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순위 보증금 속여” 피해자들 파산법원에 이의제기…첫째 딸 ‘파산 말해줘야 할 이유 없어’ 적반하장
일가족 파산으로 인해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서울 도봉구 방학동 깡통전세 피해자 A 씨 말이다. 최근 서울 도봉구 쌍문동, 방학동과 은평구 응암동, 수색동, 역촌동에서 일가족이 엮인 깡통전세 사건이 일어났다.
현재까지 깡통전세 사건에 연루됐다고 파악된 가족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80세에 가까운 고령의 어머니 S 씨, 50대 첫째 딸 K 씨와 그의 남편 J 씨, 그리고 둘째 딸 K 씨와 그 남편 L 씨 등 총 5명이다. 현재 어머니, 첫째 딸, 첫째 딸 남편, 둘째 딸은 파산을 신청했고, 둘째 딸 남편은 개인회생을 신청했다고 알려졌다.
이들이 파산 신청하면서 경매로 넘어가게 된 다세대 주택만 5채다. 이 주택들은 일가족 이름 이니셜을 따서 H 주택, J 주택 등의 이름을 하고 있었다. 현재 피해 규모만 약 80세대, 피해 금액은 최대 1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확인 안 된 주택이나 가족 중 추가 파산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어 피해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가족 파산 피해자를 변호하는 천호성 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 대표변호사는 “이번 전세 사기는 여러 채의 건물을 보유한 임대인 일가가 수십 명의 임차인들부터 보증금을 받은 이후 같은 날 동시에 파산 신청을 한 경우로, 기획파산을 의심해 볼 만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일요신문은 A 씨를 포함해 S 씨 일가족에게 피해를 본 피해자들 사연을 종합해 이번 사기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2021년 7월 A 씨는 방학동 인근에서 원룸을 찾다가 2020년 신축된 건물을 발견했다. A 씨가 보게 된 방은 아직 입주자가 없던 말 그대로 ‘신축’ 방이었다. A 씨는 이 방을 계약하게 됐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비슷한 경로로 S 씨 일가와 계약을 하게 됐다.
이때 S 씨 가족이 갖고 있던 다세대 주택 방을 계약한 피해자들은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고 한다. 먼저 S 씨 명의로 돼 있지만 고령인 S 씨는 본 적이 없고, 대부분 S 씨 딸이 전화를 받거나 계약을 처리했다. 또한 S 씨 가족의 다세대 주택을 정작 인근 부동산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다. 거리가 떨어진 부동산 3곳에서만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이들 부동산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대출을 9억 원 받았다가 3억 원을 최근 갚았다. 워낙 잘 버는 분이라 나머지 돈도 차차 갚을 예정이다’, ‘이분이 고급 수입차를 탄다. 건축사업을 하는 집안으로 부유해서 믿을 수 있다’, ‘선순위 임대보증금 액수가 적다. 만에 하나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돈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 등의 말이었다. 피해자들은 ‘등기를 떼어보니 9억 원 대출 중에서 3억 원을 갚은 건 사실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2021년 계약자의 계약 만료가 다가오는 시점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2023년 5월 S 씨 일가와 계약한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계약 만료가 3개월 남은 시점에서 해지를 통보했다고 한다. 하지만 첫째 딸은 ‘집이 안 나가서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은행을 알아보고 있다’ 등 말로 차일피일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B 씨는 집을 내놨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알고 보니 S 씨 일가 집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났고, 주변 부동산 중개인들이 소개를 꺼렸기 때문이었다. 주변 부동산에서는 ‘보증금 돌려받기 힘들 것 같다. 차라리 민사소송을 제기하라’고 권유했다. B 씨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9월 법원에서 증거를 보충하라는 서류가 왔다. 마침 그 서류를 받은 시점에 또 한 통의 법원 등기가 찾아왔다. S 씨가 8월 16일 파산을 신청했다는 내용이었다.
9월 16일 저녁 집마다 법원 등기가 도착한 방학동 H 주택은 부산스러워졌다. 그날 저녁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집 문을 두들기며 ‘일단 모여서 얘기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모인 피해자들은 대부분 20대에서 30대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이었다. 피해액은 많게는 2억 5000만 원도 있었고, 대부분 1억 원선이었다. 이날 모인 사람 중에는 법원 등기가 날아오기 1주일 전 재계약을 한 피해자 C 씨도 있었다.
C 씨는 9월 초 전세 계약을 연장하고자 둘째 딸에게 전화했다. S 씨 둘째 딸은 ‘계약서 내용을 그대로 하고, 굳이 다시 쓰지 말고 구두로 계약만 연장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일가족이 파산한 지 3주일이 지났고, 파산 등기가 오기 일주일 전이었지만 파산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C 씨는 “나중에 둘째 딸에게 ‘왜 파산 사실을 말하지 않았냐’고 묻자, 적반하장으로 ‘내가 굳이 말해줘야 하는 이유라도 있냐’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들이 모여 확인해 보니 상황은 심각했다. S 씨 일가는 계약할 때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30%에서 50% 적게 적어 놨다. 집이 넘어가도 사실상 돌려받을 돈이 거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들은 다른 집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해 일가족이 보유한 다른 주택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며 대화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경매에 넘어간 주택 중에서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상황을 알아보는 사이 S 씨 일가 파산 면책 이의 제기 신청 기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피해자들이 11월 10일까지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면책이 선고되고 채무자들은 더 이상 채무 변제를 구할 수 없게 된다. 일가족 채무 총액은 40억 원이 넘고 수천만 원의 세금도 납부하지 못한 상태라고 알려졌다.
