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씨는 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과 사기 등 혐의를 받는 재판에서도 '2020년 3월 결별'을 거듭 강조했다. 신 씨 변호인은 "2019년 말에 이르러 결제 사업에 블록체인을 활용하고자 하는 신현성과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에 몰두하는 권도형은 바라보는 방향과 경영 철학이 워낙 달랐다. 이런 이유로 신현성은 권도형과 사업 분리를 결정했다. 사무실도 사업도 직원도 지분도 모두 정리했다. 2020년 3월 이후 신현성과 권도형은 완전히 독자적인 길로 각각의 사업을 추진했다"고 지난 10월 30일 1차 공판기일에서 말했다.
신 씨와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A 씨도 2020년 3월 결별을 주요하게 언급했다. A 씨 변호인은 "A 씨는 2018년 3월 테라에 입사해 2020년 3월 차이코퍼레이션으로 이직했다"며 "미러 프로토콜이나 앵커 프로토콜은 A 씨가 테라 업무에서 손을 떼고 차이코퍼레이션으로 이직한 후 테라에서 독자적으로 출시한 서비스다. A 씨는 이에 관여했거나 공모할 여지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미러 프로토콜은 테라를 담보로 미국 주식 가격을 추종하는 자산을 발행하는 서비스로 2020년 12월 출시됐다. 앵커 프로토콜은 테라를 예치하면 연 20%에 가까운 이자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2021년 3월 출시됐다.
검찰은 테라 프로젝트 팀이 미러 프로토콜과 앵커 프로토콜을 허위 홍보하며 거래량을 조작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미러 프로토콜 알고리즘이 실제로 구현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앵커 프로토콜은 신규 투자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지 않는 한 유지될 수 없는 '폰지 사기' 구조였다며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신 씨와 A 씨가 2020년 3월 테라폼랩스 한국법인 임원에서 물러난 건 사실이다. 테라폼랩스 한국법인과 차이코퍼레이션 법인등기부를 보면 2020년 3월 2일 신 씨는 테라폼랩스 한국법인 공동대표이사를 사임했다. 같은 날 A 씨는 테라폼랩스 감사를 사임하고 차이코퍼레이션 감사에 취임했다.
두 회사 임원진의 '교통정리'도 이때 시작됐다. 2020년 3월 2일 테라 프로젝트 기술개발 핵심 인력인 B 씨는 차이코퍼레이션 사내이사를 사임하고 테라폼랩스 한국법인 감사로 취임했다. B 씨 역시 신 씨, A 씨와 함께 재판 받고 있다.
임원진 교통정리는 2020년 말까지 이어졌다. 2020년 9월 16일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한창준 씨는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이사를 사임했다. 한 씨는 권 대표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한 씨는 권 대표와 함께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가 지난 3월 23일 몬테네그로 공항에서 체포됐다.
신 씨는 2020년 9월 16일 한 씨 뒤를 이어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후 신 씨는 2020년 12월 11일 테라폼랩스 관계사 플렉시코퍼레이션 대표이사를 사임했다. A 씨도 같은 날 플렉시코퍼레이션 감사에서 물러났다. 이후 플렉시코퍼레이션 등기임원으로는 권 씨만 남았다.
그런데 일요신문은 테라폼랩스와 차이코퍼레이션이 이 같은 임원진 교통정리가 끝난 이후인 2021년에도 하나의 회사처럼 움직인 정황을 포착했다.
테라 프로젝트에서 대관 등을 담당했던 C 씨는 2018년 9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차이코퍼레이션 감사를 맡았다. 이후 2019년 6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차이코퍼레이션 사내이사였다. 신 씨 측의 '2020년 3월 결별' 주장에 따르면 C 씨 역시 2020년 3월부터 테라폼랩스에서 손을 뗀 인물이다.
하지만 C 씨는 2021년 4월 부산시청에서 테라 사업총괄 직함으로 '지역화폐 스테이블코인화의 특장점'을 발표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부산미래혁신위원회가 연 '블록체인 특구, 혁신도시 부산' 강연회에서다.
