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초라한 성적에 긴 프런트 생활 거쳐 감독직 올라…‘우승 없는 우승 청부사’ 비판 딛고 트로피 획득
#최저 타율 불명예
지도자로선 감독 부임 직후부터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를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염갈량으로 불린 염경엽 감독이지만 선수 시절에는 무딘 공격력의 대명사 같은 선수였다. KBO 역사를 통틀어 15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 중 가장 낮은 타율(0.195)을 기록한 인물이다.
1루를 제외한 내야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한 그는 팀 내 확고한 주전으로 활약한 시즌이 드물다. 규정 타석을 채운 때는 태평양 시절인 1994시즌이 유일하다. 당시 그의 타율은 0.212였다. 1998시즌에는 0.265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103경기에서 100타석만을 소화했다.
야구계에서 2할대 초반을 오가는 저조한 타율 성적을 두고 '멘도사 라인'이라 부른다. 메이저리그로부터 유래된 이 용어의 국내의 대표적 사례가 염경엽 감독일 정도다.
이 같은 저조한 타율에도 염 감독은 프로 무대에서 10시즌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활약한 선수다. 앞서와 같은 조건에서 최저 타율 기록을 갖고 있지만 염 감독의 WAR 기록은 최저 순위가 아니다. 공격력은 무디지만 수비 능력과 주루로 팀에 기여를 한 덕분이다.
#프런트 생활
멘도사 라인으로 유명했던 염 감독은 은퇴 이후 지도자가 아닌 구단 프런트 직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본인은 코치를 원했으나 당시 현대 구단에서 프런트직을 제안했다. 2년간의 프런트 생활 이후 코치로 전환해 주기로 했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단 매니저, 스카우트 등 다양한 보직을 경험했다. 최초 2년으로 약속했던 프런트 생활은 6년까지 길어졌다.
현대에서 LG로 유니폼을 갈아입었으나 프런트 생활은 지속됐다. 스카우트를 맡아 치른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이번 한국시리즈 MVP로 뽑힌 오지환을 지명하기도 했다. 2009년 운영팀장을 거쳐 2010년 수비코치 보직을 받으며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최근 야구계 기조가 달라지고 있다지만 프런트를 거쳐 감독직에 오르는 케이스는 드물다. 홍원기 키움 감독, 허삼영 전 삼성 감독이 프런트 직책을 경험했으나 전력분석 파트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을 뿐, 염 감독과 같이 매니저까지 경험한 이는 많지 않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 KBO리그 10구단 감독들 또한 프런트 경력을 가진 이들은 많지 않다.
#우승 없는 우승 청부사
LG, 넥센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간 염 감독은 2013년 넥센 감독직에 올랐다. 자신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었기에 "최대 목표가 수석코치였는데 감독이 될 줄 몰랐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히어로즈는 창단 이후 하위권만을 전전하던 팀이었다. 염경엽 감독은 부임 첫 시즌부터 팀을 상위권에 올려놨다. 4시즌간 정규리그 3위, 2위, 4위, 3위를 달성하며 매 시즌 포스트시즌에 나섰다. 2014년에는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으나 우승에는 실패했다.
염 감독은 SK 단장을 역임한 이후 2019시즌에는 SK 감독으로 현장에 돌아왔다. 단장으로 있던 2018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 SK였기에 후임 사령탑 염감독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정규리그 2위,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라는 결과는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이듬해 SK는 심한 부진을 겪었고 염 감독 개인도 건강 악화 등 악재를 겪으며 시즌 도중 팀을 떠나야 했다.
이 같은 배경에 LG 감독으로 선임될 당시 팬들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LG는 그 누구보다 우승이 간절한 팀이었다. 2000년대 극심한 '암흑기'를 경험한 LG는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안정적인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시즌을 앞두고 통합우승 4회를 이뤄낸 류중일 감독을 선임했으나 우승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후 프랜차이즈 스타 류지현 감독도 정규리그 3위와 2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으나 포스트시즌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며 번번이 우승에 실패했다. 특히 2022시즌에는 구단 역대 최다승(87승) 기록을 남겼고 시즌 막판까지 정규리그 우승을 놓고 경쟁했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선 키움에 밀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해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염경엽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됐다. 감독 선임을 놓고 일부 팬들의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우승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 우승 경력이 없는 감독이 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는 감독 커리어에서 정규시즌에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도 포스트시즌에서 아래 순위의 팀에게 덜미를 잡히는 경험이 적지 않았다.
#뚝심 혹은 유연함
하지만 염 감독은 LG 구단에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결과를 선사하면서 자신을 향한 비판을 잠재웠다. 이번 우승으로 구단과 악연 아닌 악연도 끝을 냈다.
염 감독의 선수시절 데뷔팀인 태평양 돌핀스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진출 당시 상대팀이 LG였다. LG는 태평양을 상대로 4-0 완승을 거둔 바 있다. 또한 LG 코치직을 지낸 2010년과 2011년에는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돼 팀을 떠나야 했다. 염 감독은 "당시 구단주에게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렇게 됐다"는 소회를 남겼다.
염 감독은 한 시즌간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서도 부분적으로 유연성을 보이며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즌 초반부터 선두권 싸움을 이어온 LG가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부분은 '뛰는 야구'였다. LG는 한 시즌간 도루시도 267회에 도루성공 166회로 각 부문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반면 성공률(62.2%)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자연스레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염 감독은 이를 두고 "궁극적 목표가 뛰는 야구는 아니다. 망설임 없이 자신감 있는 야구를 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비록 도루 실패는 많았지만 LG는 이번 시즌 팀타율, 볼넷, 출루율 등에서 1위 기록을 내며 만회해 우승을 일궈냈다.
뚝심 있게 뛰는 야구를 밀어붙이면서도 선수기용 면에서는 유연함을 보인 염 감독이다. 그는 히어로즈 시절 영광을 함께했던 서건창을 주전 테이블 세터로 낙점했다. 서건창은 수년째 부진에 빠진 상태였지만 염 감독은 "서건창은 내가 잘 안다"며 중용을 예고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 서건창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다른 자원들을 적극 활용했다.
투수 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초 임찬규는 선발 로테이션 5인에서 배제됐으나 이내 선발로 전환, 14승 3패 평균자책점 3.42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소수에 의존하지 않는 불펜 관리 또한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LG가 자랑하던 필승조 정우영, 고우석 등이 부진한 시기가 있었으나 함덕주, 백승현, 유영찬, 박명근 등을 적절히 기용하며 가용 자원을 늘렸다. 예상보다 이르게 선발 투수가 무너졌으나 7명의 구원투수를 기용하며 승리를 낚아챘던 한국시리즈 2차전은 LG 불펜 뎁스를 보여주는 경기였다.
지도자로서 첫 우승을 경험한 염경엽 감독은 팬들 앞에서 "이제 시작"이라는 말을 했다. 돌아오는 시즌에도 우승을 노리겠다는 각오였다. 통합 우승으로 방점을 찍은 염경엽 감독의 커리어가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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