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상식’ 국민의힘 김·장 2선 후퇴 빗대 요구…친명계 선긋기 속 이재명 ‘문재인 길’ 따를지 관심
#공격 수위 끌어올린 비명계
12월 14일 오전 ‘원칙과 상식’ 소속 윤영찬,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가지의 혁신안을 제시했다. 이재명 대표 등 당 지도부의 2선 후퇴, 통합 비대위 전환이었다. 답변 시한은 12월 말까지다. 이는 전날 13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하고, 12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불출마 선언한 데 따른 혁신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왔다.
원칙과 상식은 “국민의힘도 비대위 체제로 간다. 혁신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통합 비대위 출범이 필요하다”며 “당대표만이 이 물길을 열 수 있다. 당대표의 선당후사 결단에 친명·비명 모두 합류할 것이다. 원칙과 상식 네 사람도 모두 공천이나 당선 욕심을 내려놨다. 험지 출마든 백의종군이든 선당후사의 길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원칙과 상식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내년 총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칙과 상식은 “이제 1월부터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가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시기”라며 “이 엄중한 시기에 당대표가 주 3회 재판받고, 재판 결과에 따라 유죄 판결이 선고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희생 및 쇄신 요구가 분출하는 상황이다. 지난 11월 중순 비명계 이원욱 의원뿐 아니라 친명계 김두관 의원까지 이 대표가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당 중진들도 그 뒤를 따를 것이라며 험지 출마를 촉구한 바 있다. 친명계에선 이 대표의 험지 출마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원칙과 상식은 ‘당대표 사퇴’로 공격 수위를 끌어올린 셈이다.
다만 원칙과 상식은 이 대표의 총선 출마에 대해선 출구를 열어주는 모양새다. 윤영찬 의원은 기자회견 후 ‘이 대표의 총선 출마 여부나, 총선 출마 시 지역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냐’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대표직에서 사퇴했으나, 내년 총선에서 현재 지역구인 울산 남구을에 출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대표는 원칙과 상식 등 당 안팎의 쇄신 요구에 대해 침묵했다. 12월 14일 이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변화하되 최대한 단합과 단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라며 “어떻게 해서든 다음 총선에서 국민 기대에 맞춰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청래 "탈당 빌드업 아니면 자중하라"
12월 14일 오후 이 대표가 불참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이 대표를 향한 혁신 요구가 나왔다. 오영환 의원은 원칙과 상식,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낙연 전 대표를 언급하며 “무조건적인 일방적 단합, 내부를 향한 침묵을 강요하지 말라”며 “이탈하는 사람까지도 마음을 돌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리더십, 헌신과 희생·결단의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상호 의원은 “지도부가 더 소통해야 하는데 뭐 하는지 모르겠다”며 “선거를 앞두고 당의 통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김한정 의원은 의총 후 소셜미디어(SNS)에 “민주당에 불안과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비해 쇄신 경쟁에서 뒤지고 있는 느낌인데 이낙연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시사했다. 혁신과 쇄신 경쟁에 민주당이 속도를 내야 한다”며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의 슬로건인 ‘희생과 헌신’은 민주당 것이어야 했다. 민주당은 분열 조짐, 반대 의견에 대해 과감한 통합과 포용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제 관련해서도 대선 당시 연동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약속한 만큼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의총 후 SNS에 “병립형 회귀를 택한다면 국민에게 한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라며 “‘범민주연석회의’에 민주당이 참여해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명계는 이 대표 사퇴 요구에 선을 긋고 있다. 12월 14일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SNS에 원칙과 상식을 향해 “탈당, 신당 합류 빌드업이 아니라면 자중하라”며 “이재명 대표 직인 없는 공천장은 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15일 홍익표 원내대표는 1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재명 대표 사퇴 요구에 대해 “현재는 당대표가 물러나는 것에 대해 공감하는 의원들이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대표가 원칙과 상식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제로다. 첫 번째, 절대다수의 당원이 이 대표 사퇴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민심이 원칙과 상식 요구를 뒷받침하지도 않고 있다”며 “원칙과 상식은 본인들 공천을 받기 위해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험지 출마, 당대표 사퇴 등을 고려할 가능성 아예 없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가 2015년 문재인의 길을 따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민주당 상황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와 비슷하다. 2015년 4·29 재보궐 선거 이후부터 줄곧 문재인 지도부는 총사퇴 요구에 직면했다. 당시 문재인 대표는 ‘김상곤 혁신위’를 띄우고 모든 권한을 위임하며 위기를 타파해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2015년 12월 안철수 대표는 오랜 시간 문 대표와 갈등을 빚은 끝에 비문재인계와 집단 탈당해 이듬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이후 문 대표는 지도부 총사퇴를 선언한 뒤 비상대책위원장을 겸하는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김종인 위원장은 친문계를 포함한 ‘물갈이 공천’을 단행했다. 이런 노력 끝에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의당의 돌풍에도 불구하고 123석을 얻으며 제1당으로 올라서는 대역전극에 성공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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