강 대표는 오히려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다시 하면 자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 말을 믿고 추가금 100만 원을 입금했다. 추가금을 입금한 뒤 조금 수익이 나자, 강 대표가 또 다른 제안을 시작했다. 강 대표는 ‘어떤 사람은 투자 실패로 우울증에 걸렸다가 나를 만나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혹시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냐’며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권했다.
강 대표가 제안하는 프로젝트는 3000만 원으로 1억 원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강 대표는 ‘항셍, 나스닥에 좋은 뉴스가 있다. 성공할 수 있다’고 권했다. 김 씨가 금융기관에 3000만 원을 대출해 마련하자, 강 대표는 말이 바뀌어 ‘5000만 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이에 장기 카드대출로 2400만 원을 추가했다. 이렇게 김 씨는 2차 피해 금액 5400만 원을 추가로 입금했다.
김 씨는 강 대표 리딩에 따라 진입했고 일시적으로 1600만 원 정도 수익을 봤다. 이에 강 대표가 ‘잘될 것 같으니 시드 금액을 1억 원으로 맞춰서 투자하자’고 했다. 이에 김 씨는 추가로 2400만 원을 이체했다. 이렇게 김 씨는 7800만 원을 이체했다. 김 씨 투자금 1억 원은 강 대표 리딩을 따라 금세 20억 원으로 불어났다.
꿈 같은 20억 원이 소멸하는 데 며칠도 필요하지 않았다. 7월 김 씨가 투자한 돈은 연속 로스컷이 나면서 1600만 원밖에 안 남았다. 투자 사기 전문가들은 20억 원도 없었고 애초에 모든 거래가 다 거짓이었다고 보고 있다. 조작 프로그램으로 투자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수익이나 손실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7월 중순 20억 원이 사라지자 김 씨는 강 대표에게 ‘많이 힘들다. 남편 볼 면목도 없고, 애들한테도 미안하다. 잠을 잘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강 대표는 ‘자존심이 상한다’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손실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강 대표 측에 7800만 원을 투자금 명목으로 이체했다.
김 씨가 이체한 이 돈도 약 한 달이 되지 않아 빠르게 사라졌다. 강 대표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면서 ‘8월 내가 직접 담보금을 넣어 드리겠다’고 말했다. 돈을 모두 잃은 김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며칠 뒤 이 모든 게 사기극이었다는 걸 깨닫고 돈을 찾을 방법을 고민했다.
김 씨는 온라인을 찾아보다가 투자 사기꾼도 보이스피싱과 마찬가지로 대포통장에다 사기꾼들이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 사기 피해금을 돌려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김 씨는 “돌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를 해서 지급정지 신청을 해 피해환급금을 받는 방법밖에 없다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7월 31일 김 씨는 경찰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신고하게 된다. 김 씨는 경찰에 ‘아무개 뱅크 대출 승인율이 높다. 계좌를 개설한 뒤 해당 계좌에 거래 실적이 쌓여야 대출 승인 금액을 더 받을 수 있다. 일정 기간 거래 실적을 쌓아 놓으면 아무개 은행에서 대출을 진행해 주겠다’는 사기꾼의 말에 속았다고 말했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 김 씨는 사고 사례에 있는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것처럼 말한 것이다.
김 씨는 신고를 통해 사고 사실확인원을 발급받아 계좌를 정지했다. 현재 계좌에 지급 정지가 걸린 금액은 약 1억 4511만 원이다. 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환급까지 받은 건 약 800만 원이다. 김 씨가 사기로 날린 돈 가운데 극히 일부만 받아낸 셈이다.
그런데 9월 해당 지급 정지를 두고 김 씨 말이 거짓인 걸 안 경찰이 해당 사건을 인지 사건으로 전환해 입건했다. 경찰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을 거짓으로 꾸며냈다며 김 씨를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수사를 개시했다. 김 씨는 경찰에 한 차례 조사를 받았고, 현재 경찰 단계에서 계류 중이다.
김 씨 변호를 맡은 천호성 변호사는 애초에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경찰이 관성적으로 ‘보이스피싱’ 사건에 한정해 두는 게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천 변호사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2조에서는 ‘전기통신금융사기’에 대해 ‘전기통신을 이용하여 타인을 기망, 공갈함으로써 자산을 이체하도록 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면서 “증권사라고 주장하는 자들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카카오톡 대화방 형태로 속아 사기를 당해 돈을 이체했는데 이게 보이스피싱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에서 보이스피싱 상담 전화를 맡은 A 씨는 자신의 경험상 지급정지는 대환대출 사기 등에만 해당한다고 말했다. A 씨는 “중고나라나 네이버페이 사칭 사이트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사기를 쳤음에도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지급 정지가 불가했다. 또한 성매매 출장을 해주겠다며 돈을 받고 잠적을 한 사례에서도 지급 정지가 안 됐다”면서 “대환대출 사기의 경우에만 지급 정지를 해주는데 범위가 너무 좁은 것 같다. 전화 받으면서도 억울한 분을 많이 알았지만 도울 게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천 변호사는 관례로 보이스피싱만 지급정지하는 걸 넘어서 다양한 사기가 넘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계좌를 지급 정지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만 최근 아무런 이유 없이 계좌 지급정지한 뒤 ‘풀고 싶다면 돈을 내라’는 등의 통장 협박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투자 사기 등 다양한 사기꾼들이 돈을 찾아가지 못하도록 지급 정지 요건을 완화하자는 쪽과 협박 사기 등 악용될 가능성 때문에 완화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천 변호사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수사를 진행하고는 있겠지만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조속한 피해회복을 돕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국회는 이러한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조속한 조치를 취해야 대한민국이 사기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긴다”고 말했다.
앞선 A 씨도 통장 협박과 사기 피해는 대부분 구별하기 쉽다고 말했다. A 씨는 “통장 협박 경우 1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 넣고 거짓으로 신고하는 경우다. 투자 사기를 봤다는 김 씨처럼 협박을 위해 수천만 원을 넣는 사람이 어딨겠냐”면서 “사례를 많이 듣다 느낀 건 김 씨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애초에 투자 사기도 보이스피싱과 같이 안 다뤄준 경찰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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