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재계가 고발지침 개정안에 대해 크게 반발했고, 최근 공정위가 개정안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법령을 집행하는 행정기관이 법률해석에 관한 지침을 개정하면서 각계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다만,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인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마치 총수 일가를 대변하는 단체의 반발을 반영해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이번 고발지침 개정안은 따지고 보면, 규제 강화라기보다는 법령의 미비를 보완하는 시도다. 그마저도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재계의 반발에 못 이겨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매우 안타깝다.
일감 몰아주기 근절은 법령과 관계없이 누구보다도 한경협 같은 단체들이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슈다. 그러나 주요 재계 단체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지배주주나 총수 일가만을 대변하면서 일감 몰아주기나 총수 일가에 대한 규제는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조성이나 자본시장 활성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감 몰아주기의 최종 수혜자는 지배주주나 총수 일가이지만 이들이 직접 계열회사와 거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많이 소유한 회사에서 일감 몰아주기로 큰 이익을 얻고,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직접적인 거래 주체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한다. 정작 최종 수혜자인 총수 일가나 지배주주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제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치명적인 입법 공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회사에 부과되는 과징금 역시 일감 몰아주기를 실효성 있게 근절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 등이 일감 몰아주기를 ‘지시’하거나, ‘관여’한 경우 시정조치나 형사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시정조치는 제재 효과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총수 일가에 대한 유의미한 규제수단은 사실상 형사처벌이 유일하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형사처벌이 과도하다는 지적은 이러한 규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다분히 이상적인 주장이다. 형사처벌만이 효과적인 규제수단이라고 할 수는 없고, 처벌 만능주의가 결코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입법 공백을 비롯해 행정적 제재가 충분히 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형사적 제재마저 시도하지 않는다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현재 고발지침은 일감 몰아주기 거래를 직접적으로 이행한 임직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고발 기준을 정하고 있는 반면, 지시하거나 관여한 총수 일가에 대해서는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한 자’라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기준을 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형사 고발도 과징금과 마찬가지로 일감 몰아주기 거래의 직접적인 주체인 회사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정작 최종 수혜자인 총수 일가는 형사적 제재마저도 피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불완전하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규제 환경은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구조적인 저평가를 강화하는 데 일조할 뿐이다.
공정위가 이미 개정안을 재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만큼 기존 안을 고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위는 현재 법령 체계 아래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균형 잡힌 지침 개정안을 다시금 고민할 필요가 있다. 태광그룹 사건에서 대법원은 직접적인 지시와 구분되는 ‘관여’ 행위를 상대적으로 넓게 인정하는 법리를 제시했다.
공정위가 이러한 법리를 제대로 반영하고자 한다면 고발지침보다 오히려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 물론,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미 일감 몰아주기 관여에 대한 법률해석이 확정적으로 내려졌지만, 법을 집행하는 공정위 역시 지침을 통해 이를 명확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고발지침의 경우 총수 일가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되, 회사나 임직원에 대해서만 형사제재가 시도되는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나 임직원에 대한 고발 기준과 일관되면서도 지시나 관여 행위에 부합하는 위법성 평가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