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 제작 약속 후 먹튀, 미성년자 착취 등 피해 호소…X서 ‘사진 속 본인’ 주장했지만 증언 이어지자 잠적
#친절한 이웃? “사기 친 X” 폭로
11월 9일 오후 9시쯤 인스타그램과 X(옛 트위터) 등 SNS에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남성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남성은 잠실역에서 두 팔을 치켜들며 역무원들을 위협하는 한 노숙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팔을 붙잡고 이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결국 함께 춤을 추던 노숙자는 난동을 멈췄고, 스파이더맨 복장 남성은 홀연히 사라졌다.
누리꾼들은 “진짜 스파이더맨인 거냐” “톰 홀랜드가 깜짝 방문한 것 아니냐” 등 신기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또한 역무원을 도와 노숙자를 제지한 남성에게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깜짝 등장해 곤경에 처한 시민들을 돕는 영화 속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현실로 재현됐다는 반응이다.
이어 11월 10일 새벽 1시 30분쯤 X에 한 이용자가 본인이 잠실역 스파이더맨이라며 게시글을 올렸다. “경찰이 오기까지 10여 분 정도 걸린다고 하셔서 더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말렸다”고 주장한 이 작성자는 “용기 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누리꾼의 댓글에 “장난삼아 간 것이며, 저는 쫄쫄이 뒤집어쓴 사람에 불과하다”는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며칠 뒤 온라인 커뮤니티와 X 등에 잠실역 스파이더맨이라고 주장하는 이로부터 과거에 사기를 당했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글을 작성한 A 씨는 “이 X 아이언맨 제작 카페에서 어떤 분 슈트 제작해준다고 돈 받아갔다가 잠수 타서 들통났다”며 “나중에 카페에서 일 커지니까 돈 물어줬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랑 쉘과 마스크 교환하자고 연락해 놓고 쉘 받아가고 잠수 탔다가 공론화한다니까 반년 넘게 걸려서 돌려주고 사기쳤다”고 했다.
A 씨는 본인이 잠실역 스파이더맨이라고 주장한 이가 SNS 상에 활동명 'S'를 사용하는 서 아무개 씨(22)라며 그의 과거 행적 관련 피해자들의 카톡 캡처본을 공개했다. 서 씨가 스파이더맨 의상을 주문 제작한다고 밝힌 뒤 돈을 입금 받으면 잠적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사기 행각이 발각된 뒤 잠적했다가 활동명을 S로 바꾸고 나타났다고 말했다.
코스프레 대회에서 벌어진 조작 논란의 당사자라고도 주장했다. 9월 22일 열린 GXG 2023 코스프레 대회에서 서 아무개 씨가 ‘좋아요’ 수를 조작해서 수상자가 됐다는 것.
A 씨는 “당시 아무 인지도 없는 서 씨 게시글 하나에 좋아요 수가 694개가 찍혔다”며 “나머지 게시글의 좋아요 수는 비공개로 전환하는 등 수상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A 씨가 주최 측에 관련 사실을 제보하자 며칠 뒤 서 씨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코스프레 대회 관련 게시물이 모두 삭제됐다고 한다. 한편 서 씨는 11월 11일 X에 “페벌(페스티벌)은 한 번도 안 갔다. 주말에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 만들어 주고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서 씨가 중국산 코스튬 의상을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속이고 판매한다고도 했다. A 씨는 “(서 씨는) 본인이 스파이더맨 슈트를 직접 제작한다고 했는데, 중국 숍에서 받은 것이고 사진도 타인의 사진을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서 씨 인스타그램 계정의 코스튬 사진 뒤에 중국어가 써진 벽면을 공개했다.
이 글을 본 누리꾼들이 “저 사람이 그 사람인지 어떻게 아냐”라고 의문을 제기하자,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피해자는 가해자를 잊을 수 없다. 그 사람의 행동, 특징, 연락처 다 있다. 저 남성(서 씨)과 연락하시는 분께 동일인이라는 답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진 피해자들의 증언
서 씨는 인스타그램에 ‘스파이더맨 슈트 제작 및 코스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하지만 서 씨로부터 온전한 스파이더맨 슈트 혹은 마스크를 받은 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중반 남성 피해자 B 씨는 “2020년에 서 아무개 씨에게 스파이더맨 슈트 제작을 문의했다. 비용 80만 원을 입금하고 의상 디테일 향상을 위한 추가금 약 20만 원도 입금했다. 빠른 제작을 원하면 100만 원을 더 달라고 하길래 그 돈은 안 줬다”며 “처음에는 제작 사진도 보내줘서 믿었지만 사실 사진 자체가 가짜였다. 답장이 하도 없어 기다리다 못해 코스튬 카페에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는 문의 글을 올렸더니 비슷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게 돼서 고소장을 접수했고 결국 돈은 돌려받았다. 사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서 씨가 인스타그램 팔로어 11만 명이 넘는 유명 코스튬 제작자 ‘쉐이드’의 동업자로 사칭한 적도 있다. 쉐이드와 같이 작업하는 사진을 보내면서 동갑내기 친구로 작업도 공유한다고 말했다”면서 “잠실역 스파이더맨이 등장하고 서 아무개 씨임을 알아본 피해자들끼리 모여서 (사기 피해 사실을) 공론화해야 될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번에 유명해져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고 전했다.
