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뇌는 어떤 지역을 떠올리면 시간적 거리보다 공간적 거리를 먼저 생각한다. 절대적 거리가 먼 만큼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공간적 거리가 곧 심리적 거리라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아파트 갭투자 세계에서는 이런 통념이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수도권 아파트값은 교통혁명을 불러올 GTX 노선에 따라 춤을 춘다. GTX 효과가 과장됐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지만 MZ세대를 중심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GTX 개발 재료를 좀 더 크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내가 서울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GTX가 개통되어 시간적 거리가 단축된다고 해도 실제로 거주해야 한다면 탈서울을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교통비, 자녀 학교 문제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재택근무를 하게 되거나 자율형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어 교외에서 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생각일 뿐 당장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상상하는 일이 실제 일어날지 현재로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직장인에게는 여전히 직주근접이 선호된다.
그러나 갭투자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지금 당장, 그리고 미래에도 거주할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공간적 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거리에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것도 환금성이 떨어지는 농지나 임야가 아니라 언제든지 매매할 수 있는 아파트를 사는 게 아닌가. 지역과 관계없이 보유금액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찾아내 투자하고 수익만 챙기면 되는 것이다. 한 갭투자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데나 사도 됩니다. 값만 오르기만 하면 되죠.”
갭투자자에겐 아파트값이 빨리 올라 최종 목적지인 서울로 갈아탈 수 있는 목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말하자면 원격지 갭투자는 일종의 서울로 가기 위한 경유지 투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역도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얼핏 들어서는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지만, 집값이 잘 오르지 않는 수도권 외곽보다 지방 핫 플레이스의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까울 수 있다. ‘집값이 어느 정도 빨리 오를 것인가’가 갭투자의 선택 기준이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2020~2021년 2030세대를 중심으로 탈서울 주택 구입이 급증한 것은 이런 유형의 갭투자 증가와 맞물려 있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혹시 지리적으로 먼 곳인데도 가깝게 느끼는 것은 모바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중개업소에 걸려있는 지도나 컴퓨터 화면 지도로 볼 때에 비해 모바일 맵은 압축된 세계를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먼 강원도나 충청권 도시들도 모바일 맵으로 보면 가깝게 느껴진다.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한번 터치(스크롤)하면 금세 이동이 가능하다. 엄지족들은 모바일로 먼저 체험하고 난 뒤 물리적인 공간을 확인한다. 3차원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에서는 아예 거리나 공간개념이 희박하다. 메타버스에선 미국도 옆집처럼 느껴진다. 모바일이 세상을 하나로 묶어주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도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모바일 사회가 성큼 다가오면서 먼 곳까지 갭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결국 GTX역 개통 예정지역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원정 갭투자 붐이 나타난 것이다.
GTX 재료는 시장의 기대를 부풀리는 헬륨가스처럼 작용한다. 상승기에는 가격이 크게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락기에는 그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투기적 수요가 몰려 거품이 형성되면 다른 지역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발 고금리 쇼크로 수도권에서 심하게 아파트값이 떨어진 동탄, 수원 영통구, 인덕원, 의왕, 송도는 모두 GTX 수혜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올해 들어 시장여건이 좋아지자 반등세를 주도하고 있다. GTX는 수도권 교통지도를 바꿔놓을 대역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격 변동이 다른 지역보다 클 수 있으므로 과열 조짐을 보일 때는 조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