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을 알린 셈이지만 남은 과제도 많다. 재단 설립자인 고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의 차명재산 관련 수사와 재산 상속 문제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 혼란 속 질서 잡기가 난제로 꼽힌다. 게다가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재단 이사장 등을 최근 검찰에 고발한 사실도 확인됐다.
#새 이사진 화려한 이력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관정재단은 11월 28일 이사회를 개최해 '이사 선임의 건'을 의결하고 3명의 이사를 새롭게 선임했다. 5선 국회의원에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이주영 국민의힘 국책자문위원장(64), 광주지방국세청장 출신인 임성균 세무법인 다솔 회장(70), 대우건설 임원 출신 양 아무개 씨(65)가 이사로 합류했다.
이에 따라 기존 이사였던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71)과 기업인 봉 아무개 씨(55), 공기업 직원 권 아무개 씨(53)가 재단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신동렬 재단 이사장(64)과 대학교수 권 아무개 씨(64)는 자리를 지켰다. 서울교육청은 11월 30일 이 같은 사항을 승인했다.
이번 이사 교체는 서울교육청이 최근 재단에 내린 행정처분의 후속 조치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11월 24일 재단에 "2023년 8월 11일과 8월 30일 이사회는 무효이므로 다시 개최하라"고 통지했다. 해당 기간 재단이 이사회를 열지 않았음에도 개최한 듯 꾸며내 기존 이사 3명의 임기를 연장한 사실을 적발한 데 따른 처분이었다.
새로 선임된 이사 가운데 일부는 재단과 인연을 맺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인 '관정관' 준공 등 이 전 회장이 참석했던 행사에 여러 번 함께했다. 이 전 회장 장례식 때는 추도사를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임성균 회장은 과거 관정재단 이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이주영 전 부의장은 '재단 이사로 참여한 계기' 등을 묻는 질문에 "관정재단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정관 20조 삭제 의결
재단은 새 이사 취임으로 그동안 쌓아온 과제들을 푸는 데에 속력을 내고 있다. 12월 16일 이사회를 열고 '설립자인 이종환 전 회장의 가족은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정관 20조를 삭제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9월에도 한 차례 시도했던 사항이지만, 서울교육청의 행정처분으로 8월 이사회가 돌연 승인 취소되며 덩달아 차질을 빚어온 안건이다. 이번에는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발견되지 않은 만큼 서울시교육청도 조만간 승인할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생전 '가족의 재단 운영 관여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다만 재단 측은 "이종환 회장이 작고하기 5일 전 '장남이 명예이사장(이사)으로 재단에 참여해도 좋다'는 새로운 유훈을 남겼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현재 상황을 아쉽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유훈은 법적 강제력이 없으므로 정관 개정 등은 이사회가 판단할 몫이다. 단,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발전을 꿈꾸며 관정재단을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으로 키우고, 이를 가족에 상속하는 대신 사회에 사실상 기부한다고 밝힌 이 전 회장의 뜻은 그 자체로 세간의 커다란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정관 20조 삭제를 의결했어도 향후 어떻게 될지는 정해진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고발당한 이석준 회장
재단 안팎에선 이 전 회장 장남인 이석준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언젠가 이사진에 합류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는 최근까지도 신 이사장과 만남을 갖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이석준 회장의 재단 참여가 당분간 부담스러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현재 재단을 둘러싼 상황들이 다소 어수선한 탓이다. 신 이사장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이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교육청마저 이들을 추가로 고발한 영향이 크다.
구체적으로 신동렬 이사장과 사무국장 예 아무개 씨(59)는 서울교육청의 행정처분 근거가 된 2023년 8월 '가짜 이사회'를 주도하고, 그 과정에서 허위 이사회의록 등을 작성한 혐의로 2023년 10월 검찰에 고발을 당한 상태다. 이 밖에 서남수 전 장관 등 다른 전임 이사들도 공모 혐의로 함께 고발돼 있다.
12월 14일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중앙지검에 신 이사장과 예 씨를 수사해 달라고 의뢰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공익법인 관련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한 상태"라며 "개인정보 보호 등에 따라 구체적인 위반 혐의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석준 회장의 개인 상황도 녹록지 않다. 그는 10월 13일 대학생들로 구성된 '신전대협'이라는 단체로부터 금융실명법 등의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고발을 주도한 단체는 "이종환 전 회장이 유언장에서 이석준 회장 명의로 된 차명재산의 존재를 기재했다"며 "이석준 회장 등의 세금포탈 여부를 수사해 달라"는 취지를 밝혔다. 현재 이 사안은 서울 종로경찰서가 수사하고 있다.
실제 이 전 회장이 남긴 유증에는 이석준 회장 외 5명 명의로 된 차명 주식 및 부동산을 관정재단에 넘긴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재단 관계자는 "명의신탁 문제는 금융실명제 이후부터 진즉에 해결된 사안"이라며 "이종환 전 회장이 자녀 등에 넘긴 재산이야 있지만, 전부 증여 절차를 마무리해 법적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재단에서 돌려받은 '현금 95억'은 어디에
이석준 회장 등은 수사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부친이 예기치 않은 시점에 타계하며 2남 4녀 자녀들의 재산 상속 문제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까닭에서다. 유족들의 사정이지만 재단에서 오간 자금들도 일부 얽혀 있어 관심이 모인다.
예컨대 2022년 기준 재단이 이 전 회장한테 빌린 단기차입금은 70억 원이다. 채권자가 사망했으므로 그 지위를 누가 상속할지는 곧 정해야 한다. 유족들이 원만한 합의를 거쳐 적정 비율로 분배할 수도 있다.
재단 관계자는 "재단의 발전과 자산 증식을 위해 이종환 전 회장의 돈을 빌렸다"며 "상속은 가족들끼리의 문제인데, 고인께서 기부금과 사업자금 등으로 쓴 돈이 많아 상속 액수 자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전 회장은 생전 약 1조 7000억 원을 재단에 기부했으나 2020년부터는 이자를 받는 대여 형식으로 자금을 수혈했다. 구체적으로 2020년 재단에 90억 원을 이자율 2.45%에 빌려줬다. 고인이 이사장을 맡은 시점이었다. 즉 '개인 이종환'이 '이사장 이종환'의 재단에서 채권자가 된 셈이다.
재단은 2021년 12월 14일 50억 원, 2022년 1월 4일 45억 원 두 차례에 나눠 이 돈을 갚았다. 그런데 상환이 끝난 2022년 재단은 이자율이 3.0%로 올려 이 전 회장한테 70억 원을 또 빌렸다. 특히 이때 재단은 기존 은행 빚 약 300억 원을 단번에 상환한 시기였다. 금융권 부채를 청산한 이사장 사재에 이자를 매긴 것이다.
특이한 점은 또 있다. 이 전 회장은 2021~2022년 재단에서 돌려받은 원금 95억 원을 입금 확인 즉시 전액 '현금'으로 인출했다. 이 전 회장의 계좌입출금 내역을 통해 확인한 사항이다. 유족들과 재단 안팎 관계자들은 이 현금이 어디에 보관돼 왔거나 사용됐는지 등에 궁금증을 내비치는 분위기다.
재단 관계자는 "2022년 부동산 등 재단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돈을 빌리게 됐다"면서 "이종환 전 회장께서 은행 빚은 부담되니 우선 갚고 자신의 돈을 사용하라는 취지로 필요한 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어 "설립자께서 재단 외에도 곳곳에 대여한 자금이 많다"며 "전부 사업을 키우는 목적으로 쓰였다"고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