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 “웃다 끝나” 마약수사 용두사미 종결…‘서울의 봄’ 이태신 “대갈통” 최고 명장면 꼽혀
#“나, 되게 신나”
올해 가장 역설적인 표현이다. 엄청나게 신이 난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이를 내뱉는 이의 표정은 결연한다. 김은숙 작가가 집필한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학교폭력(학폭)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이 그 주인공이다. 학창 시절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학폭 피해자가 애지중지하는 딸의 담임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된 문동은의 말에는 학폭으로 얼룩진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회한이 담겼다.
억만금의 무게를 가진 이 대사를 찰떡같이 소화한 배우 송혜교는 4월 열린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품에 안았다. 무대에 오른 송혜교는 “나 상 받았어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라고 이 명대사를 패러디해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정말 받고 싶었다. 이렇게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의 말에는 문동은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하기까지 그가 감내한 심적 고통이 묻어났다.
‘더 글로리’ 열풍은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3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학폭을 당했다”는 초·중·고교 학생이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피해 응답률’이 1.9%(5만 9000명)로 2013년(2.2%)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더 글로리’가 학폭 근절 및 고발 분위기에 불을 댕겼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경각심이 필요하지 않나”
2023년 가장 눈에 띄는 ‘신인’을 꼽으라면 ENA 예능 ‘나는 솔로’ 16기 속 영숙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솔로’는 짝짓기 예능이지만, 16기에서는 영숙을 비롯해 여러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설키며 ‘사회 실험의 장’이라는 분석도 쏟아졌다. 또한 온갖 거짓말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며 “내 주변에는 저런 사람이 없나”라고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특히 남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옮기는 행위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컸다. 옥순을 마음에 두고 있는 광수에게 영숙은 별다른 근거 없이 “경각심이 필요하지 않나”고 충고한다. 이 말에 광수는 흔들리고, 옥순은 애먼 피해를 입는다. 16기 방송이 끝난 후 옥순은 영숙을 향한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며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16기 논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상철은 영숙을 포함한 몇몇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리고 대중은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순 없다. SNS를 통해 나의 말을 언제든 공론화시킬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16기 속 누군가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는지 경각심을 갖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다.
#“웃다가 끝났습니다”
배우 유아인으로 시작된 연예계 마약 사태는 1년 내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하반기에는 배우 이선균과 가수 지드래곤이 마약 투약 혐의를 받으며 부정적 측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희대의 멘트가 나왔다.
지드래곤은 역대 경찰 포토라인에 선 가장 당당했던 피의자로 기억될 법하다. 지난 11월 경찰서에 출석한 지드래곤은 “오늘 4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는데, 어떤 부분에 대해 조사가 이뤄졌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웃다가 끝났다”고 말했다. 이에 당황한 취재진이 재차 답변을 요구하자 “장난이고요”라고 여유 있게 대처했다.
지드래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간이 시약 검사와 정밀 모발 검사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지드래곤에 대해 인천경찰청 마약수사대는 12월 18일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다. 경찰은 “상당히 구체적인 제보가 있었다. 무리한 수사는 아니었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경찰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마약 투약 혐의를 줄곧 부인하던 지드래곤은 SNS에 ‘모든 일은 결국 반드시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뜻의 사자성어 ‘사필귀정’을 올리기도 했다. 초기 경찰의 수사만 믿고 지드래곤을 향해 손가락질하던 대중들도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I am 신뢰에요”
올해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군 사건 중 하나는 전청조 사기극이다. 전직 펜싱 국가대표 선수 남현희의 연인이었던 전청조는 뉴욕에서 나고 자라 한국어가 서툰 척하기 위해 보낸 문자 메시지 속에 “I am 신뢰에요” “그럼 Next time에 놀러 갈게요” 등의 표현을 썼다. 영어에 익숙한 척하면서 이처럼 문법에 전혀 맞지 않은 말투로 사기극을 벌인 전청조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해당 보도가 나간 후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창에는 이를 패러디한 글이 난무했다. 이런 말투를, 전청조의 이름을 빗대 ‘휴먼청조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와 정계에서도 이 표현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기업들은 “I am 더블할인이에요” “I am 특가에요…Next time은 없어요” 등의 광고 문구를 썼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SNS에 “I am 신뢰. I am 공정. I am 상식. I am 법치. I am 정의. 누가 떠오르나요?”라는 글을 게시했다.
‘I am 신뢰에요’는 범법자인 전청조가 타인을 속이고 사기 범죄를 벌이는 과정에서 쓴 표현이다. 게다가 문법에도 맞지 않다. 이 때문에 이를 이렇게 가볍게 소비하며 유행에 편승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니놈들 대갈통을 다 뭉개줄 테니!”
올해 연말은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장식했다. 극장가의 위기 속에서 이 영화는 12월 20일 현재 1000만 관객 달성 초읽기에 들어가며 대성공을 거뒀다.
2030세대가 이 영화의 인기를 견인했다는 것도 의미 깊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스마트폰을 활용해 심박수,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해 SNS에 게시하는 챌린지를 이어가기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서울의 봄’은 역사가 곧 스포일러다. 답이 정해진 스토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태신(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이 이기길 끝까지 응원하면서 봤다”고 소감을 남겼다. 특히 강직한 군인인 이태신(정우성 분)이 “야 이 새끼들아!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탱크를 몰고 가서 니놈들 대갈통을 다 뭉개줄 테니!”라고 외치는 장면은 관객들이 꼽은 최고의 명장면이다. 울분이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운 역사와 그 당사자들을 향해 관객들이 외치고 싶었던 한마디였을 것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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