20대 남성 피해자 C 씨는 “2020년 서 아무개 씨와 코스프레 의상 제작 공동 작업을 하기로 하면서 공동비(17만 5000원)를 입금했다. 공동비 입금 후 연락이 점점 뜸해졌다. 연락도 안 받고 돈이 급한 상황이 생겨 공동 작업을 취소하겠다고 하니 본인(서 씨)도 돈이 없다고 말을 돌렸다. 한번은 부친상을 이유로 약 2개월 시간을 줬는데 12월 말일에 연락이 오더니 적반하장식으로 나오다가 70%(약 12만 원)만 환불해줬다”고 말했다.
C 씨는 “다시 연락이 닿아 올 추석에 ‘가족들이랑 친가 쪽 가지 않냐, 아버지 운전하실 때 피곤하실 텐데 돌아가면서 해드려라’ 이렇게 떠봤다. 그랬더니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한 것을 기억 못하더라. 그러고는 (아버지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말을 바꿨다. 부친상 통보 당시에는 화장했다고까지 말했다. 다른 분한테는 친구가 죽었다고 말했더라”며 카톡 내용을 첨부했다.
또 다른 피해자 D 군(18)은 “2019년 (코스튬) 카페에서 서 아무개 씨가 마스크 제작해준다고 해서 7만~8만 원 입금했다가 결국 받지 못했고 이때가 첫 사기였다. 지난 5~6월 스파이더맨 의상을 갖고 싶어 단톡방에 들어가 한 코스튬 제작자를 만났다. 주문 제작을 의뢰해 올해 여름부터 총 170만 원 정도를 분납으로 입금했다. 제작자는 다름 아닌 ‘S’로 이름을 신분을 세탁한 서 씨였다. 서 씨는 원단 등 재료들을 일부러 적게 사고 추가 구입한 원단을 강매했다. 심지어 판을 완성했을 때 자기가 몇 번 쓰고 줬다”고 주장했다.
미성년자인 D 씨를 대가 없이 착취했다고도 주장했다. D 씨는 “판 줬으니까 주문받은 것 네가 대신 만들어야 한다고 협박했고 아마 공범으로 만들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거절하면서 왜 제작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오래 알고 싶은 동생’이라며 친한 형처럼 가스라이팅까지 했다. 몸도 안 좋고 계속 거절했지만 기한 내로 완성하라며 집에 찾아와 문신을 보여주면서 욕설로 협박했다. 착취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재료비 등도 내 돈을 썼다”고 말했다.
E 씨(28) 역시 사기 피해를 호소했다. E 씨는 “2020년 사기를 당했다. 일 때문에 스파이더맨 슈트가 필요했다. 한 코스튬 카페에서 우연히 스파이더맨 의상 제작 글을 보고 작성자에게 의뢰했더니 제작 기간은 3개월, 비용은 12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처음에는 연락이 잘됐다가 선금 60만 원을 건넨 뒤 연락이 잘 안됐다. 1~2주 만에 답장이 왔는데 내용도 성의 없었다. 이후 부모님 핑계를 대면서 30만 원을 미리 받아갔고 결국 전액을 다 입금했지만 연락이 거의 안 됐다. 스트레스를 받다가 경찰에 신고했는데 그 뒤 카페에 서 씨가 올린 글들 사라지더라. 서 아무개 씨 친누나로부터 ‘자기가 금액 다 지불하겠다. 대신 고소 취하해달라’는 연락이 왔고 돈을 돌려받고 원하는 대로 해줬다”고 말했다.
#또 잠적해버린 ‘그’를 찾아서
A 씨는 “사기 행각을 폭로한 뒤 서 씨가 피해자 단톡방에서 ‘당분간 SNS 접는다. 잠수하겠다’며 방을 폭파시켰다. 그 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잠적하곤 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서 씨 집을 방문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어 서 씨의 연락처와 모든 SNS 계정을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서 씨가 2019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한 스파이더맨 코스프레 남성이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방송에 출연했던 남성은 SNS 댓글 등을 통해 본인은 잠실역 스파이더맨과 다른 사람이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C 씨는 방송 출연 스파이더맨과 관련해 “직접적이진 않지만 그 분 역시 피해자”라며 “스파이더맨 코스튬으로 유명한 분”이라고 밝혔다.
한편 피해자 E 씨에 따르면 11월 14일 새로운 카카오톡 메신저 계정으로 서 씨로 추정되는 이가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약 2일 전에 제 이전 계정으로 카톡 주셔서 지금 사용하는 연락망으로 연락드리게 됐다. 다시 한번 그때 일에 대해서는 사과 말씀 드리겠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약 4개월 전에 장문의 사과 카톡을 한 번 더 드렸었다”는 내용이다.
E 씨는 “서 씨의 평소 행실에 비춰 봤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닥치니까 수습용으로 보낸 것 같다. 이후에도 답장을 읽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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