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에 걸려드는 것은 단기간에 큰 이익을 얻으려는 대박 심리, 타인의 언행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 등이 한몫할 것이다. 하지만 본질을 말하자면, 속임수 수법이 교묘한 데다 인간 심리의 취약한 영역을 능수능란하게 건드리기 때문에 누구라도 걸려들기 쉽다.
미국의 공인 사기 조사관 파멜라 마이어는 “인간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확률은 겨우 54%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그는 인간의 구별 능력이 낮은 이유는 거짓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진실로 믿고 싶어 하는 ‘진실 편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일단 보고 듣는 것을 믿고 나서 나중에 의심하는 인간의 성향이 결국 달콤한 속임수에 휘말리는 원인이 아닌가 싶다.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끔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사기는 갈수록 교묘하게 진화하는 것 같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주택가에서 기승을 부린 사기를 보자. 공문서나 신분증을 정교하게 위조한 부동산 사기 유형이었다. 이는 사기 판별 기준을 조작하거나 검증할 방법이 없어 누구나 걸려들 수밖에 없다.
사기 순서는 이렇다. 먼저 가짜 부동산 중개업자와 사기꾼이 진짜 주인으로부터 주택을 월세로 빌린다. 사기꾼은 서류를 조작해 가짜 집주인으로 변신한다. 그다음 전세 물건은 주변 시세에 비해 상당히 낮게 내놓는데, 자금력이 부족해 싼 매물을 찾는 젊은층 세입자의 심리를 악용한 것이다. 세입자가 찾아오면 월세가 아닌 전세로 계약을 한 뒤 보증금을 받아 도주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건물 등기부등본, 중개업소 개설 등록증, 집주인의 주민등록증과 인감증명서 등 거래에 필요한 서류를 거의 완벽하게 위조한다. 게다가 가짜 집주인이 진짜 집주인인 것처럼 위장해 태연하게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다면 어지간한 법률 전문가라도 걸려든다. 사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믿음을 악용해 사기를 치는 경우 피하기 쉽지 않다.
그동안 대리계약을 하더라도 사기당하지 않는 최후의 체크 방법은 이런 것이었다. 즉 ‘등기부등본 소유자와 직접 통화를 한 뒤 그 소유자 명의의 은행 통장 계좌로 송금하면 안전하다’라는 것이다. 진짜 소유자에게 돈이 입금됐으니 나중에 문제가 되어도 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가짜 신분증을 활용해 집주인 명의의 은행 통장을 만든 뒤 송금받은 돈을 가로채 달아나는 신종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진짜 주인 몰래 은행 통장이 하나 더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마지막 보루’인 은행 통장까지 위조해 주인 행세를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법률 지식이 많은 변호사나 금융 지식이 많은 경제학 박사라도 예외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 창구에선 주민등록증 진위를 100% 판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한민국 신원 확인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사기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기 힘들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기 범죄율 1위다. 사실 작정하고 상대방을 속이는 사기는 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도 현실적인 방법은 사기당할 확률을 줄이는 것이다. 중개업자나 집주인이 생면부지인 내게 너무 친절하거나, 전셋값이 주변 시세에 비해 너무 싸다면 의심하는 것이 좋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신뢰를 쌓은 토박이 중개업소를 이용하는 것도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지역사회의 평판 조회라는 필터링을 활용하라는 얘기다. 따라서 사기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신뢰할 만한 중개업자를 통해 계약하되, 대리인은 피하고 진짜 집주인 얼굴을 보고 난 뒤 서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선 합리적 의심을 너무 빨리 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계약할 때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그 의심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결정을 서두르지 말라.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