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신·강감찬·양규·이순신…‘진짜 리더’ 필요한 시대 상황 속 대중들 열광
‘서울의 봄’부터 ‘고려 거란 전쟁’ ‘노량: 죽음의 바다’가 동시기 주목받으면서 연말 ‘3대 화제작’으로 꼽히고 있다. 작품이 다룬 시대도, 이야기도, 장르도 각각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바로 ‘용기 있는 리더’가 극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시대와 역할을 불문하고 약자를 먼저 생각해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을 내세웠다는 점은 같다. 용맹한 리더를 원하는 대중의 바람이 이들 작품을 화제작으로 만들고 있다.
#흥행 돌풍 ‘서울의 봄’…정우성이 주목받는 이유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서울의 봄’(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은 11월 22일 개봉해 14일째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첫 번째 주말보다 두 번째 주말에 더 많은 관객을 모으면서 열풍을 넘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제작비 200억 원 규모의 대작이 개봉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을 더 많이 모으는 이른바 ‘개싸라기 흥행’을 벌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2월 11일에는 관객 700만 명을 돌파한 ‘서울의 봄’의 인기는 영화의 주요 관객층인 2030세대를 넘어 6070세대와 10대 청소년이 주도하고 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전 연령대로부터 높은 선호도를 보인다. 영화에는 주요 출연자가 60여 명에 이르고, 주연급 배우들도 10여 명이 등장한다. 여러 인물 가운데 관객이 가장 뜨겁게 반응하는 주인공은 정우성이 맡은 이태신이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군인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면서 정의를 향해 나가는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1979년 일어난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서울의 봄’은 하나회로 대표되는 신군부의 핵심 전두광(전두환을 빗댄 인물) 보안사령관이 사조직을 동원해 권력을 찬탈한 ‘그날 밤’을 다룬 작품이다. 이태신은 전두광 일당에 맞서 서울을 지키려는 인물이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극화했다. 영화에서 이태신은 전방 부대까지 동원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전두광 앞에 혈혈단신 나선다. 사리사욕보다 정의와 신념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는 신군부가 탱크를 몰고 서울을 점령하려 하자 “나라가 이 꼴인데 나라를 지키는 군인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외치면서 맞선다.
관객들은 전두광 역을 맡아 폭발적인 연기력을 과시한 황정민보다 조용하게 끌어 올라 끝까지 군인으로서의 신념과 올바른 정의를 지키는 정우성에게 열광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의 모습을 향한 뜨거운 환호다. 이는 김성수 감독이 일정 부분 의도한 설정이기도 하다. 김성수 감독은 “당시(1970년대) 사령관의 리더라고 하면 일부 마초 같고 거침없는 사나이의 느낌이지만 그런 남자보다는 요즘 관객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점잖고 신념이 올곧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태신을 그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관용의 리더십 이야기하는 ‘고려 거란 전쟁’
극장가의 화제작이 ‘서울의 봄’이라면 안방에서는 ‘고려 거란 전쟁’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11월 11일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는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의 총사령관인 강감찬 장군의 이야기다. 강감찬 역은 배우 최수종, 현종 역은 김동준이 연기한다.
‘고려 거란 전쟁’은 KBS가 1년 6개월 만에 야심차게 내놓은 대하사극이다.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정통 사극이 통할 수 있을지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지만 첫 회 시청률 5.5%(닐슨코리아‧전국기준)로 출발해 회를 거듭할수록 기록이 오르고 있다. 7회 때 8.4%를 달성했고, 가장 최근인 8회 역시 7.9%를 기록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밤 9시 25분 방송하는 시간대에 여러 경쟁작이 겹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인기를 굳건히 다지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고려 거란 전쟁’은 방송 직후 넷플릭스를 통해 동시 공개돼 매회 크게 주목받고 있다. 본방송 직후인 토요일과 일요일 넷플릭스 ‘오늘의 인기 콘텐츠’ 순위에서 2~3위를 거뜬하게 유지하고 있다.
‘고려 거란 전쟁’의 초반 인기의 진원지 역시 리더십에 있다. 26년간 이어진 고려와 거란의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사회에서 어떻게든 백성을 지키려는 참된 리더들이 등장해 시청자의 마음을 빼앗는다. 오랜 전쟁은 40만 거란군을 막아낸 양규의 흥화진 전투, 강조(이원종 분)의 삼수채 전투,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이어지는 통쾌한 승리로 막을 내린다.
승리의 전쟁 서사 안에는 목숨을 내놓고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는 리더가 있다. 아직 극 초반이지만 왕위에 오른 젊은 왕 현종과 그의 스승 강감찬 그리고 거란과의 대전투에서 활약하는 장군 양규(지승현 분)의 모습에 시청자는 뜨겁게 반응한다. 특히 숨은 영웅 양규는 깊은 충성심과 불굴의 투지로 백성을 지키는 인물. 거란군에 맞서 백성을 지키는 양규는 약자의 편에 선 참된 리더의 모습을 상징한다.
‘고려 거란 전쟁’의 리더들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1000년이 훌쩍 지난 현재에 그대로 대입해도 얼마든지 필요한 참된 리더의 모습이다. 최수종은 “젊은 친구들에게 '우리가 작지만 얼마나 위대한 민족이었는가'를 알릴 수 있는 영웅들의 이야기”라며 “민초의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던 힘이 이 작품에 안에 있다”고 밝혔다.
#리더십의 끝판왕 이순신의 최후 ‘노량’
이순신은 곧 ‘리더십’의 상징이자 ‘영웅’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제작 빅스톤픽쳐스)는 그런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맞서 거둔 3대 전투를 다룬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이순신 시리즈는 최민식이 주연해 2014년 개봉한 ‘명량’(누적 1761만 명)과 2022년 박해일이 출연한 ‘한산: 용의 출현’(누적 726만 명)으로 이어졌다.
‘노량’이 12월 극장가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시대를 불문하고 ‘영웅’이자 ‘리더’로 꼽히는 이순신의 마지막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7년이 흐른 뒤 퇴각하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해 다시 바다로 향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위태로운 전쟁의 한복판에서 지략과 용기, 사람들을 아우르는 인품으로 위기를 극복한 이순신의 이야기는 앞서 ‘명량’ ‘한산’을 통해 관객에 깊은 울림과 감동을 안겼다. 이번 ‘노량’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는다.
이순신을 연기한 배우는 김윤석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순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그릴지 오래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노량’은 임진왜란 전체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밝힌 김윤석은 “전쟁의 마지막, 7년 동안 함께했던 동료 장수들과 모든 것을 안고 전쟁을 마무리지어야 해서 그 고뇌가 다른 작품보다 많이 담겨있다”고 밝혔다.
영화와 드라마의 인기는 늘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서울의 봄’이 주목한 군인 이태신, ‘고려 거란 전쟁’의 인기를 높이는 백성을 생각하는 장군들, ‘노량’의 이순신까지 정의와 신념으로 용기를 실천하는 리더에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 그만큼 참된 리더가 필요해서이지 않을까.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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