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은 지난 9월 이사회를 열고 유상증자 방안을 논의했다. 산은은 이어 지난 10월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유상증자 규모를 2200억 원으로 확정했다. 산은 이사회는 당초 유상증자 규모를 ‘2300억 원 이내’로 논의했지만 주주총회에서 2200억 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산은은 최근 유상증자 절차를 마무리했고,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유상증자 대금을 납부했다.
산은은 앞서 지난 5월에도 12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한 바 있다. 산은 이사회는 해당 두 번의 유상증자에 대해 ‘혁신성장펀드 조성 지원 및 녹색금융 운영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녹색금융이란 환경·에너지 관련 금융 활동으로 환경 개선, 금융산업 발전,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금융 형태를 뜻한다.
산은은 수년 전부터 녹색금융에 관심을 가져왔다. 산은은 2021년 1월 정책기획부문을 정책·녹색기획부문으로 개편하고, 녹색금융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ESG·뉴딜기획부’를 신설했다. 산은은 당시 “향후 5년간 25조 원 수준의 ‘대한민국 대전환 뉴딜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20조 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 조성·운용 및 정부의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반영한 금융상품의 개발 등을 통해 충분하고 신속한 녹색금융 지원이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라며 “기후변화 대응을 장기 발전방향의 한 축으로 설정하고, 이를 은행 고유의 역할인 ‘혁신기업의 육성 및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연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산은은 녹색금융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유상증자까지 추진했다. 하지만 산은의 실제 경영은 녹색금융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은은 최근 5년간 석탄화력발전 지원 금액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산은의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여신 잔액은 2019년 말 7763억 원이었지만 2022년 말에는 1조 4061억 원으로 증가했다.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는 1조 3981억 원으로 2022년 말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과거 대비 높은 수치다. 또 산은의 전체 여신 대비 석탄화력발전 지원 비중도 2019년 0.4%에서 2022년 0.6%로 증가했다.
산은은 인도네시아 ‘칼젤’과 ‘자바9&10’ 등 두 개의 석탄화력발전 사업에도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자바9&10 사업의 경우 산은이 녹색채권 지원 방침을 발표하고 녹색채권과 관련된 표준 관리체계가 수립된 2020년 3월 이후인 2020년 7월에 약정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ESG 경영의 취지와 부합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은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은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프로젝트파이낸싱(PF)금융 승인 금액은 △2021년 1조 2126억 원 △2022년 5338억 원 △2023년 상반기 97억 원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건수로 살펴보면 △2021년 16건 △2022년 6건 △2023년 상반기 1건이다. 이용우 의원은 “기후위기에 각 국의 공적금융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오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산은의 역할은 미비한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기조도 녹색금융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평가 받는다. 정부는 심지어 최근 기후위기 대응 예산을 삭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산은이 유상증자를 진행한 궁극적인 목표는 녹색금융이 아닌 BIS자기자본비율(BIS비율)이라고 분석한다. BIS비율이란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BIS)이 정한 은행의 위험자산(부실채권)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뜻한다.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따르면 산은의 BIS비율은 지난 9월 말 기준 13.75%다. 그런데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의 비전을 달성하기에는 현재의 13%대 BIS비율로는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도 산은의 BIS비율 하락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지난 3월 산은에 4350억 원 규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을 현물 출자했다. 산은 이사회는 당시 ‘안정적인 정책금융 업무수행 등을 위한 BIS비율 보전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LH 지분은 산은의 자금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산은이 현재 보유한 LH 지분은 9.23%다. 문제는 지분율 10% 미만을 보유한 기업은 지분법 수익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LH의 수익은 재무제표상 산은의 수익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산은이 공기업인 LH 지분을 매각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산은은 지난해 순손실 7조 6245억 원이라는 최악의 실적을 거뒀다. 산은은 올해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대손충당금 환입의 영향으로 흑자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실적 부진을 메우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대손충당금이란 미회수된 매출채권 중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설정하는 계정을 뜻한다.
다만 산은은 녹색금융 경영을 위해 유상증자를 진행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녹색금융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다 보니 정부가 산은에 출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은 부산 이전' 재점화…엑스포 실패 물타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KDB산업은행(산은) 본점을 부산광역시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최근 2030 부산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서 산은 본점 이전안에 대해서도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부산시에 대한 투자를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를 의식했는지 산은의 본점 이전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6일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산 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에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조속히 마무리 짓겠다”고 말했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도 지난 12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산 발전을 위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산은 본사 부산 이전, 북항 재개발 등 다양한 정책과 사업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산은의 본점 이전을 위해서는 한국산업은행법(산은법)을 개정해야 한다. 산은법 제4조에 “산은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산은법을 개정하려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산은법 개정과 관련해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13일 SNS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최고위에서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여당이 의도적으로 산은의 본점 이전을 쟁점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로 지지율이 하락할 위기에 처하자 ‘산은 본점 이전’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은 “산은 이전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데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