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29년 한 풀어 떠들썩…롯데는 31년, 한화는 24년간 우승 트로피 못 들어
이제 LG는 내친 김에 올해 우승을 넘어 '왕조' 구축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다. 올 시즌 팀 평균자책점과 팀 타율 모두 1위에 올랐을 정도로 투타 밸런스가 탄탄한 데다 전력 유출도 거의 없어 자신감이 넘친다. 우승 전후로 이어진 모기업의 대대적인 지원 덕에 동기부여도 충분히 됐다. 그러나 LG의 우승 페스티벌을 지켜보는 다른 구단들 역시 1년 뒤 왕좌를 탈환하겠다는 각오를 더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10년 넘게 우승하지 못한 구단들도 그렇고, 최근 수년간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서야 했던 구단들도 마찬가지다. 올겨울 모든 구단이 '마지막 우승'의 기억을 떠올리며 재도약 채비에 나선다.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는 KBO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구단이다. 1992년 창단 후 두 번째 우승을 끝으로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올해도 7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하면서 롯데가 우승하지 못한 기간은 31년(1993~2023년)으로 늘었다. 지난해까지 28년(1995~2022년)으로 바짝 뒤를 쫓아오던 LG가 올해 이 기록에 마침표를 찍어 롯데의 단독 선두 자리는 더 외로워졌다.
롯데는 프로야구 출범 3년 째인 1984년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OB(현 두산) 베어스와 해태(현 KIA) 타이거즈에 이은 역대 세 번째 우승팀으로 이름을 남겼다. '불멸의 에이스' 고(故) 최동원이 역사상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4승 신화를 쓰면서 롯데를 첫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 후 다음 우승까지는 8년이 더 걸렸다. 1992년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친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1위 빙그레(현 한화) 이글스와 맞섰다. 빙그레는 당시 송진우·한용덕·이상군·정민철 등 막강한 투수진을 자랑했고, 정규시즌에도 롯데 상대 전적 13승 5패로 앞선 강팀이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엔 한 번 분위기를 타면 쉽게 꺾이지 않는 롯데의 기세가 더 강했다. 입단 첫해 18승을 올려 신인왕을 예약한 고졸 신인 염종석과 간판 원투펀치 윤학길과 박동희의 위력이 만만치 않았고, 타선에서도 박정태·전준호·김응국·김민호 등이 맹활약했다.
원정지 대전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승리한 롯데는 3차전에서 9회 초 역전을 허용해 4-5로 져 고비를 맞았다. 체력적으로 열세인 롯데 입장에선 시리즈가 길어질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4차전을 6-5로 마쳐 3승 1패로 우위를 점했고, 5차전에선 6차전 선발로 내정했던 박동희까지 4회 마운드에 올리는 초강수를 두면서 마침내 우승에 성공했다.
다만 롯데는 그 후 오랜 암흑기에 빠졌다. 1999년을 끝으로 한국시리즈 무대조차 밟아보지 못했다. 올해도 시즌 초반 선두권을 달리고 한때 1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부산에 '야구 붐'을 일으켰지만, 중반 이후 급격히 순위가 하락하면서 가을야구 티켓을 얻지 못했다. 롯데는 결국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두산에서 세 차례 우승과 일곱 차례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던 김태형 전 두산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모셔' 왔다. 2024년에는 롯데도 LG처럼 묵은 한을 털고 '21세기 첫 우승'을 기록하겠다는 의지다. 롯데가 언젠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날, 올해 LG의 우승 이상으로 거대한 열풍이 일어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화 이글스
한때는 한화가 당연한 듯 포스트시즌 무대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전신인 빙그레 시절에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한 리그 최강 팀 중 하나로 군림했다. 빙그레는 창단 3년 만인 1988년 한국시리즈에 오르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1992년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 가운데 세 번이나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혔던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1999년에는 마침내 우승의 한도 풀었다. 이상군, 한용덕,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이 버틴 마운드에 장종훈, 강석천, 송지만, 제이 데비이스가 포진한 타선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4승 1패로 롯데를 꺾고 창단 13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허무하게 패권을 내줬던 아픔을 7년 만에 설욕했다. 한화 역사에 아직까지 유일한 우승으로 남아 있는 영광의 시즌이다.
특히 구대성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치른 5경기에 모두 등판해 MVP에 올랐다. 성적은 1승 3세이브, 평균자책점 0.93.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투수도 당연히 구대성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플레이오프부터 이어져 온 투지와 희생정신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해 포스트시즌 구대성의 성적은 총 2승 5세이브였다.
