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반 만에 미국을 방문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 자리에서 펜타닐의 제조 및 수출을 단속하는 데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 원료의 주공급원이 다름 아닌 중국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펜타닐 원료를 제조하는 중국의 화학업체들을 직접 추적 및 단속하겠다는 뜻이었다.
미국이 이렇게 중국에까지 도움을 요청한 배경에는 물론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적 목적도 있지만, 다급함과 위기감 또한 배어 있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 의약품 시장에 서서히 침투하기 시작한 펜타닐로 인한 우발적인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수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심각한 도시는 샌프란시스코다. 마약 중독자들은 샌프란시스코 안에서도 특히 텐더로인과 사우스오브마켓(SoMA) 주변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텐더로인은 샌프란시스코의 ‘그라운드 제로(중심지)’라고 불릴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다.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은 주로 펜타닐을 비롯한 합성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를 과다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남성이며 2020년의 경우 사망자의 약 70%가 35~64세였다.
약물중독 사망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2017년 222명이었던 사망자 수가 2020년에는 725명까지 증가하면서 역대 가장 치명적인 해로 기록됐다. 이 가운데 73%가 펜타닐 중독자였다. 이렇게 갑자기 늘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이로 인해 약물남용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한 인원이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팬데믹 기간 고립감과 우울함을 느낀 탓에 약물과 알코올을 접하는 빈도가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약물중독 사망자 수는 이듬해인 2021년에는 약 647명으로 감소했지만 2022년에는 649명(80%가 펜타닐 사망자)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급기야 2023년 들어서는 폭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9월 한 달에만 54명(48명이 펜타닐 중독)이 추가로 약물중독으로 사망했고, 이로써 누계 사망자 수는 620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 추세대로라면 올 한 해 사망자 수는 2020년의 기록적인 수치를 넘어선 800명대에 달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펜타닐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보다 강력한 효과에 있다. 헤로인보다 최대 50배 강력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해서 ‘좀비 마약’으로 불리며, 2mg의 매우 적은 용량으로도 치명적이 될 수 있다. 33g의 펜타닐만으로 최악의 경우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도시가 유령화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관광객들은 팬데믹 이전보다 16% 감소했고, 재택근무를 했던 직장인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져 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니 당연히 상점도 하나둘 문을 닫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약 7000명의 노숙자들이었다. 덩달아 약물에 취한 사람들까지 늘면서 곧 도로에는 배설물과 주사 바늘이 뒹굴면서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텐더로인에서 10년 동안 술집을 운영해온 케빈 드마티아는 이런 상황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술집 앞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선을 그려놓은 채 영업하고 있는 그는 거리 마약상들에게 제발 이 선을 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드마티아는 마약상들에게 “이봐, 나는 경찰을 부르지는 않을 거야. 당신이 당신 사업을 하고 있듯이 나도 내 사업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당신은 지금 내 가게 앞에 서서 내 사업을 방해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는 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그 후로 그들은 가게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기 시작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 6월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구글 스트리트뷰를 보면 샌프란시스코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중심가인 유니언 스퀘어의 상점들 가운데는 쇼윈도에 종이를 붙이거나 ‘임대’ 표시가 붙은 곳이 수두룩했다. 시장조사업체 ‘코어사이트’가 CNN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유니언 스퀘어에서 문을 닫은 소매점은 40곳에 육박했다. 