11월 17일 피해자들은 S 씨 채권자 집회에 가서 파산 면책을 심리하는 판사에게 ‘면책을 승인해 주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S 씨가 법원에 다양한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에 S 씨가 집어넣은 서류에 따르면 ‘가족 중 파산을 신청한 사람이 없다’고 진술하는 등 사실과 다른 얘기가 많았다고 한다. 판사는 S 씨 파산관재인에게 ‘다른 가족 상황도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이번 일가족 파산은 사기가 확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 C 씨는 “어머니 S 씨와 첫째 딸, 첫째 딸 남편이 8월 16일 파산 신청했고, 8월 7일 둘째 딸도 파산 신청을 했다.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둘째 딸 남편도 개인회생을 신청한 상태”라면서 “이들 가족은 파산 신청하는 데 선임한 변호사도 똑같다. S 씨 동생이 가진 다세대 주택도 의심되는 곳이다. 아직 가족 명의 가운데 확인이 되지 않은 깡통 전세가 더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서 피해액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D 씨는 “둘째 딸과 나눈 통화에서 ‘내가 지은 건물만 100채 정도 된다’고 했다. 팔아서 수익을 냈거나 기존 전세 보증금도 많은데 그 돈이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또한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밝혀진 5채 건물 외에도 다른 가족 명의로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천호성 변호사는 S 씨 일가 사기죄가 인정된다면 파산 면책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천 변호사는 “각 임차인들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임대인이 선순위 임차보증금 합계를 속이는 방식으로 임차인을 기망해 계약 체결한 것으로 보이고, 이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에 해당한다”면서 “임대인들에게 사기죄가 인정된다면 임차인들의 채권은 비면책 채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수의 임차인들이 채권자로서 이의신청을 하게 되면 파산법원으로서도 신중하게 면책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임차인들이 파산법원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해 채무자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라고 말했다.
이들 일가족이 회생 법원에 낸 서류에 따르면 ‘채무자는 부동산 신축 판매 및 임대 사업을 운영했으나 정부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 강화로 기존 세입자들 임대 보증금을 반환해주지 못해 채무가 증대됐다’면서 ‘이자 등 금융비용만 가중돼 현재 채무에 대해 지급 불능 사태가 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S 씨 일가족은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면서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S 씨 주장대로 파산 면책 승인이 날 것인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피해자들 이의제기에 따라 파산관재인이 S 씨를 조사하고 있고, 2024년 1월 19일 2차 채권자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실제로 S 씨 일가족은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면서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S 씨 주장대로 파산 승인이 날 것인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피해자들 이의제기에 따라 파산관재인이 S 씨를 조사하고 있어 아직 다음 기일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S 씨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피해자들이 제기하는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다만 S 씨 측이 ‘구체적인 내용을 보도하지 말 것’을 주문해 구체적인 내용은 담지 않았다.
피해자 D 씨는 “방학동 사건으로 열람한 법원서류에는 있어야 하는 건물 보증금 13억 원 행방을 찾을 수 없다. 13억 원이 없다면 어디에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다. 집주인은 그 돈으로 근저당을 갚은 것도 아니고 부동산 투자도 현금이 아닌 대출을 내서 했는데 그럼 갖고 있어야 할 13억 원은 도대체 어디 있는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피해자 B 씨는 “계약할 때부터 거의 모든 일을 딸이 했기 때문에 이들이 어머니 명의를 이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어머니는 사기가 인정돼도 고령이라 실형이 나오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 점을 이용했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최근 일가족 파산 사건 외에도 전세 사기 사건이 폭주하고 있다. 최근 대전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1300명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수원, 광주 등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전국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천호성 변호사는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전세보증보험 등에 가입되지 않을 경우 개인 회생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천 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 임대인 은닉재산을 수사 초기에 조속히 몰수, 추징하는 경우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기를 친 임대인의 계좌내역조차도 피해자인 임차인들에게 공개를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임대인으로부터 돈을 쉽사리 돌려 받기 어려운 게 냉정한 현실”이라면서 “현실을 고려하면 전세자금 대출받은 임차인들은 본인 스스로 회생이나 파산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고 전세사기특별법에 따른 전세 피해자 결정을 받아 본인 상황에 맞는 해당 제도의 특례를 적용받음으로써 피해를 유예하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노력을 해도 전세사기를 당했다면 결국 손해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들끼리 경쟁하는 선택보다는 최대한 많은 피해자들끼리 뭉쳐 법적 대응을 하는 게 법률 비용을 아끼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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