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타살·방화 의심 근거 없어” 밝혔지만…자화장 동기 불분명, 이틀 전 향후 10년 계획 밝혀 ‘아리송’
#두 장의 메모 남기고…
경기남부경찰청과 안성경찰서에 따르면 자승 스님은 11월 29일 오후 3시 11분쯤 검은색 승용차로 칠장사를 찾았다. 운전은 직접 했고, 동승자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칠장사 주지인 지강 스님은 자승 스님을 맞이하고 대화를 잠시 나눈 뒤, 요사채(승려들이 기거하는 장소) 문을 열어 주고 사찰 내 다른 장소로 떠났다. 이후 자승 스님은 오후 4시 24분쯤 차에서 가연 물질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소재 통 2개를 들고 요사채로 들어갔다.
1분 만에 다시 밖으로 나온 자승 스님은 요사채 바로 옆에 주차돼 있던 차를 뒤편으로 이동 주차한 뒤, 1시간 넘게 요사채 안에 머물렀다. 화재가 있기 7분여 전인 오후 6시 36분쯤 요사채 문을 열고 잠시 밖을 내다본 것이 마지막으로 CCTV에 담긴 모습이었다. 이후 오후 6시 43분쯤 내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자승 스님은 화재 진압 중 요사채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세수 69세. 법랍 44년.
화재 현장 인근에 주차된 자승 스님의 차량 대시보드에는 유서 형식의 메모 두 장이 발견됐다. 첫 번째 메모에는 지강 스님을 향해 “이곳에서 세연을 끝내게 되어 민폐가 많소. 이 건물은 상좌(스님들을 높이는 말)들이 복원할 것”이라며 “미안하고 고맙소. 부처님 법 전합시다”라고 적었다. 두 번째 메모에는 경찰에게 “CCTV에 다 녹화돼있다.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한다”고 적었다. 경찰은 필적감정을 통해 두 메모의 진위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과, 안성경찰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 소속 감식인원 17명은 11월 30일 오전 11시부터 칠장사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에 나섰다. 합동감식팀은 불이 시작된 지점과 연소 패턴 등 화재 원인 조사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자승 스님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
자승 스님은 제33·34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 조계종단의 대표 행정승으로 꼽힌다. 2009년 10월 만 55세 나이로 역대 최대 득표를 한 총무원장으로 선출됐고, 2013년 재선에 성공했다. 1962년 통합종단조계종 출범 후 청담, 의현 스님이 총무원장을 연임했지만, 4년 임기 두 번을 모두 채운 총무원장은 자승 스님이 유일하다.
퇴임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종단 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자승 스님은 퇴임 후 2021년에는 학교법인 동국대 건학위원회의 고문이자 총재를 맡아 조계종 내 가장 큰 권력 두 개를 모두 잡은 ‘조계종 실세’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 강남구 봉은사 회주와 ‘상원결사’ 회주, 은정재단 이사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던 터라 종단 내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하다.
칠장사 앞에서 만난 한 불교 신도는 “자승 스님은 불교계 큰 어른인데, 이렇게 가시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계종 “올바른 길 인도 위해 소신공양”
대한불교조계종은 자승 스님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분신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겸 대변인인 우봉 스님은 11월 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자승 대종사는 종단의 안정과 전법도생(부처님 말씀을 전해 중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을 발원하며 소신공양, 자화장(스스로 화장)을 하심으로써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밝혔다.
이어 자승 스님은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송(스님이 입적에 앞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남기는 말이나 글)을 남겼다고 조계종은 전했다.
분향소 설치 후 여야 정치권 및 정부 고위 인사들의 조문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김영주 국회 부의장, 국회 불자 모임인 정각회 회장인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그리고 현직 장관 가운데 유일한 불교 신자로 꼽히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등이 자승 스님의 분향소를 찾았다.
#‘동기가 없는데…’ 음모론 솔솔
한편, 타살설이 제기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11월 30일 “일체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자승 스님의 사망 원인 및 과정에 대해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곧바로 “CCTV 영상 화질이 높아 자승 스님의 행적이 비교적 선명하게 담겼다”며 “외부인의 침입 흔적 등 특이사항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타살이나 방화 등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사고와 관련, 자승 스님의 타살 가능성 등 근거 없는 의혹이 확산하자 수사 과정에서 파악된 일부 내용을 언론에 알리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승 스님의 입적과 관련한 의문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SNS) 등에선 타살설을 비롯한 여러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다. 우선 입적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다.
자승 스님은 입적하기 이틀 전인 11월 27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열린 불교계 언론사 간담회에서 “앞으로 10년간은 대학생 전법에 모든 열정을 쏟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향후 행보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어 일각에서 거세게 반발하는 동국대와 중앙승가대의 통합도 강조했다. 자승 스님은 10월 31일 열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간담회에서도 “달라이 라마를 초청해 20만 청년불자가 동참하는 대법회를 서울에서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불교계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던 자승 스님이 돌연 스스로 입적을 결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별도로 현장 점검에 나선 것을 두고도 의혹이 일었다. 사단법인 평화의길 관계자는 “자승 스님이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 것은 알겠는데, 국정원이 왔다갔다하면서 사건을 조사할 상황인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손수호 변호사 역시 12월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경찰 수사와 별도로 국정원이 현장 점검을 했는데, 왜 나왔느냐고 했더니 경찰 수사와 별도로 테러·안보 위해 여부를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복수의 여권 핵심 인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자승 스님이 입적한 사건을 보고 받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확인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올해 부처님오신날 등 서울 봉은사를 방문할 때마다 자승 스님과 차담을 갖는 등 교류해왔다. 부인 김건희 여사도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2월과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4월에 단독 일정으로 봉은사를 찾아 자승 스님과 만나는 등 인연을 이어왔다.
경찰은 12월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감정 결과를 토대로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법구가 자승 스님임을 확인하면서 “화재사로 추정된다”는 1차 부검 소견을 전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화재 경위는 국과수 정밀 감정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후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양휴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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