대형 체인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CB2, 앤트로폴로지, 노드스트롬을 포함한 많은 유명 체인점이 속속 철수를 결정했다. AT&T 또한 파월 스트리트 1번지 모퉁이에 있는 상징적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영구적으로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심지어 대형 쇼핑몰인 ‘웨스트필드’마저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지점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웨스트필드’ 측은 이번 결정이 도심 지역의 ‘어려운 운영 조건’ 때문이라고 밝혔다. 쇼핑몰 대변인은 KGO-TV 인터뷰에서 “고객, 소매업체 및 직원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환경 탓에 점점 더 많은 소매업체와 기업들이 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매각 발표 후 텅빈 ‘웨스트필드’ 정문 앞에는 이제 소변 냄새만 진동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때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국제박람회도 샌프란시스코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졌다. 방문객이 급감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호텔들도 덩달아 경영난에 처한 것이다. 가령 ‘파크 호텔 앤 리조트’는 1921개의 객실을 보유한 ‘힐튼 샌프란시스코’와 1024개의 객실을 보유한 ‘파크 55’ 등 두 호텔의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숙박업계 데이터 회사인 STR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호텔들의 매출은 2023년 4월 기준, 코로나 이전보다 23% 감소했고, 이후 정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사무실 공실률도 역대 최고치인 31%에 달했다. 총 9만 2000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 공간이 텅 빈 상태로 남아있다. 지난 4월, ‘세일즈포스’는 팬데믹 이전까지 약 1000명이 근무했던 시내 중심가에 있는 30층짜리 세일즈포스 이스트 빌딩에서 철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인한 재정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5년 후에는 13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의 예산이 부족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공실률이 증가한 이유가 꼭 마약 중독자들 때문만은 아니다. 팬데믹 후에도 원격 근무를 지속하면서 사무실로 복귀하지 않고 있는 노동인구가 많은 탓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6만 명 이상, 즉 7% 이상 감소했다. 상업용 부동산 중개업자인 마크 리치는 “IT업계가 중심인 샌프란시스코가 다른 미국의 도시들보다 원격 근무의 증가로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숙자들이 증가한 데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도 한몫했다. 지난 6월에 발표된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 전역의 노숙자들 가운데 30%가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을 정도다. 실제 ‘레드핀’의 자료를 살펴보면 샌프란시스코 주택의 평균 매매 가격은 현재 132만 달러(약 17억 원)로, 전국 평균보다 무려 214% 더 비싸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시당국이 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약국과 진료소의 근무시간 확대, 이동진료소와 진료팀 인원 확충, 날록손을 비롯한 치료제 배포, 치안을 강화하기 위한 법 집행, 노숙자들을 위한 임시 거처 마련, 중독 치료 및 직업 훈련 등에 대한 예산 투입 등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노력이 아직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크리스 콜웰 응급의학과 박사의 말에 따르면, 거리에서 마약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10~15명 정도 병원으로 쏟아져 들어오지만 제도적으로 모두를 도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거리로 되돌려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며, 이런 환자들은 며칠 후 혹은 몇 주 후에 다시 심각한 상태로 병원으로 실려오곤 한다.
“내 안에 악마가 있는 것 같다”고 호소하면서 펜타닐에 중독된 채 거리를 전전하던 중 폭행 사건에 휘말려 사망한 윌 앤드류스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노숙 생활과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약물 중독에서 해방만 된다면 다시 직장을 얻고, 좋아하는 서핑을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그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자발적으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몇 시간 만에 강제로 퇴원을 하고 말았던 그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서 ‘긴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했다.
