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들한테 호수비로 고맙단 말 많이 들어…20홈런 달성 못 해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첫해 투수들의 빠른 공에 적응하지 못해 117경기 타율 0.202 54안타 8홈런 34타점을 기록했는데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하면서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김하성은 2022년 출전 기회가 늘어나면서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150경기 타율 0.251 130안타 11홈런 59타점을, 2023시즌에는 152경기 타율 0.260 140안타 17홈런 60타점을 올리며 안정감을 되찾았다.
귀국 후 다양한 행사를 소화하면서도 개인 훈련을 챙기고 있는 김하성을 11월 21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MLB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 수상을 축하한다. 누구보다 샌디에이고 동료 선수들로부터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축하를 보낸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번 일을 통해 야구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보면 골드글러브 수상자나 플래티넘(해당 시즌 골드글러브 수상자 중 최고의 수비를 펼친 선수를 아메리칸리그, 내셔널리그에서 한 명씩 팬 투표를 통해 뽑는 방식) 수상자들은 스포츠 용품 회사이자 골드글러브 주관사인 롤링스사로부터 특별 패치가 부착된 글러브를 받는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매니 마차도가 그 글러브를 갖고 있어 내심 부러워했다. 그 글러브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글러브라 언젠가는 나도 골드글러브를 수상해 골드 패치를 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비로소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올 시즌 정말 다양한 경기에서 멋진 수비 장면들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경기의 어떤 장면을 최고의 수비로 꼽고 싶나.
“(7월 5일 한국시간) LA 에인절스와의 홈경기에서 4회초 2사 1루에서 마이크 무스타커스가 친 강습 타구가 1루수 제이크 크로넨워스의 글러브를 맞고 튕겨나갔는데 그 타구를 쫓아가서 맨손으로 공을 막고 1루로 송구해 타자를 아웃시켰다. 그리고 9회초 2사 만루에서 테일러 워드가 친 타구를 쫓아가 어려운 바운드로 공을 잡고 송구해 아웃시켰는데 당시 경기가 8-5, 3점 차로 쫓긴 상황이라 실점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팀 승리 후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조시 헤이더가 크게 고마워했다.”
―올 시즌 김하성 선수에게 수비 도움을 받아 고마움을 표했던 투수들이 많을 것 같다.
“한국 같았으면 투수들한테 가서 밥이라도 사라고 했을 텐데…(웃음). 칭찬을 담은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올 시즌 17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홈런이 어떤 홈런인가.
“아무래도 4월 초 있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의 끝내기 홈런이 아닐까 싶다. 그날(4월 4일) 3-4로 뒤집힌 가운데 9회말 공격이 시작됐고, 멜빈 감독이 (대타로) 데이비드 달을 내세웠는데 달이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동점 홈런을 터트렸다. 이후 내가 타석에 들어서서 역전 솔로포를 날린 것이다. 데이비드 달의 동점 홈런이 나의 끝내기 홈런으로 묻힌 게 다소 미안했지만 그 홈런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잊을 수 없는 홈런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당시 김하성의 끝내기 홈런은 샌디에이고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8번 타자와 9번 타자의 연속 홈런으로 끝내기 승리를 거둔 것이고, 구단 역사상 9번 타자로 선발 출전한 선수의 첫 끝내기 홈런이라 MLB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2023시즌 자신의 활약을 점수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고 싶나.
“80점 정도다.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완주했는데 후반기에 무너진 게 아쉽다. 하지만 그 아쉬움조차도 나를 성장시키는 발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큰 부상은 아니었어도 경기 출전을 하지 못했던 작은 부상들이 있었다.
“다른 것보다 뉴욕 메츠전(7월 8일)에서 물통을 잘못 걷어차는 바람에 부상을 당한 게 뼈아팠다. 7회말 3-3 동점 상황에서 2루타를 만들었는데 3루까지 내달리다가 아웃이 되고 말았다(이후 후안 소토의 2루타가 나와 아쉬움이 더 컸고, 팀은 연장 끝에 5-7로 패했다). 내 플레이가 경기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에 내 자신한테 너무 화가 났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데 구석에 물통이 보였다. 빈 물통인 줄 알고 걷어찼는데 물이 가득 들어있는 물통이었던 것이다. 순간 발가락 부분에 큰 통증을 느꼈다. 아직도 통증이 남아 있을 정도다. 너무 바보 같은 행동을 했고 이후 크게 후회했다.”
―9월 중순에는 복부 통증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어떤 상태였던 건가.
“걷지도 못할 정도의 복부 통증이 있었다. 그 통증으로 밥도 못 먹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여러 차례 검사를 받았는데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병명을 모르니 약을 처방받기 어려웠다. 결국 휴식일 포함해 4, 5일 정도 쉬면서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그로 인해 9월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진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8월까진 거의 쉼 없이 달렸다. 리드오프로 경기에 나서며 수비에서 슬라이딩도 많이 했고, 포지션도 바꿔가면서 경기에 나선 상황이라 멜빈 감독님이 미안해하실 정도였다. 그러다 9월 복부 통증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경기 출전 자체는 내게 큰 행복을 안겨줬다. 입단 첫 해에는 얼마나 그런 기회를 갈망했었나. 그걸 잊지 않고 버텼다.”
―17개의 홈런에서 3개를 더 했다면 MLB 진출 처음으로 ‘20(홈런)-20(도루)’를 달성했을 텐데 38개의 도루를 성공해 놓고, 홈런에서 20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정말 아쉽다. 8월에 홈런 17개를 기록한 터라 9월에 남은 3개 정도는 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 그땐 너무 안 좋아서 휴식일에 쉬지 않고 타격 연습을 했다. 그 정도로 훈련에 몰입했는데도 안 풀렸다. 그래서 야구가 어려운 것 같다. 후회는 없다. 연습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던 시간들이었다.”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에서 MLB를 대표하는 내야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그의 허슬 플레이에 매료된 밥 멜빈 감독의 믿음 때문이었다. 멜빈 감독은 김하성을 포지션을 바꿔가면서 꾸준히 기용했고, 김하성은 감독의 신뢰에 실력으로 보답했다. 그런데 밥 멜빈 감독은 올시즌 성적 부진과 A.J. 프렐러 단장과의 불화설이 겹치면서 소문으로 나돌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직을 맡아 팀을 떠났다.
―밥 멜빈 감독은 김하성 선수한테 어떤 지도자였나.
“최고의 감독님이었다. 메이저리거 김하성을 만들어주셨고, 나의 커리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지도자다. 다른 팀으로 가신 건 크게 아쉽지만 서로 잘되길 빌면서 응원하고 싶다.”
―2024시즌을 마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데 이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트레이드도 FA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다들 2024시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나한테 안 중요했던 시즌이 없었다. 매 시즌 다 중요했고, 절실했다. 그래서 경기 외적인 걸 신경 쓰기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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