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개봉을 앞둔 이병헌을 만났다. 언론시사회가 열린 날 저녁 이뤄진 영화 출연진과의 저녁 식사자리에서 처음, 며칠 뒤 이어진 인터뷰에서 두 번째였다. 이병헌은 영화나 연기 활동에 대한 질문만 받고 싶었겠지만 세상의 관심사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폭이 넓다. 이병헌은 어쩔 수 없이 이민정과의 질문을 반복해 받았고 역시 반복해 답했다.# 이병헌의 연인, 그리고 연애
▲ 이민정 |
‘4월에는 왜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이병헌은 3~4초쯤 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 때…. 왜 인정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그때 왜 부인했냐고 묻는 게 맞겠지. 그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질문은 이어졌다. ‘그 저간의 사정이란 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병헌은 다시 한 번 몇 초 동안 숨을 골랐다. “뭘 결정할 때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그걸 더 묻는다면…. 솔직히 그 일들까지 활자화되는 건 굉장히 부담스럽다. 거기까지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1991년 연기를 시작해 20년 넘도록 톱스타의 자리를 지켜 왔지만 요즘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도 없다. 이병헌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내 말도 아닌데 왜곡돼 기사 제목으로 나올 때면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가 가진 이상으로 날 포장해 주던 기사도 있으니까. 반대로 왜곡하는 것도 있겠지. 그러면 중간이잖나.”
하지만 이병헌은 연인 이민정과의 연애담을 공개하는 데는 망설이지 않았다. 얼마 전 이민정이 손수 싼 도시락을 갖고 이병헌의 촬영장을 찾아왔다는 일화를 먼저 공개한 것도 이병헌이다. 새 영화 촬영 준비로 식단 조절을 하는 이병헌을 위해 이민정이 선택한 메뉴는 닭 가슴살. “요리는 잘하는 편”이라고 은근히 연인 자랑을 꺼내더니 “현명하다”고도 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이병헌은 요즘 부쩍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병헌과 가까운 매니저들과 후배 연기자, 지인들까지 차례로 결혼했다. 게다가 톱스타 커플의 공개 연인 선언이 곧 결혼으로 이어졌던 장동건·고소영, 권상우·손태영 부부의 ‘선례’를 고려할 때 이병헌 커플 역시 팬들의 기대를 더한다. 이에 대한 이병헌의 반응. “공개도 했는데 좋은 일이 있으면 알려야겠죠.”
# ‘월드스타 이병헌’ 한국보다 미국?
이병헌은 대중과 친근한 배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먼 곳’에 있는 스타의 이미지도 강하다. 일본에서 ‘뵨사마’로 불리는 한류스타인 데다 아시아를 넘어 미국 시장까지 진출한 뒤 나온 반응이다. 이병헌의 미국 진출은 일회로 끝나지 않았다. 2009년 <지 아이 조> 출연을 시작으로 2편에도 참여해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성과는 이어졌다. 브루스 윌리스와 주연을 맡은 <레드2>까지 캐스팅됐다. 이병헌의 활동 폭이 넓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팬들은 그를 멀리 느끼며 거리감을 키우고 있다. 정작 이병헌은 이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배우가 한 작품 때문에 멀게 느껴지거나 가깝게 느껴진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하기 어렵다. 하긴 미국으로 <지 아이 조> 찍으러 처음 갈 때 일본 팬들이 ‘이제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는 편지를 많이 보내왔다. 멀어지긴 뭘…. 지금도 미국에서 아무도 못 알아보는데(웃음).”
‘월드스타 이병헌 씨’라는 호칭과 ‘이제는 자리 잡았잖아요’라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이병헌은 “나에게 맞지 않은 표현”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병헌은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정말 아무도 못 알아본다니까. 하하.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촬영 몇 번 하다가 감독도 잘리고 배우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나처럼 아시아 배우들 입장은 더 하다. 나도 선택받는 위치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그 때는 두 팔 걷어붙이겠지. 지금은 마치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헤집고 걸어가는 중이라고 할까. ‘한 번 해보자’고, 어디까지 갈지.”