마약상들이 다른 직업을 찾도록 도와주는 구제 프로그램도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비영리재단으로 ‘재판 전 전환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조아나 에르난데스는 마약 판매 혐의로 기소됐던 온두라스 출신의 10대 소년과 나눈 대화를 기억했다. 에르난데스가 소년에게 제공한 재활 프로그램에는 6개월간 거주할 수 있는 숙소를 비롯해 라틴계 식료품점 상품권, 대형 마트 ‘타겟’의 100달러(약 13만 원) 상품권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그저 다시 거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할 뿐이었다. 이에 과거 마약상으로 일했던 온두라스 출신의 멜빈 로페즈는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상품권이나 숙소가 아니다. 그보다는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마약상들은 취업 허가 서류가 없어 합법적인 직업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로페즈는 “그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도와주는 게 아니다”라면서 “일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리에서 마약을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인공지능(AI) 붐에 편승해 앞으로 샌프란시스코에 AI 관련 회사를 대거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사무실 출근률을 높이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으며, 시의 경찰력을 확대하고, 일부 상업용 건물을 주거용 부동산으로 전환하기 위한 도시 법규도 개정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시카고에 본사를 둔 호텔 투자업체인 ‘옥스퍼드 캐피털 그룹’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새로운 브랜드 호텔 네 곳을 선보이면서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옥스퍼드 캐피털 그룹’의 최고 운영 책임자인 사랑 페루리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경제 사이클과 도전을 잘 견뎌낸 샌프란시스코의 장기적인 전망에 낙관적이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스웨덴의 가구업체 ‘이케아’의 경우에는 최근 유니언 스퀘어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3층짜리 대형 매장을 열었다. 이에 브리드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IKEA의 상륙은 유니언 스퀘어 지역에 일자리 창출과 활력을 가져와 경제 회복을 이끌어줄 반가운 소식”이라며 “‘이케아’가 샌프란시스코 미래의 일부가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한 부동산 중개업자인 리치 역시 “샌프란시스코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우리는 모두를 놀라게 할 것이다. AI 고용 붐이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면서 “물론 마약 중독은 큰 문제다. 하지만 도시 전역에서 그런 건 아니고, 몇몇 특정 장소에서만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또한 “샌프란시스코의 부유한 동네나 중산층 외곽 지역으로 차를 몰고 나가면 전혀 문제가 없다. 인근 거리 소매업도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희망을 내비쳤다.
‘약 판 돈 고향으로…’ 온두라스 마을 때 아닌 건설붐 까닭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18개월에 걸쳐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마약을 판매하는 불법 상인들 가운데 대다수는 온두라스 출신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시날로아’, ‘할리스코 뉴 제너레이션’ 등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었다. 온두라스에서도 특히 ‘시리아 밸리’에 있는 인구 1600명의 작은 농촌 마을인 엘 페데르날 출신들이란 점이 그렇다. 실제 마약 판매 혐의로 기소된 130명의 온두라스인 가운데 51명이 이 마을 출신이었다.
이들이 마약 판매로 벌어들인 돈 덕분에 현재 이 마을에서는 때 아닌 부동산 건설붐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들인 현금을 고향으로 송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이들이 마약 판매로 벌어들이는 돈은 1년에 35만 달러(약 4억 5000만 원) 정도다.
이런 까닭에 현재 엘 페데르날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집들은 샌프란시스코 건물의 특징을 그대로 흉내낸 곳이 많다. 가령 금문교나 시빅 센터를 본뜬 집들을 비롯해 심지어 샌프란시스코 미식축구팀인 ‘포티나이너스(49ers)’의 엠블럼까지 대문 장식으로 사용한 집도 있다.
주택 건설붐이 일면서 건설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수입도 농부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무려 네 배 가까이 많아졌다. 한 교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맞춤형 금속 장식을 제작하는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마약 밀매가 미국에 미친 영향에 관한 책을 쓴 온두라스 출신의 작가 오스카 에스트라다는 “온두라스인들이 미국에서 마약상으로 일하면서 벌어들인 돈을 고국으로 송금해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현상은 매우 새로운 것이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라고 말했다.
가령 잠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한 베테랑 마약상은 15만 달러(약 2억 원)를 들여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침실 세 개짜리 집을 건설했다. 이 돈은 그가 텐더로인 지역에서 5개월 동안 마약 판매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필 샌프란시스코를 택한 걸까. 이에 대해서는 모두들 입을 모아 “샌프란시스코의 관대한 법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마약 거래로 적발되어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에도 추방될 위험이 거의 없으며, 형량도 비교적 가벼운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약 판매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 가운데 6%만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 경우에도 형량은 짧게는 1일에서 길게는 3년 정도로, 평균 168일에 불과했다.
이런 이유에서 한 마약상은 “샌프란시스코가 마약상들에게는 성역의 도시가 됐다”면서 “감옥에 가도 나오면 그만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