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협상자 선정 늦어지며 인수 차질 불가피…최고가 제시 하림그룹 전문성과 재정 상황에 의구심
#진통 이어지는 HMM 인수전
KDB산업은행(산은)의 목표는 올해 안에 HMM 주식매매계약 체결을 완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HMM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늦어지면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HMM 인수 희망자는 하림그룹과 동원그룹이다. 이 중 하림그룹이 더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하림그룹이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하림그룹이 최근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은 산은에 △HMM 자사주 매입 허용 △JKL파트너스 보유 지분 5년 내 매각 허용 △산은·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 사외이사 지명 불가 △경영 관련 사전 협의 미수용 △잔여 영구채 전환 3년 후로 연기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그룹의 이러한 요구에 동원그룹은 반발하고 있다. IB업계에 따르면 동원그룹은 산은에 HMM 인수전 입찰 절차의 공정성을 지적한 공문을 전달했다. 동원그룹은 공문에서 “입찰 절차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해운업계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HMM의 현금성 자산 유출을 경계하고 있다. HMM이 보유한 현금은 10조 원이 넘는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해운을 잘하려는 게 아니라 이윤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참여한 것”이라며 “3년간 대규모 배당을 받아가고 시가총액이 최대로 늘어났을 때 일부 지분을 팔고 나가면 어려운 해운 환경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HMM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영업 환경을 회복하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산은은 당초 이러한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5년간 대주주의 엑시트 금지’를 매각 조건으로 내걸었다. 또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1조 6800억 원 규모 영구채를 ‘견제 지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해당 영구채는 HMM 지분 약 32%로 전환이 가능하다. 인수 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을 요구함과 동시에 정부가 언제든 경영에 간섭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산은이 하림그룹의 요구를 수용하면 이러한 ‘안전장치’가 무력화된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여지를 남겨뒀기 때문에 잡음이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은은 최종입찰안내서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경우 협상을 통해 조건을 일부 완화 내지 수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단서조항으로 달아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하림그룹이 우선 입찰 가격을 높게 제시한 후 조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협의해보려다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HMM 소액주주연대도 법률대응을 예고했다. 홍이표 HMM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공개입찰인데 왜 아직까지 매각 예정가와 산정 기준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느냐. 뒤에서 이런저런 조율을 하느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라며 “이런 상태에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경우 불공정 입찰이다. 행정소송과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도 “본입찰 마감 후 매각 예정가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절차의 투명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며 “온 국민과 해양인이 관심을 갖고 있는 중대한 사안인데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산은은 입찰자 제안 내용을 외부에 공개한 바 없으며 영구채 유예방안에 대한 긍정적 검토는 사실무근”이라며 “정확한 매각 예정가는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림그룹의 불안한 상황
HMM의 매각 예정가는 약 6조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주와 유럽 항로 영업권,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모두 포함해 인수가를 7조~8조 원 수준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유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저렴한 선에서 매각 예정가를 책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하림그룹이 산은에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하는 이유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하림그룹과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는 JKL파트너스는 수천억 원대의 프로젝트 펀드를 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하림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올해 상반기 기준 1조 5000억 원 남짓에 불과하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하림그룹도 자체적으로 현금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림그룹 계열사 팬오션은 지난 9월 유조선을 처분한 데 이어 10월에는 한진칼 지분도 매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팬오션 자체가 돈이 없어서 계속 팔지 않으면 넘어지게 돼 있다”며 “하림이 HMM을 인수했을 때 팬오션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팬오션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3분기 말 9287억 원에서 올해 3분기 말 5697억 원으로 줄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가장 자금력이 좋고 인수 후 마땅한 발전 방안을 갖고 있는 기업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기 마련인데 하림 같은 경우 뭐 하나 없는 셈이다”라며 “많은 M&A 과정을 봤지만 이렇게 혼탁한 경우는 처음 본다. 업 관련성 측면에서도 하림이 과연 이 HMM이라는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적격한 기업일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에서는 향후 가파른 글로벌 물동량 수요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소비자 물가가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내년에는 글로벌 정기선사연합에 대한 유럽의 독점금지법 적용 제외 폐지로 해운동맹도 재편될 전망이다. 앞서의 구교훈 회장은 “일본과 대만 선사들끼리 연합하면 HMM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며 “하림이 이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의지와 역량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다.
한종길 성결대학교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산은이 재정건전성이 낮아 매각 의지가 강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인수 후보 기업들에 매각하기보다는 산은 지분을 우선 해진공에 팔고 해진공이 국내 선사들에게 20~30%가량을 인수하도록 하는 게 낫다”며 “해운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포스코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일정 부분 주식을 계속 매각하면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게 산은과 HMM도 살고 우리나라 해운도 사는 길이다”라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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