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 | ||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큰 돈을 모아놨던 유진은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탈락한 뒤 금융 쪽으로 방향을 바꿔 서울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서울증권 인수전은 난타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기존에 서울증권 인수를 표명했던 한주흥산과 한주흥산의 인수에 반대했던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 서울증권 노조, 유진그룹 등이 각기 다른 속내를 노출하며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는 것.
유진기업의 지분 5.03%는 도덕성 논란에 횡령·배임으로 고발까지 당한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에게 매입한 것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을 경우 금융감독원이 이에 대해 의외의 판단을 내릴 수도 있는 상황.
7월 14일 처음 서울증권 주식 양도 계약을 체결한 유진기업은 이후 7월 28일 금융감독원에 지배주주변경승인을 신청했다. 문제는 서울증권을 두고 지분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주흥산(지분율 5%)도 지난 8월 8일 지배주주변경승인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증권은 지난해 말 대주주였던 외국계 펀드 QE인터내셔널이 지분을 매각하고 손을 뗀 뒤 주인 없는 회사가 됐다. 미국의 금융 거물 조지 소로스의 펀드로 알려진 QE인터내셔널은 IMF 당시 서울증권을 700억 원에 인수해 800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후 서울증권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5%의 강찬수 회장으로 영향력 있는 오너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틈을 노리고 지분을 사들인 곳은 한주흥산. 이 회사는 부동산 임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곳으로 영화배우와 국회의원을 지낸 신영균 회장이 오너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아들인 신원식 부회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맡고 있다.
영화배우 출신인 신 회장은 명보극장을 토대로 빌딩 임대 사업을 확장했고, SBS 설립 당시부터 5%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2002년에는 제주민방(JIBS) 1대주주(지분 30%)로 방송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지난해 경인방송(iTV) 사업자 선정 때 영안모자와 함께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도 했다.
5월 26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주흥산과 강찬수 회장 측은 크게 일전을 벌인 바 있다. 양측은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싣는 등 대대적인 위임장 확보전에 나섰다.
당시 강 회장을 비롯한 서울증권 측은 “부동산 임대업을 하던 한주흥산이 증권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수 이후 자산을 처분한 뒤 재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며 소액주주의 지지를 호소했다.
한주흥산은 이에 맞서 “서울증권 강 회장이 몇 년간 영업이익 적자를 면치 못했고, 그럼에도 대량의 스톡옵션을 행사해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데만 몰두했다”며 부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특히 강 회장이 취임 후 스톡옵션 및 임원보수에 의해 부여받은 주식 수가 지분 9%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인 점을 지적하며 소로스 측이 철수하면서 차익 실현 대가로 강 회장에게 대규모 스톡옵션을 준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 한주흥산 오너인 신영균 회장. | ||
유진과의 계약이 알려지자 서울증권 노동조합에서는 강 회장을 성토하는 성명서를 냈다. 적대적 M&A에 맞서기 위해 강 회장을 지지했던 결과가 이런 것이냐는 불만과 동시에 유진의 참여에도 반대하고 나선 것. 이와 함께 민주금융노조는 8월 10일 강 회장을 횡령과 배임, 탈세 혐의로 고발했다. 5월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는 과정에서 직원들을 동원해 주주들을 만나게 하고 이 과정에서 10억 원을 썼다는 것. 결과적으로 자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 자금을 쓴 것이라는 얘기다.
또 스톡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강 회장이 배우자와 계열사 대표의 차명을 이용해 55억 원을 대출받은 것에 대해서는 배우자와 계열사 대표가 55억 원을 증여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탈세가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 회장은 당시 1인당 대출한도인 3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차명을 이용했다는 부당대출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이 때문에 민주금융노조는 스톡옵션 취지에 어긋난 지분을 강 회장에게 사들인 유진기업의 주주자격도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진그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증권 내부에서 잡음은 있지만 법 규정과 정관에 위반되지 않은 만큼 인수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 실패 후 금융 쪽으로 눈을 돌린 것 아니냐는 추측에 대해서는 “대우건설과 상관 없이 금융업 진출은 추진해 오고 있었고 마침 제안이 들어와 수락한 것일 뿐”이라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레미콘, 골자재 등 건설소재 산업을 주력 업종으로 하는 유진그룹은 건설업과 물류업을 하는 데 있어 금융업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유진그룹이 업계 17위인 소형 증권사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향후 자본시장 통합법이 시행되면 현재의 모든 금융업은 은행, 보험, 증권업으로 통합된다. 증권사는 증권업, 선물거래, 투자운용 등을 아우르는 투자은행으로 변신하게 되기 때문에 자금이 충분하다면 작은 증권사를 통한 사업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편 두 업체의 지배주주 승인 신청을 받은 금융감독원은 증권거래법 개정안의 첫 사례부터 중요한 결정의 기로에 서 있다. 두 업체 모두 지배주주 자격을 승인해 줄 것인지, 아니면 한 업체의 손만 들어줄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 금감원의 판단은 9월 중순에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주흥산은 “지배주주승인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지를 점검하는 것으로 금감원이 회사의 주인을 결정하는 부담을 안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진그룹은 “유진이 한주흥산보다는 건실한 기업이므로 금감원의 판단을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두 업체 모두 자격 승인을 받을 경우는 다시 시장에서 치열한 지분경쟁을 벌여야 한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