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들 대세는 '전문직'
요즘 취업을 꿈꾸는 청년들한테는 '전문직'이 대세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7급 공무원 경쟁률은 42.7 대 1을 기록했다. 1979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2011년 93 대 1이었던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022년 29.2 대 1까지 떨어졌다.
반면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자료를 보면 그해 감정평가사·노무사·세무사 지원자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감정평가사에는 4509명이 지원해 2018년(1711명)에 비해 2.6배 늘었으며, 세무사(1만 4728명)와 노무사(8261명) 역시 2018년과 비교해 지원자가 각각 41%, 78%씩 증가했다.
공무원 출신으로 세무사 시험에 2023년 합격한 이 아무개 씨(34)는 "비록 공직보다 경쟁이 훨씬 치열하지만, 그만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만족한다"며 "개인의 자율성 또한 공무원 때보다 보장되는 측면에 커 도전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각 업계에서도 이런 흐름을 의식해 '문과 n대 전문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저마다의 직업을 홍보한다. 대개 '8대 문과 전문직'으로는 변호사·변리사·회계사·세무사·감정평가사·법무사·노무사·관세사 등이 꼽히는데, 행정사와 공인중개사 등도 꾸준히 지원자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럴수록 직역 갈등이 심화한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의 조정 역할도 부각됐으나 오히려 갈등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문과 n대 전문직을 내세우는 곳마다 직역 문제로 대립을 겪어 정부에 조정을 요청하지만, 모호한 법률해석 등으로 되레 소송을 유발하는 등 상황이 악화하고 있어서다.
#노무사가 써온 임금명세서, 쉬우면 행정사도?
예컨대 현재 세무사와 노무사 및 행정사 업계는 근로자들의 임금명세서 한 장으로 극한 갈등을 앓고 있다. 이 명세서 작성을 누가 할 수 있는지를 놓고 다툼을 벌이다 정부에 해결을 요청했으나 이도 저도 아닌 결론이 나온 게 사태를 키웠다.
기존까지는 노무사가 해당 업무를 해왔다. 그러다 세무사 측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세금 공제 등 전문성이 필요하니 세무사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나서 "노무사여야 가능하다"고 대답해 논란은 끝이 났다.
구체적으로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명세서 등은 근로일수 및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의 각 사항을 작성·관리하고, 임금 산정 방식 등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노사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라며 "세무사의 지식만으로는 수행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데서 문제가 터졌다. 행정사 측이 행정안전부에 같은 내용을 문의한 결과 전혀 다른 답변이 나와서다. 행안부는 임금명세서도 행정사법이 규정한 여러 권리관계에 관한 서류이므로 행정사 업무 범위에 포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로 노무사 측과 행안부 사이에 최근 다툼이 불거지기도 했다. 공인노무사회 쪽의 항의에 행안부 관계자는 "복잡하지 않은 명세서는 행정사도 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문제가 있다면 소송을 통해 노무사만 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을 받아 오라"고 했다.
이러다 보니 결론도 꼬인다. 그동안 임금명세서는 노무사들이 써왔는데 세금 공제 등이 있어도 세무사는 작성하지 못하고, 정작 행정사는 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관념과는 다소 거리감 있는 모습이다. 행정사는 행안부 소속이다.
1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가령 행정사와 노무사 업계는 2022년 12월 산업재해 보험청구 관련 업무 처리를 놓고도 갈등을 빚었다. 이때 행안부는 "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등과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대답한 바 있다. 직역 갈등이 심해지는 분위기 속 행안부의 숙의 과정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처마다 제각각 대답을 내놓아 결국 업계끼리 수사의뢰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업에선 생계를 걸고 소송까지 잇따르는데 정부가 범죄자를 양성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플랫폼과의 전쟁
직역 갈등에 따른 소송전은 이외에도 여럿이다. 올 8월에는 보험설계사들이 세무 대리를 알선·소개한 혐의로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등을 선고 받았다. 보험설계사들의 세무대리 알선·소개는 관행적으로 이뤄지다 2021년에야 법으로 금지됐다.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 플랫폼과의 직역 갈등까지 번졌다. '제2의 로톡 사태'가 다른 직업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는 법원이 로톡의 손을 들어주며 판례가 마련됐으나, 다른 직역은 성질이 조금 다르다.
세무사 업계가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세무사회는 세무대리 업무를 도와주는 '삼쩜삼' 플랫폼과 갈등을 겪고 있다. 로톡의 경우 플랫폼 내 광고가 '특정 변호사 소개·알선'을 금지한 변호사법의 위반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는데, 삼쩜삼은 세무사의 주요 영역인 세금 환급 등이 플랫폼 안에서 직접 이뤄지므로 불법 세무대리 아니냐는 게 핵심이다.
경찰과 검찰은 삼쩜삼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박건욱)는 "유사 사례, 신종 플랫폼 사업에 대한 사회·제도적 변화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삼쩜삼 서비스가 무자격 세무대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세무사법 위반 혐의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세무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세무 대리 소개·알선 금지 법령 제정 전에는 제휴 세무사와 수수료를 분배하던 삼쩜삼이 소개·알선 금지 이후에는 수수료도 아닌 플랫폼 유지비용으로 변경했다"며 항고를 예고해 갈등은 이어질 전망이다.
"당선되면 직역 확대" 이완영 전 의원 노무사회장 출마 까닭
업계의 직역 갈등으로 인해 최근 치러진 각 직업 협회 등의 회장 선거에서 '직역 수호'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한국세무사회의 경우 2023년 6월 치러진 회장 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이 삼쩜삼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선거 바람을 일으키며 지난 12년 동안 유지돼 온 정구정 전 회장 1인 체제가 깨졌다. 당선된 구재이 현 회장은 소감으로 "삼쩜삼 등의 무자격사 플랫폼 업체를 넘어서는 전문가 집단으로 우뚝 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회장 선거가 한창인 한국공인노무사회 분위기도 비슷하다. 세무사와 행정사 등과의 직역 갈등에서 결코 밀려선 안 된다는 데에는 뜻이 하나로 모인다.
이런 가운데 이번 노무사회 회장 선거에는 눈길을 끄는 인물이 등장했다. 이완영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차기 회장 후보 기호 3번으로 출마했다. 이 전 의원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국회의원 시절 출퇴근 산업재해 인정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에도 기여했다"며 "정치인 출신으로 정부 및 국회 등과 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는 장점들을 알아봐준 주변 노무사들의 추대로 출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선되면 노무사 직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고용노동부에 몸담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경북 고령·성주·칠곡군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국회에서는 노동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대표적인 '친박근혜계' 인사로 '세월호 막말 파문'을 일으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인 2014년 6월 관련 국정조사에서 유족들의 항의에 "경비는 뭐하나"라는 등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2019년 6월에는 대법원에서 의원직이 상실되는 벌금 500만 원과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 등이었다. 다만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사면복권됐다.
이 전 의원은 2024년 총선에도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국회의원과 노무사회장이 동시에 당선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노무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겠다"면서도 "노무사회 회장은 비상근직이라 국회의원과 겸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