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히어로 반응 미지근, 그마저도 예습해야 내용 이해…원작 설정 무시한 PC주의도 걸림돌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더 이상 ‘믿고 보는’ 마블 시리즈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관객들이 극장에 가지 않는 문화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순 없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1000만 관객 달성에서 알 수 있듯 ‘될 영화는 된다’는 것이 정통한 속설이다. 즉, 마블 영화가 더 이상 ‘될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 개봉한 ‘더 마블스’는 개봉 일주일 동안 49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과거 마블 시리즈 영화가 개봉 당일에만 100만 관객을 동원하던 것을 고려하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왜 그럴까.
#새로운 스타가 안 보인다
마블 시리즈는 2019년 개봉된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정점을 찍었다. 타노스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이 영화는 국내에서만 14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았다. MZ세대에게는 마블 시리즈가 ‘스타워즈’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하나의 막을 내린 마블 시리즈의 다음 챕터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하지만 선장을 잃은 마블 시리즈는 흔들렸다. 이들을 이끄는 두 축이 사라졌다. 아이언맨은 숨졌고, 캡틴아메리카는 노인이 됐다. 또 다른 인기 캐릭터인 블랙팬서 역을 맡았던 채드윅 보스먼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마블 시리즈는 그 빈자리를 채우려 노력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앤트맨, 블랙 위도우 등의 독립 히어로 영화를 공개했고, 최근에는 캡틴 마블의 후속편인 ‘더 마블스’로 승부수를 띄웠다. 여기에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와 ‘이터널스’ 등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시리즈를 추가 제작하며 외연을 확장했다. 종국에는 이들을 한데 엮는 새로운 어벤져스를 꿈꿨다. 하지만 독립 히어로 영화에 대한 반응이 미지근하다. 좀처럼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 영웅에 대한 향수만 짙어지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블이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등을 다시 불러오는 것을 고려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타임슬립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스토리텔링 상 과거의 아이언맨 등을 현재로 불러온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스토리라인을 바꾸면 현재 활동 중인 히어로와의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팬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이 지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그들이 복귀했음에도 흥행 반전을 일구지 못한다면 마블의 침체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디즈니 플러스가 ‘독’ 됐다
마블은 디즈니 소속이다. 디즈니라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기업의 자회사다. 팬데믹 기간 영화 산업의 한계를 느낀 디즈니는 타 콘텐츠 기업과 마찬가지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자체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의 강화다. 마블 영화 역시 극장 상영을 마친 뒤에는 여기서만 볼 수 있다. 관객을 구독자로 끌어온다는 계산이다.
배급의 한계가 있는 극장과 달리, OTT는 무한대로 열려 있다. 얼마든지 콘텐츠를 공개할 수 있다. 그래서 마블은 디즈니+를 통해 다양한 독립 히어로 영화를 공개했다. 일종의 세계관 확장이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는 사망한 로키를 디즈니+ 시리즈로는 만날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오히려 적잖은 흥행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디즈니+ 독립 히어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영화가 개봉되는 시리즈를 100%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더 마블스’에는 모니카 램보, 미즈 마블 등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지만 두 캐릭터 모두 디즈니+ ‘완다비전’을 봐야 그들의 등장과 캐릭터 성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앞서 개봉됐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역시 ‘완다비전’을 봐야 갑자기 악하게 변한 완다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마블 팬들에게 이 모든 콘텐츠를 챙겨보라는 것은 ‘강요’에 가깝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흥미가 떨어졌는데, 그다지 매력이 넘치지 않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디즈니+로 본 후 극장에 오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의미’ 못지않게 ‘재미’ 중요한데…
최근 몇 년 사이 마블을 비롯한 디즈니는 ‘PC(정치적 올바름)주의’에 집중했다. 인종·성별·국적 등을 허물고 평등하게 모든 캐릭터를 그리고 또 기용한다는 소신이다. 그 기조 자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표현됐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고 있다. PC주의를 차용하기 위한 설정이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터널스’의 동성애 설정을 비롯해 ‘더 마블스’에서는 소녀들의 활약에 집중한다. 이외에도 흑인이나 여성들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키운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가 활약할 때 대중이 ‘남초’를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지나친 설정’이라는 대중의 반감에 수긍이 간다. 디즈니는 이외에도 ‘인어공주’를 실사로 만들며 흑인 배우를 캐스팅해 ‘화이트 워싱’(모든 캐릭터를 백인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블랙 워싱’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원작 캐릭터의 설정을 무시했다는 측면에서 ‘원작 훼손’이라는 아우성도 들렸다.
이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의도성이 읽히는 설정은 대중의 거부감을 키웠다. 상업 영화로서 ‘의미’ 못지않게 ‘재미’가 중요한데, 일단 “재미가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재미가 없으니 그들이 챙기겠다는 ‘의미’ 또한 퇴색하는 모양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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