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진행되자 한 번에 6년 치 계약서 게시해 주민 분통…구청 “담당자 재량으로 행정지도 결정”
공동주택관리법 제28조는 ‘공동주택 관리주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는 공사, 용역 등의 계약을 체결할 경우 계약 체결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계약서를 아파트 홈페이지 및 동별 게시판에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102조 제3항 제9호는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공개한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입주민의 알 권리 보장은 물론, 아파트를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제정된 조항이다.
단 한 차례라도 위반 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지만 서울 강서구 마곡엠밸리 A 단지는 2018년 말부터 2023년 12월 초순까지 6년간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주민의 계약서 공개 요구가 있었음에도 공개를 거부해 왔다.
주민의 민원으로 A 아파트가 계약서 공개를 거부해온 것을 알게 된 강서구청. 법에 따르면 과태료 부과 처분이 내려져야 하지만 강서구 주택과는 과태료 부과도, 시정명령도 아닌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통상 행정지도는 권고, 조언에 해당한다. 즉 위법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강서구 주택과는 “주택관리업자 및 용역 계약서의 경우 서울시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에 계약서가 공개돼 있으며, 동별 게시판 공개는 미흡해 이 부분은 행정지도를 해 시정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공동주택 관리법 제28조는 아파트 홈페이지와 동별 게시판 모두에 계약서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어느 한쪽만 골라서 할 수 없다. 위반 시 과태료 부과라는 규정도 있다. 그런데도 강서구청이 행정지도로 마무리지으려 하자 주민들 사이에선 A 아파트를 봐주려는 거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강서구청은 “서울시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에 계약서가 공개돼 있다”고 했지만 해당 답변이 나온 2023년 12월 11일 기준, A 아파트는 서울시 통합정보마당에도 계약서를 모두 올리지 않았다. 주민운동시설 관리업체 계약 등 누락된 계약서들이 다수 발견됐다. 즉 강서구청이 서울시 통합정보마당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거나, 잘못된 답변을 한 것이다.
강서구 주택과에 통합정보마당에 빠진 계약서가 있다고 알리자 주택관리팀장은 “담당자에게 빠진 계약서도 다시 살펴보고 아파트에 올리도록 지시하겠다”라며 수습에 나섰다. 행정지도 처분에 대해 묻자 주택관리팀장은 “담당자들이 다 동일하게 일 처리를 하지 않는다”면서 “담당자의 재량으로 행정지도 결정이 나온 것이기에 저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과태료 처분에 해당하는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행정지도로 아파트 측의 위법행위를 수습할 기회를 준 것이 아니냐고 묻자 팀장은 “민원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과태료 처분을 하는 건 아니다. 행정지도를 했음에도 안 될 때 시정명령을 할 수 있고 시정명령을 해도 안 될 때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강서구청 주택과는 앞선 8월에도 A 아파트 관리주체에 행정지도를 내린 바 있다. 당시 A 아파트 관리주체는 소독 용역업체가 소독 용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는데도 용역비를 지급했다가 적발됐다. 강서구청은 이때도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봐주기 처분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A 아파트는 행정지도 이후 500장에 달하는 계약서를 엘리베이터에 걸어 놨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간의 계약서들이다. 그런데 아파트 측은 계약서만 걸어놓고 왜 계약서를 게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태료 처분만 피해가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관측이다.
A 아파트 주민은 “이렇게 6년 치 수백 장을 한 번에 걸어놓으면 어떻게 하나, 엘리베이터에 서서 저걸 다 확인하라는 건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다른 주민은 "법을 위반해도 강서구청이 이런 식으로 면죄부를 주니 계속해서 아파트 관리가 엉망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2월 주민에게 계약서 공개를 요구받은 관리소장이 “입주자대표회의가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며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법에 규정된 의무 사항을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으로 어겼다고 시인한 것인데 법 위반임을 알고도 비공개를 지시했다면 행정지도 정도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12월 11일 관리소장에게 당시 계약서 공개 의무를 몰랐는지 묻자, 소장은 “모를 리가 있나. 그건 내 불찰이다. 그리고 입주자대표가 그렇게 얘기했더라도 공고를 했어야 하는데 내가 챙기지 못했다”라고 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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