이병헌은 9월 10일 캐나다 몬트리올로 출국한다.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캐서린 제타 존스 등과 호흡을 맞추는 영화 <레드2> 촬영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촬영은 몬트리올을 거쳐 영국 런던으로 이어진다. 12월 말까지 <레드2> 촬영을 소화하는 이병헌은 내년 3월에는 주연을 맡은 또 다른 미국영화 <지 아이 조2>를 들고 전 세계 영화 팬과 만난다. <레드2> 개봉은 내년 8월이다. 적어도 1년간 계획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는 셈이다.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고 경험이 늘수록 노하우도 쌓인다. 이병헌은 경험자로서 내놓을 수 있는 현실적인 평가에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무리 잘해도 문화적인 정서에 흠뻑 젖어 경쟁하는 건 힘에 부친다. 연기력의 문제를 떠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오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지금의 나는 중간 정도. 긍정·부정의 상태가 아니라 딱 중간에 놓인 상황이다.”
하지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표도 생겼다. 이병헌은 거창하지 않지만 작은 꿈은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는 (미국에서) 한국 배우로 정점을 찍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가 먼저 부딪히다 보면 다음 세대에는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한국 배우가 나오지 않을까. 분명히 가능한 일이다. 좀 멋진 말 같은데? 하하.”
미국 시장에서의 활동 폭이 빨라지고 있지만 이병헌은 해외 활동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건 한국에서의 영화라고 강조했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으니까 사람들은 ‘거의 모든 직업을 다 연기해보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웬걸, 연기했던 직업은 거의 비슷했다. 심지어 나는 사극도 <광해>가 처음이다. 20년 만에 사극을 처음 한 것처럼 아직도 못한 게 많고, 해볼 게 많다.”
▲ 지난 8월 13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열린 <광해> 제작보고회에서 감독과 주요 출연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추창민 감독, 한효주, 이병헌, 류승룡, 김인권.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그런 의미에서 이병헌은 내심 <광해>에 기대를 걸고 있다. ‘흥행 결과가 기대되느냐’고 묻자 이병헌은 주저 없이 “당연하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광해>는 흥행 여부를 떠나 이병헌이 대중에게 다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은 영화다. 처음 도전한 사극, 1인2역, 역사와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 등 다양한 흥밋거리가 <광해>를 채우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건 이병헌의 노련한 연기다. 정치적 소용돌이가 강한 조선시대가 배경인데도 이야기는 진지하고도 코믹하다.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상황은 광해군과 밑바닥 인생을 사는 하선, 1인2역을 소화한 이병헌을 통해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이병헌은 “나는 아직도 활짝 열려 있다”고 했다. “며칠 전 밤에 일반 시사회에 몰래 들어가서 관객 반응을 지켜봤다. 300석이 넘는 극장이었는데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도 없고, 막판에 눈물을 닦는 관객도 있더라. 가슴이 떨리기도 했고, 좋은 기운도 받았다. 시사회 분위기를 보며 자신감도 얻었다. 그동안 작품은 평론가가 좋아하거나 적은 관객이 더 좋아했다. 물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빼고. 상업영화로 많은 관객이 좋아한 영화는 많지 않았다. <광해>는 메시지가 확실하고, 그만큼 재미도 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끊임없이 출연작을 내놓고 있는 이병헌이지만 가족과의 시간은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이자 오빠이기도 하다. 이병헌은 올해 초 동생인 이은희의 결혼식을 손수 챙겼고, 돌아가신 부친 대신 동생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기도 했다.
경기도 광주의 집에서 함께 사는 어머니께도 살가운 아들이다. 2년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이병헌은 자신이 먹는 커피는 모두 직접 내려 먹는다고 했다. 커피 애호가인 어머니에게도 반드시 직접 내린 커피를 드린다.
“어머니가 커피를 정말 좋아하시는데 30년 동안 인스턴트 커피만 드셨다. 바리스타 자격증 따고 나서는 커피를 직접 내려 드린다. 맛은…(웃음). 어머니 입맛에는 너무 쓴지 자꾸만 설탕을 찾는다. 그 커피는 설탕을 넣어 마시면 안 되는데. 하하.”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고소장 접수 후 ‘소강상태’
▲ 강병규 |
이병헌의 법률대리인인 에이펙스는 “강병규는 이병헌의 열애 사실을 공개한 8월 19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병헌을 ‘이XX’라는 입에 담지 못할 단어로 지칭하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며 “또 ‘조만간 임신 소식이 들릴 것’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이병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이에 강병규는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맞고소 등 법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지만 트위터를 통해 떳떳하다는 입장을 반복해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병헌 측은 명예훼손 고소장을 접수한 이후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병헌의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입장을 밝히거나 관련 사안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