한화 역시 그 후 다시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 24년 동안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해 롯데와 LG에 이은 3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KBO리그 역사에서 20년 이상 우승하지 못한 팀은 그 세 팀뿐이다. 한화의 우승 도전은 2006년 삼성과 맞붙은 한국시리즈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데뷔하자마자 리그를 휩쓴 '슈퍼 루키' 류현진과 강력한 중심 타자 김태균·이범호를 앞세워 왕좌를 노렸지만, 2승 4패로 물러나야 했다.
이후 시작된 한화의 '암흑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2008년부터 올해까지 16번의 시즌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은 한용덕 감독 부임 첫해인 2018년 정규시즌 3위에 오른 게 유일하다. 그해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1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불발이라는 불명예 역사를 남길 뻔했다. 한화는 최근 외부 자유계약선수(FA) 영입과 외국인 선수 계약에 공을 들이면서 다시 상위권 도약 채비를 하고 있다. 하위권에 머무는 동안 좋은 유망주들을 여럿 영입하면서 조금씩 변화의 기틀을 다졌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 에이스와 4번 타자로 활약했던 문동주와 노시환도 그 희망의 중심에 있다.
#삼성 라이온즈
삼성은 시기별로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린 팀이다. 삼성은 1985년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을 차지해 역대 유일하게 한국시리즈를 치르지 않고 왕좌에 올랐다. 그런데 그 후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LG를 꺾고 우승하기까지 16년(1986~2001년)을 기다려야 했다. 롯데, LG, 한화 다음으로 긴 기간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왕조'를 구축했다.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를 2연패 했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전무후무한 4년 연속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의 역사를 썼다. 그 대기록의 끝자락인 2014년이 삼성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당시 삼성의 상대는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였다. 2차전까지 2승 2패로 팽팽하게 맞섰다. 외국인 에이스 릭 밴덴헐크(삼성)과 앤디 밴 헤켄(넥센)아 맞선 1차전은 넥센이 4-2로 이겼지만, 2차전은 야마이코 나바로와 이승엽이 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한 삼성이 7-1로 완승했다. 또 3차전은 박한이의 9회 결승 2점포를 앞세운 삼성이 3-1로 가져갔지만, 4차전은 일찌감치 화력이 폭발한 넥센이 9-3으로 이겼다.
삼성은 시리즈의 향방이 걸린 5차전에서 9회 초까지 0-1로 뒤졌다. 9회말엔 넥센 마무리 투수 손승락이 올라왔고, 1사 후 외국인 타자 나바로가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때리면서 패색이 짙어 보였다. 그러나 그때 당시 현역 최고 유격수였던 넥센 강정호가 이 타구를 잡지 못하고 뒤로 빠트리는 결정적 실책을 범했다. 동시에 경기 흐름이 달라졌다. 2사 후 최태인이 안타를 때려 1·3루가 됐고, 최형우가 당황한 손승락을 상대로 우익선상 2루타를 날렸다. 주자 둘이 모두 홈을 밟는 역전 끝내기 안타였다. 그렇게 5차전을 잡은 삼성은 6차전도 대승으로 마쳐 4년 연속 왕좌에 올랐다.
다만 2015년엔 정규시즌을 1위로 마치고도 한국시리즈에서 3위 팀 두산에 패권을 내줘 5년 연속 통합 우승 기록은 남기지 못했다. 팀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었던 주축 투수 세 명이 해외 원정 도박 파문에 연루돼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그 여파가 팀 전력과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쳤다. 삼성은 그 후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살패했다. 2021년엔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해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2022년과 올해도 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숨을 골랐다. 삼성은 올 시즌이 끝난 뒤 프런트 출신인 홍준학 전 단장을 야구인 출신인 이종열 단장으로 교체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외에도 키움은 2008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재창단한 뒤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해 16년째 우승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삼성이 남긴 16년 연속 '무관' 기록과 같은 역대 공동 4위 기록이다. 2014년 첫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패한 뒤 2019년엔 두 번째 한국시리즈에서 두산과 대결했지만 1승도 못하고 4연패로 물러났다.
지난 시즌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친 뒤 준플레이오프에서 KT 위즈, 플레이오프에서 LG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정규시즌 우승팀 SSG 랜더스와 4차전까지 2승 2패로 맞섰다. 그러나 5차전에서 9회 말 김강민에게 끝내기 3점 홈런을 얻어 맞으면서 흐름이 SSG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2승 4패로 도전을 멈췄다. 키움이 내년 시즌에도 우승하지 못하면 17년째 우승 실패 기록을 이어가게 돼 삼성을 제치고 단독 4위가 된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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