C 씨는 강연회에서 자신을 테라 사업총괄 이사로 소개했다. 강연회 한 달 전인 2021년 3월 출시된 앵커 프로토콜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에 테라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다.
C 씨의 당시 발표 내용은 신 씨와 A 씨가 '2020년 3월 결별' 이후 출시된 앵커 프로토콜과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주장한 것과 대비된다. 신 씨는 재판에서 앵커 프로토콜은 지속 불가능한 상품이었다며 루나 폭락 원인으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C 씨는 2021년 4월 강연에서 "저희는 2018년 설립돼서 3년 정도 금융 블록체인 플랫폼을 출시해 운영하고 있다"며 "앵커라는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를 출시했다. 저희가 지역화폐 개발을 하게 될 경우 앵커라는 서비스가 같이 맞물리면 지역화폐 충전금에 이자가 붙고 가맹점 정산금이 올라가는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지역화폐를 계속 사용해야 할 이유가 발생하고 그렇게 되면 지역화폐 규모가 커지고 그 커진 지역화폐는 부산시 내에서 흘러가기 때문에 실질적인 GDP(국내총생산)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강연회에 참석했던 부산미래혁신위 관계자는 C 씨를 테라 COO(최고운영책임자)로 기억했다. 이 관계자는 "권도형은 싱가포르에 있었다. C 씨가 발표를 했다"며 "(테라 측에선) 테라를 실물 경제와 연결해서 실질적으로 거래가 될 수 있는 코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테라 측에서 저희한테 제안해서 검토한 적은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안 하기로 했다"고 11월 22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말했다. 이어 "차이코퍼레이션과 테라폼랩스는 같은 회사였다"며 "법인은 따로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자금 등을 봤을 땐 다른 회사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C 씨는 11월 22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통화가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이후 메시지로 질문을 남겼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신 씨 변호인은 "C 씨는 테라 직원에게 도움 요청을 받아 개인적으로 테라를 자문했다. 차이코퍼레이션이 조직적으로 테라를 도왔다거나 조직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아울러 "C 씨는 그 이후 2021년 3분기 차이코퍼레이션을 퇴사했다"며 "C 씨 외 개인적 자문을 했던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권도형 국내 송환 여전히 오리무중
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신현성 씨 등 8인은 지난 10월 30일 1차 공판기일에서 각자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들은 루나가 증권이라는 검찰 주장을 반박하는 한편 테라·루나 알고리즘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며 책임 소재에 선을 그었다. 달리 말하면 테라폼랩스 대표 권도형 씨에게 책임을 미뤘다.
검찰이 테라 기술개발 핵심 인력으로 지목한 피고인들조차 "웹 서비스 개발만 담당했을 뿐 블록체인 개발에 관여하지 않았다" "코드 에러나 버그 수정 업무만을 했다"고 주장했다.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인 신현성 씨 변호인은 "테라 알고리즘 설계는 권도형을 비롯한 백서 작성자들이 담당한 것이라 신현성이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결국 권 씨가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신 씨 등 8인의 혐의 입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테라폼랩스 대표 권도형 씨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루나 폭락 사태 이전부터 해외에 머물렀던 권 씨는 지난 3월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현지 경찰에게 붙잡혔다.
권 씨가 언제 국내로 송환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몬테네그로에서 사법 절차가 끝나야 한다.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은 지난 6월 19일 권 대표에게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권 씨는 항소했지만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지난 11월 16일 권 씨 항소를 기각했다.
권 씨 신병은 몬테네그로에서도 관심거리다. 권 씨는 몬테네그로 유력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현지 특별검찰청 조사도 받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9월 포드고리차 고등법원 창고 내부에 외부와 연결된 땅굴이 발견됐을 때 권 씨 노트북이 도난당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권 씨가 몬테네그로에서 사법 절차가 끝난 이후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보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 씨는 미국에서 지난 3월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만약 권 씨가 미국으로 보내진다면 미국에서 먼저 재판을 받는다.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형기를 모두 채운 뒤 한국에서 다시 재판받게 된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