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당협위원장만 게시 가능, 이름 알리기 어려워…당원명부 열람 불가에 정보 비대칭 불만도
지난 9월 추석 연휴 때 고양시정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신정현 전 경기도의원이 내건 현수막 문구다. 민주당 소속인 신 전 도의원은 “다들 (문구를 보고) 웃으셨다”며 “(시민들이) 이 문구가 기억난다면서 알아봐 주신다. 이처럼 (현수막의) 각인 효과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전 도의원이 현수막을 건 것은 불법이다. 정당법과 옥외광고물법은 당대표 또는 당협위원장만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전 도의원은 당협위원장이 아닌 후보들은 현수막을 달기 어렵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주민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후보자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벌금을 감수하고 현수막을 내걸거나 아예 현수막을 포기하는 것이다. 신 전 도의원은 중간 지점을 선택했다. 일단 자신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되, 단속 전에 직접 현수막을 철거했다.
지난 추석 때 신 전 도의원은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낮에 고양시정 각 동에 8개의 현수막을 걸었다. 그리고 밤에 친구들과 현수막을 철거했다. 신 전 도의원은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 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현수막 한 개에) 10만 원이 든다. 보통 (당협위원장은) 30~40개를 단다”며 “저 같은 원외, 청년 정치인들은 감당하기 어렵다. 직접 달고 떼면 할인이 된다”고 했다.
당은 다르지만, 현수막을 달 수 없는 후보들의 처지는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동두천시·연천군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손수조 리더스클럽 대표는 지역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해 주민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있다고 했다. 손 대표는 “방송에 나오기 때문에 인지도가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손 대표는 현수막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손 대표는 “(비당협위원장 후보들이) 현수막을 거는 것은 불법”이라며 “(관련법이) 예비 후보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수막으로 이름을 알리지 못하는 후보들은 경선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손 대표 주장이다.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한 비례대표 의원도 “(현수막을) 전혀 못 걸고 있다. 군소 정당이라고 해도 당협위원장이면 자기 마음대로 (현수막을) 걸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동안 정치권의 ‘현수막 남발’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자극적인 문구로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많았고,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2022년 12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지금처럼 당대표와 당협위원장만이 허가나 신청 없이 현수막을 내걸 수 있도록 정해진 것이다.
당협위원장이 아닌 예비 후보자들은 △비당협위원장 후보의 현수막 게시 불법 △당원명부 열람 불가 △당협위원장과 기초의원의 협력관계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들은 이러한 요소들이 정당의 경선 과정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수조 대표는 “(국민의힘의 경우) 당원 명부 열람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당원 명부를 현역 당협위원장들만 볼 수 있기 때문에 경선에 나오는 후보들에게는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앞서의 국민의힘 의원도 국회의원이더라도 당협위원장이 아니면 당원 명부를 볼 수 없다고 했다. 후보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 있는 셈이다.
손 대표는 “(당원 명부는) 공식 선거기간에만 열어볼 수 있다”며 “12월 12일 예비후보 등록을 할 때부터 안심번호를 이용해서 당원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안심번호를 이용하면 당원들의 개인정보도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당협위원장이 기초의원들과 당직자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예비후보자들 사이에선 불만이다. 손 대표는 한 국민의힘 당직자로부터 사퇴를 종용하는 문자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손 대표가 제공한 문자에는 ‘더 망신당하지 말고 (지역구를) 떠나세요. 경고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손 대표는 “아무래도 현역 의원들이 (기초의원들의) 공천권을 가지고 있고, (의원의 공천을 받은) 시의원과 도의원이기 때문에 ‘원팀’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정현 전 도의원은 민주당도 국민의힘과 사정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신 전 도의원은 “속된 말로 목줄을 쥐고 있다고 표현한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본인의) 판단으로 행동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의견에) 맞춰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선거법이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채 교수는 “현역 의원들이 다른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잘하지 못하게끔 만든 측면도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선거법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했다. 채 교수는 “(선거법·옥외광고물 표시법 등이) 상시적으로 선거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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